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목의 웰페어노믹스 정책마당]⑫ 대통령제인가, 내각제인가, 아니면 이원집정제인가?
[서상목의 웰페어노믹스 정책마당]⑫ 대통령제인가, 내각제인가, 아니면 이원집정제인가?
  • 서상목 회장
  • 승인 2016.07.20 23: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서상목, 지속가능경영재단 이사장,    전 보건복지부 장관

최근 개헌 논의의 배경과 내용

최근 개헌에 관한 논의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중앙일보가 지난 6월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20대 국회의원 응답자 217명 중 94%인 203명이 개헌에 찬성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권력구조에 관한 것으로, 국회의원 응답자의 대수인 62.2%가 대통령 중임제를 선호했고, 그 다음으로는 이원집정제 16.1%, 의원내각제 11.1% 대통령 5년 단임제 6.0% 순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5월 3일 실시한 일반 국민 대상 여로조사에서는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의 74%가 동의했고, 권력구조에 대한 선호도는 대통령 중임제가 34.2%로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은 대통령 5년 단임제 30.5%, 의원내각제 18.6%, 그리고 이원집정부제 9.5%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종합해보면, 국회의원의 90%가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에 대해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개헌을 해야 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개헌의 방향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반 국회의원들은 대통령 중임제를 가장 많이 선호하나, 여야 지도부는 자신들이 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 국민들은 국회의원들보다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더 느낌은 물론이고,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에 대한 지지 역시 30%로 국회의원들보다는 훨씬 높은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특기할 점은 4가지의 권력구조 형태 중 어느 것도 개헌에 필요한 국회의원 2/3 그리고 국민의 과반수 찬성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의 또 하나의 특징은 당과 계파의 이해득실에 따라 국회의원들이 선호하는 권력구조가 각기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민주당의 경우 분명한 대통령 후보가 있는 친노 측은 대통령제를 선호하나, 비노 측은 이원집정제나 내각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확실한 대권주자가 없는 새누리당의 경우는 현 체제의 변화를 원하지만 대안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또한 대통령 후보 군에 있는 정치인들은 대체로 대통령제를 원하나, 대통령보다는 자신이 당권을 잡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은 대통령제보다는 권력이 분산되는 이원집정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결국 개별 국회의원의 정치적 이해가 그가 선호하는 권력구조를 결정하는 경향이 매우 큰 것이다.
 

대통령제 태동의 배경

권력구조는 언제나 개헌논의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1947년 제헌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실무작업을 총괄한 유진호 박사는 내각제를 설계하였으나, 대통령이 되기를 강력히 원하는 당시 제헌국회 의장인 이승만 박사가 내각제 원안을 대통령제로 바꾸었다. 이런 상황은 임시정부 수립과정에서도 그대로 전개된 바 있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역시 내각제로 설계되었으나, 이승만 박사가 이미 ‘대통령(President)’이라는 칭호를 외교활동 과정에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과 국무총리 직책을 동시에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제헌헌법에는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회가 선출하며 임기는 4년으로 1차에 한해 중임할 수 있도록 되었고, 대통령은 국회의 승인을 얻어 국무총리를 임명하도록 되어있었다. 따라서 제헌헌법은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이를 ‘잡종적(hybrid) 대통령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 자료사진:청와대 제공

이승만 대통령은 첫 임기가 끝날 무렵 국회에서 반대세력이 많아지자 전쟁 중인1952년에 대통령과 부통령을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하는 내용의 1차 개헌을 추진하였다. 이와 같이 대통령의 집권상 편의에 의해 추진되는 개헌 관행은 그 후에도 지속되었다. 1954년 초대 대통령에 대해서는 연임 금지조항을 배제하는 내용의 2차 개헌안이 개헌선에서 1표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이른바 ‘사사오입’ 논리로 통과 처리되는 상황마저 전개된 바 있다.
 

