[서상목의 웰페어노믹스 정책마당] ⑬ 양극화와 기본소득보장제도
[서상목의 웰페어노믹스 정책마당] ⑬ 양극화와 기본소득보장제도
  • 서상목 회장
  • 승인 2016.08.25 13: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상목, 지속가능경영재단 이사장, 전 보건복지부 장관
 
기본소득보장제도는, 영어로 Universal Basic Income(UBI)이라고 하는데, 글자 그대로 모든 국민에게 일정 수준의 소득을 국가가 현금으로 지급해주는 제도다. 스위스의 경우 성인에게 월 약 3백만원 그리고 아동에게 월 78만원을 보장해주는 제도의 도입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으나 국민의 77%가 반대하여 부결된 바 있다. 부결 이유는 이러한 방안이 실시될 경우 스위스 정부 예산이 현재보다 세 배나 늘어나야 하는 등 추가 재정부담 문제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핀란드에서는 2017년부터 월 900 달러 정도의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를 시험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며, 새로운 제도의 실시와 더불어 소득보장 성격의 유사제도를 모두 폐지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도는 개발도상국에서도 부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마리카(Marica)라는 브라질의 작은 도시에서는 모든 주민에게 매월 3 달러를 주는 제도가 실시되고 있는데, 이에 소요되는 재원은 마리카시가 소유한 국영석유회사 주식에 대한 배당금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비록 금액은 작지만 주민에게 새로운 세금부담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이외에도 미국에서는 1972년 대선에서 맥거번(McGovern) 민주당 후보가 월 천 달러 수준의 기본소득보장제도를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고, 캐나다와 미국 알라스카 주에서도 석유수입의 일부를 기본소득보장제도 실시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과거에는 이상주의적인 경제학자나 정치인들이 주장한 기본소득보장제도가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서 활발한 토론의 대상이 되는 것은 90년대 이후 IT혁명이 급속한 속도로 진행되면서 소득분배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IT혁명은 이의 혜택을 본 산업, 기업 또는 개인에게는 부가가치와 소득을 획기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이나, 이러한 과정에서 소외된 다수에게는 분배구조를 악화시키는 장본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지난 20년간 소득분배는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양극화 현상은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특히 요즈음 언론에서 많이 언급되는 IT기술과 다른 분야와의 융합을 의미하는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이러한 양극화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경제 전체의 생산성은 증가하고 있으나 국가간, 산업간, 기업간, 그리고 개인간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인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선진 각국의 정부가 나름대로 양극화 해소대책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현재로는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 60년대에는 수출산업이 노동집약적이었기 때문에 수출의 확대가 고용의 증대와 실질임금의 상승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이른바 ‘형평 속의 성장(growth with equity)’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수출산업의 자본 및 기술집약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면서 수출의 증가가 고용의 증가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이에 더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용시장마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원화됨으로써 임금구조의 양극화와 소득분배의 악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 등 거의 모든 선진국들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정상정인 경제정책으로는 이러한 추세를 반전시키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기본소득보장제도라는 ‘극단의’ 처방이 새롭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본소득보장제도는 역사적으로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수학자였던 콩도르세(Condorcet)는 계몽주의(enlightenment)와 합리주의(rationalism)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한 정책으로 기본소득보장제도를 제안하였다. 영국 태생으로 미국의 건국지도자였던 페인(Paine) 역시 계몽주의와 농업정의(agrarian justice) 구현의 방법으로 기본소득보장제도를 주장한 바 있다.

