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구의 포토에세이]‘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가다
[정찬구의 포토에세이]‘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가다
  • 정찬구
  • 승인 2015.05.09 14: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 잔혹성의 실체..나찌만행 유엔세계유산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정찬구의 포토에세이 =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가다.]

▲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삼성 갤럭시 노트3’로 촬영]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약 300km 떨어진 곳 오시비엥침(독일어 이름: 아우슈비츠). 인간의 잔혹성과 야만성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 주는 곳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이곳은 인류 최초로 산업적인 수단을 이용한 인종 학살이 이루어진 곳이다.

히틀러가 주도했던 독일의 파시즘 정당 나치스는 유대인을 비롯하여 나치스에 반대했던 지식인과 정치인, 예술인은 물론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까지 강제로 이곳에 수용했다.

수용된 사람들 대부분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대접마저 받아 보지 못하고 강제 노동 중에 세상을 떠나거나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다. 30개 나라에서 강제로 끌려온 4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는 단순히 죄 없는 사람들을 강제로 수용하고 노동을 강요한 곳으로 해석돼서는 곤란하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잘 보여 주는 곳으로 온 인류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생생한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이런 참혹한 당시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폴란드 의회는 독일 나치스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고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보존할 것을 결정하였다. 1947년에 세워진 희생자 박물관은 1979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 부산 전체의 인구보다 많은 숫자의 희생자를 만든 수용소. 역사상 수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을 강제 수용소에 가두고 정상적인 인간으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희망이란 아우슈비츠를 찾는 방문객 중 독일 청소년들이 특히 많다는 사실이다. 이곳을 찾은 독일 청소년들은 나치스의 만행에 대한 내용을 가슴깊이 세기고, 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아우슈비츠는 진정한 평화가 어떤 것인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 준 감동적인 장소다.

경복궁 명성황후 시해 현장을 관람하며 히죽대는 일본인들과 아베 총리는 기도하는 독일 청소년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또 그들의 군대 위안부 오리발 작전이 국제적으로 비판받아야 할 이유다.

 

▲ 수용소 경비 초소박물관 입구를 통과하면 모양과 크기가 모두 비슷한 28동의 건물을 볼 수 있다. 한눈에도 강제 노동이나 살육을 목적으로 만든 시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바둑판이 연상될 정도로 규칙적인 건물은 도로를 따라 세 줄로 서 있는데 건물과 작업장이 잘 보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기관총이 있는 감시 초소가 설치되어 있다. [‘삼성 갤럭시 노트3’로 촬영]
▲ 수용소 정문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숙소
▲ 시체 유골
▲ 시체 타면서 나오는 검은 연기에 그을린 그을음
▲ 시체 소각장
▲ 약통, 화장품 등 희생자들이 남긴 유품
▲ 어린아이도 예외일수 없었다. 어린 희생자들의 옷
▲ 유대인 희생자들의 신발
▲ 유대인 희생자들의 가방
▲ 유대인 희생자들의 의족(부의 상징)
▲ 유대인 희생자들의 안경
▲ [가스실 내벽]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기 위하여 가스실을 이용하였다. 이 가스실은 마루타마냥 생체 실험을 한것으로 알려졌다. 벽에 난 자국들은 많은 괴로운 영혼들이 손톱으로 긁은 모습이다. [‘삼성 갤럭시 노트3’로 촬영]
▲고압 전류가 흐르는 이중 철조망, 출입자를 확인했던 검문소, 수많은 수용자를 실어 나른 검은 화물 열차가 달렸던 선로, 탈출자를 막고 수용된 사람들을 감시했던 기관총이 설치된 초소 등 입구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은 수용소가 폐쇄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삼성 갤럭시 노트3’로 촬영]

 

정찬구 객원기자

 

▲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입구에는 ‘일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라는 뜻이 담긴 ‘ARBEIT MACHT FREI’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 문구를 유심히 살펴보면 ‘ARBEIT’라는 단어의 B자의 위와 아래가 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자에 따라 해석에 조금 차이가 있지만 수용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독일의 나치스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을 드러내기 위하여 일부러 그랬다고 한다.(‘삼성 갤럭시 노트3’로 촬영) ▲ 독가스실 입구 = 가스실 출입문을 통과하면 검은색 콘크리트로 만들어 놓은 두 개의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오른쪽에 있는 넓은 곳이 노동력 없는 어린아이와 노인, 나약한 사람들을 따로 분류하여 가스를 넣었던 가스실이다. 이곳에서는 IG-파르벤사에서 만든 치클론-B라는 가스를 사용했는데 이 가스를 마신 사람은 20여 분 동안 고통을 받으면서 세상을 떠났다. ▲ 독가스실 내부 = 가스실에 서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보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공포감이 뼛속까지 전해져 온다. 가스실 옆에는 시체를 불태웠던 소각장이 있다. 가스실보다는 작지만 가스실 못지않게 음산하여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은 느낌이 드는 장소다. ▲ 시체 소각장 굴뚝 ▲ 노동 가용인력과 불가 인력으로 구분하여 가용인력은 노동현장으로 불가인력은 독가스실로 보내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