파란만장한 개헌의 역사

이승만 박사의 대통령에 대한 집념 때문에 시작된 대통령제는 ‘사사오입’ 삼선 개헌과 그 후 3·15 부정선거와 4·19 민주화 운동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1960년 제2공화국에서는 내각제로 바뀌게 되었다. 이승만 정권에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집권세력의 견제를 위해 내각제 개헌을 정강정책으로 채택하였고,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자 민주당 집권세력은 내각제로의 개헌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되고 국가원수로서 국군통수권, 국무총리 제청권 등의 형식적 권한을 갖는 반면, 국무총리는 내각의 수반으로 국무위원을 임명하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며, 국회는 내각 불신임권을 그리고 내각은 국회해산권을 가지고 상호 견제하도록 하는 것이 그 주요내용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집권한지 1년도 안되어 무너졌고,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세력은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다시 추진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1962년 국회가 해산된 가운데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된 개헌안은 부통령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거하고, 임기는 4년이며 1차의 한해 중임할 수 있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박정희 정권에서의 개헌 역사 역시 이승만 정권의 전철을 밟게 된다. 1969년에는 대통령의 3선를 가능케 하는 개헌이 추진되었고, 더 나아가 1972년에는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가능케 하는 ‘유신헌법’이 채택되었다. 그 내용은 대통령은 직접선거가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 선출되고, 임기는 6년으로 연장되고 중임 제한이 폐지되어 사실상 영구집권이 가능해졌으며, 대통령은 국회의원의 1/3을 추천하고 법관의 임명권을 갖게 됨으로써 입법부와 사법부를 실질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후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세력은 1980년 국민투표를 통해 새로운 헌법을 확정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간접선거로 선출되는 대통령의 임기를 7년 단임으로 하고,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유정회’를 ‘비례대표제 전국구’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이전의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과는 달리 정권 연장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지는 않았다. 이런 와중에 1987년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정당의 노태우 대표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포함한 이른바 ‘6·29 선언’을 발표하였고, 이에 따른 개헌안이 국회 의결과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되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대통령은 5년 단임으로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고, 국회의 국정조사권을 부활하는 것이었다. 이 때 확정된 개헌안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 청와대 제공

제헌과 개헌 과정의 특징

건국 이후 지난 69년간 제헌과 개헌 과정에서의 첫 번째 특징은 제2공화국에서 불과 9개월의 매우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대통령제의 권력구조를 택했기 때문에 내각제보다는 대통령제가 정치인들이나 우리 국민들에게 훨씬 익숙한 권력구조 형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택한 대통령제는 미국식의 순수 대통령제라기보다는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국회의 동의로 임명된 국무총리가 국무위원 임명 및 해임 건의를 할 수 있다는 점인데, 국무총리가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국정운영의 권한을 대통령이 독점하는 순수대통령제와 같이 운영되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인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제헌헌법 제정과정에서는 이승만 박사의 주장이 실무책임자들의 내각제 선호 성향을 압도했고, 1961년에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 군부세력의 강력한 정부를 만들려는 의지가 대통령제를 채택하게 만들었으며, 1987년 민주화 이후 진행된 개헌안 역시 당시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김영삼, 김대중 총재의 강한 대권의욕이 대통령제를 선택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지적할 수 있는 특징은 대통령제는 오랫동안 경험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평가가 가능한 반면, 내각제는 불과 9개월 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만 시행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내리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제의 문제점

다양한 권력구조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국제적으로 많은 정치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어왔다. 따라서 이러한 연구결과를 통해 각 권력구조의 장단점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대통령제는 내각제와 비교해서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제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대통령제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과 의회의 권력이 서로 대립된 관계를 형성하여 정국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20대 총선과 같이 이른바 ‘여소야대’ 상황이 전개되면 행정부를 장악한 대통령의 권력과 입법부를 장악한 의회권력이 충돌할 경우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게 된다. 내각제의 경우에서 연정을 통해 행정부 권력과 의회권력을 일치시키는 제도적 장치가 있으나, 대통령제에서는 이러한 장치가 없기 때문에 정국불안이 장기화 될 수 있다.

두 번째 문제는 대통령제의 경직성에 따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내각제에서는 총리가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교체하고 의회가 문제이면 해산이 가능하나, 대통령제에서는 임기가 고정되어있기 때문에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제도적 경직성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는 작은 총리 교체와 의회 해산이 정국의 불안정을 초래한다는 내각제에 대한 반대논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각제에서는 유능한 총리는 오래 집권할 수 있는 반면, 무능한 총리는 언제든 교체할 수 있다는 유연성 측면의 장점이 있다.

세 번째 문제는 승자 독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현행 대통령제에서는 최다 득표자가 대통령이 되기 때문에 유효표의 과반을 넘지 못해도 대통령이 되어 행정부를 장악하게 된다. 이러한 대통령제의 승자 독식 현상은 정파 간의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하고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과열을 촉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흔히 한국에서는 정치가 대통령 선거에서 시작되어 대통령 선거로 끝난다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바로 모든 권한이 대통령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바 크다.