▲ 출처:스위스정부관광청

최근에는 제도의 단순성을 이유로 ‘작은 정부’ 원칙을 고수하는 미국의 카토연구소(Cato Institute)가 재분배의 가장 간단하고(simplest), 덜 개입적이며(least intrusive), 낮은 자세(condescending)의 방법이라는 이유로 기본소득보장제도를 찬성하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고용창출에 미치는 악영향을 가장 잘 아는 실리콘 밸리에서도 기본소득제도의 도입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벤처캐피털리스트인 웬지(Wenge)는 그의 최근 저서 『자본 이후의 세계(World After Capital)』에서 기본소득보장제도를 적극지지하고 있고, 벤처 창업자 알트만(Altman) 역시 캘리포니아 오크랜드(Oakland)시에서 자신의 사재를 활용하여 월 1,000~2,000달러 수준의 기본소득보장제도를 시험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주장들은 1924년 출간된 ‘사회 신용(Social Credit)’의 저자인 영국 출신 더글라스(Douglas)의 “기술은 총생산과 근로자의 소득간 격차를 확대한다. 정부는 모든 국민에게 ‘국가 배당(national dividend)’’을 지급함으로 이러한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요즈음 거론되고 있는 기본소득보장제도는 90년전 더글라스가 제안한 ‘국가 배당’과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보장제도의 지지자들은 두 가지 추가적인 이유를 지적한다. 첫째, 이 제도가 실시되면 산업구조조정이 보다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제도가 시행되면 근로자들은 재취업을 위해 좀더 많은 시간을 갖고 다양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또한 퇴직근로자의 기본생계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기 때문에 기업은 필요에 따라 인력 감축 등의 구조조정을 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기본소득보장제도가 실시되면 실업자도 최소 수준의 소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불황 시 경제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기본소득보장제도는 현대적 의미의 사회복지정책의 기본목표라고 할 수 있는 시민의 ‘사회권(social right)’을 확실히 보장해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취약계층의 소득보장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공공부조제도와 최저임금제 등이 실시되고 있으나 시행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야기되는 바, 기본소득보장제도는 복잡한 제도를 폐지하고 복지행정을 단순화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 제도의 주창자들은 다음의 다섯 가지의 장점을 지적하고 있다.

①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생계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빈곤 함정(poverty trap) 문제를 일거에 제거한다.
② 일을 해도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때문에 복지정책으로 인한 근로의욕감퇴를 초래하지 않는다.
③ 보편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보다 넓은 정치적 지지가 가능하다.
④ 제도의 운영이 간단하고 비용이 적게 든다.
⑤ 모든 시민의 시민권을 강화한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보장제도의 도입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이의 추진을 위해서는 막대한 규모의 새로운 재정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경우 기본소득을 성인 1인당 월 3천 달러를 상정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재정의 규모가 현재보다 세 배로 늘어나야 하기 때문에 국민 다수가 이에 반대한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수준을 합리적인 선으로 조정하고 기존 제도 중 소득보장적 성격의 제도들을 폐지 내지 대폭 축소한다면 실천 가능한 기본소득보장제도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공공부조, 기초연금, 아동수당, 실업수당 등 소득보장 성격의 사업이 폐지 또는 대폭 축소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기존의 연금제도도 장기적으로 적자가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혁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보장제도의 도입은 복지제도는 물로 재정 전반에 걸친 대대적 개혁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실제로 집행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 틀림없으나, 나름대로 큰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 관점에서 연구와 토론의 대상이 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서상목은 누구?

서상목은 지난 40년간 경제와 복지 분야에서 연구 활동과 정책 만들기에 앞장 선 정책전문가다. 1974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학위를 받고, 세계은행(WORLD BANK)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경제·복지정책 연구에 전념하였다.

1988년 정계에 입문하여 제13,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93년에는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입법부와 행정부에서 경제·복지정책전문가로 활동하였다.

지속가능경영재단 이사장, (사)21세기교육문화포럼 이사장, (사)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등을 맡고 있으면서 대학에서 후진 양성과 청소년을 위한 인성교육 확산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자본주의의 위기》(1989), 《말만 하면 어쩝니까, 일을 해야지요》(1996), 《시장을 이길 정부는 없다》(2003), 《정치시대를 넘어 경제시대로》(2004), 《김정일 이후의 한반도》(2004), 《도산 안창호의 애기애타 리더십: 사랑 그리고 나눔》(2010) 등이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