대통령제의 또 다른 문제는 정당체제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특정 정당의 지지를 받아 선거에서 당선되지만 대통령에 취임하면 소속 정당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한국과 같은 단임제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대통령 선거가 정당보다는 후보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거에서 승리한 대통령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정당보다는 자신의 추종자들로만 국정을 운영하려는 경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현재 국회의원의 대다수가 현행의 대통령 단임제를 바꾸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라고 판단된다.
 

대통령의 장점과 단임제와 중임제의 비교

대통령제의 장점은 대통령이 강력한 힘을 갖고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현재 남과 북이 휴전선을 두고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한 대로 대통령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집권당이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여 이른바 ‘이원적 민주 정통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의 경험을 보면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어렵고, 비록 과반의석이 있어도 이른바 ‘정치선진화법’ 때문에 60% 이상의 의석이 있지 않는 한 야당이 반대하면 아무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다. 따라서 대통령제가 강력한 정부를 수반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대통령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꾼다고 강력한 정부가 탄생한다는 보장 역시 없다. 중임제의 장점은 대통령이 잘하면 5년이 아니라 8년을 집권함으로써 국정의 연속성이 개선될 수 있으나, 재집권을 하려는 대통령 지지세력과 이를 견제하려는 반대세력 간의 반목과 갈등은 오히려 더욱 심화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정국불안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소속 정당보다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선호하는 경향 역시 재임 기간에는 막을 방법이 없을 것이다.

한국의 개헌 역사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듯이, 대통령제는 절대권력을 가지려는 정치야심가들에 의해 도입되었고, 이들은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면 정당보다는 자신의 충성된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여 왔다. 현재 정치권과 국민들 사이에서 개헌에 대한 논의는 대통령제의 이러한 폐단 때문에 시작되었는바, 대통령 연임제로의 개헌은 이 문제를 완화하기 보다는 오히려 확대재생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개헌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연임제의 대안으로 이원집정제를 주장하기도 하나, 이 역시 의회가 선출한 총리가 대통령과 당적이 다른 경우에는 매우 심각한 ‘이원적 민주 정통성’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현행 헌법에 이미 이원집정제적 성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총리를 부하가 아니고 정치파트너로 생각하고 총리에게 국무위원 임명 제청과 해임 건의의 권한을 준다면 개헌을 하지 않고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개헌을 한다면 내각제로의 개헌이 유일한 선택일 것이다.

 

내각제의 장점

우선 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주장은 실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제3세계 국가들의 경험을 종합해보면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에서 민주주의가 공고화된다는 것이 실증적 연구들의 공통된 결과라는 점을 우선 지적하고자 한다. 전후 내각제 민주주의를 채택한 39개 국가 중 13개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붕괴되었으나, 13개의 대통령제 국가 중 10국에서 민주주의가 붕괴되었다는 것이 정치학자 반하넨(Vanhanen)의 연구결과이다. 내각제를 채택한 다수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전통을 유지하였으나, 대통령제를 채택한 대다수의 국가는 민주주의 전통을 유지하지 못하였다. 장관의 재임기간 역시 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거의 두 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남으로써 대통령제보다 내각제에서 국정운영이 더 안정적이라는 것이 연구결과인 것이다. 내각제에서 정치안정을 이루는데 있어 가장 큰 변수는 정당정치의 발달 정도라고 한다. 정당 간 이합집산이 빈번하고 정당 내 규율이 약한 경우에는 내각제에서 잦은 정권 교체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내각제에서 잦은 정권 교체를 방지하기 위해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유럽선진국에서는 총리 교체를 어렵게 하는 이른바 ‘건설적 불신임 투표제’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실시하고 있다. 그 내용은 총리 불신임 전에 후임 총리를 선정해야 하고, 후임 총리에 대한 신임투표가 재적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는 것이다. 이는 총리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줌으로써 잦은 내각교체로 인한 정치불안정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각제의 장점은 앞에서 지적한 대통령제의 약점을 뒤집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한 사람의 능력에 의존하는 대통령제와는 달리 내각제에서는 정당이 팀을 이루어 활동하기 때문에 정당정치가 발전하고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의 자질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내각제에서 의회와 내각은 정치인을 양성하는 ‘학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정당정치가 발달되어 있지 않고 의원들의 질이 낮기 때문에 내각제가 어려울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나, 사실은 내각제를 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정치가 발달되기 어렵고 수준 있는 인사들이 정치 참여를 꺼려는 것이다. 또한 한국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당정치의 구현 역시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에서 이루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대립과 갈등이 부각되는 제로-섬(zero-sum) 정치가 전개되는 대통령제와는 달리 내각제는 상호 협조와 타협이 강조되는 포지티브-섬(positive-sum)의 정치가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내각제에서 수상은 각료 추천권을 행사하나 자신의 집권 유지를 위해 이들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들과의 상호 신뢰 구축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며, 의회에서도 토론을 통해 야당과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따라서 대통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야당은 끊임없이 투쟁하는 대통령제에서의 투쟁적 정치풍토와는 달리, 내각제에서는 여·야간 협의와 타협이 관행화되는 이른바 ‘협의체 민주주의’ 전통이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은 여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할 때는 지나칠 정도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나, 거꾸로 여소야대가 외는 경우에는 매우 무력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의회에서 다수의 지지로 당선된 내각제에서 총리는 의회의 협조를 얻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또한 내각제 총리는 언제나 소속의원들의 정치적 지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권위주주의적 지도자가 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각제 총리의 권위와 정치적 지도력은 대통령제에서 발생하는 권력의 ‘과다’ 또는 ‘과소’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권력구조에 관한 세계적 석학인 라이피아트(Lijphart)는 그의 저서 『내각제와 대통령제 정부』에서 “내각제가 가장 좋은 정부형태다. 그리고 대통령제는 가장 나쁜 정부형태다. 다음으로 반(半)대통령제 또는 이원집정제는 순수대통령제보다는 약간 더 바람직한 정부형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내각제 개헌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개헌논의는 국론분열만 야기

내각제가 가장 바람직한 정부형태임에 틀림없으나, 내각제로의 개헌 가능성은 현 시점에서는 매우 낮은 것이 사실이다. 앞에서 언급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회의원의 11.1% 그리고 국민의 18.6%만이 내각제로의 개헌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국민의 경우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에 내각제에 대한 지지가 낮고 자신들이 직접선거를 통해 통치자를 뽑고 싶어 하기 때문에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자신들이 지지하고 만들어 준 대통령으로부터도 무관심의 대상이 종종 되는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이 국정운영의 중심이 되는 내각제를 선호하지 않는 것은 매우 의아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국회의원들 자신도 오랜 정치관행이 되어온 대통령제에 익숙해졌음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내각제의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권력구조에 대해 오해와 편견이 많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각제로의 개헌이 아니라면 개헌논의는 불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대통령 중임제로의 개헌은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증폭시키기 때문에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이원집정제로의 개헌 역시 의회가 선출하는 총리가 대통령과 정당이 다른 경우 심각한 대립과 혼란을 야기할 것이기에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개헌 논의 가 시작되면 권력구조 외에 국민의 기본권 등 여러 문제에 대한 논쟁이 시작될 것이다. 예를 들어 진보세력은 경제민주화 조항을 강화하기를 원하나, 보수세력은 이 조항이 아예 삭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위기에 처한 경제를 다시 살리고, 양극화된 사회를 바로 세우며, 핵무기와 미시일로 한국을 위협하는 북한 정권을 붕괴시켜 자유민주주의가 바탕이 되는 통일한반도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개선보다는 개악이 될 가능성이 큼은 물론이고 권력구조는 물론 헌법의 제 조항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개헌 문제에 정치권이 몰두하게 된다면 민생 문제는 뒷전으로 밀릴 것이 뻔하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개헌 논의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 서상목은 누구?

서상목은 지난 40년간 경제와 복지 분야에서 연구 활동과 정책 만들기에 앞장 선 정책전문가다. 1974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학위를 받고, 세계은행(WORLD BANK)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경제·복지정책 연구에 전념하였다.

1988년 정계에 입문하여 제13,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93년에는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입법부와 행정부에서 경제·복지정책전문가로 활동하였다.

지속가능경영재단 이사장, (사)21세기교육문화포럼 이사장, (사)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등을 맡고 있으면서 대학에서 후진 양성과 청소년을 위한 인성교육 확산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자본주의의 위기》(1989), 《말만 하면 어쩝니까, 일을 해야지요》(1996), 《시장을 이길 정부는 없다》(2003), 《정치시대를 넘어 경제시대로》(2004), 《김정일 이후의 한반도》(2004), 《도산 안창호의 애기애타 리더십: 사랑 그리고 나눔》(2010)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