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UCCESS]문채형이 만난 사람 '순간제빙과학 특허' 눈꽃빙수 창시자 정희철 스노우폴 대표이사
[CEO&SUCCESS]문채형이 만난 사람 '순간제빙과학 특허' 눈꽃빙수 창시자 정희철 스노우폴 대표이사
  • 문채형
  • 승인 2015.04.2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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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화이트 크리스마스" 눈꽃빙수 창시자 CEO 정희철

►기술력으로 승부..창업에 나서다 

►실패 좌절 "아이들 봐서라도 살아내자" 다짐...다시 성공의 길로

90년대 인기가수 이정현이 부른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한여름에 크리스마스라니" 고정적인 시각에서 보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제목의 가요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그러나 한 여름에도 크리스마스는 있다. 남반구에 있는 호주의 크리스마스는 한 여름에 찾아온다. 그러다보니 ‘화이트 크리스마스’ 라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꿈조차 꿀 수 없는 먼 나라 얘기다.

이런 나라에도 ‘스노우폴’이 있다면? 답은 "한여름에 눈을 볼 수 있다"다.

지난달, 더운 나라 태국의 방콕에서 눈이 내렸다. 그 눈 내리는 풍경을 보기위해 방콕 씨암스퀘어원 스노우폴 하우스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기술력의 완성판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태평양 아름다운 섬 피지에서도, 인도양의 레위니옹에서도, 대서양의 피그아일랜드에서도 한 여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날이 현실화된 것이다

물을 불과 1분 10초 만에 부드러운 눈꽃가루를 만드는 제빙기 스노우폴. 이러한 것이 가능한 이유는 ‘순간제빙과학’이라는 특허기술 때문이다. 얼음을 유지하기 위해 24시간 가동해야하는 번거로움을 없앤 스노우폴 제빙기는 필요시에만 가동하여 눈꽃가루를 생산하는 방식이라 다른 유사품에 비해 경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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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꽃창조의 핵’으로 자리매김한 정희철(43) 스노우폴 대표를 지난 22일 경기도 수원 스노우폴 본사에서 만났다.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정대표 “템피아라는 냉난방기 회사 홍보마케팅 실장으로 제직하고 있던 때 처음으로 히트펌프라는 에어컨 콤프레션을 접하게 됐다. 당시 매출액 10억 정도의 회사를 2년 만에 700억 회사로 성장시켰다. 그 때 제빙기 특허권자를 만나게 됐다. 그분이 나를 찾아와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 기술력만 믿고 창업에 나서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텐데

정대표 “특허를 받을 정도의 뛰어난 기술력은 있었지만 마케팅 능력이 없다고 했다. 처음 한두 번 그러고 말려니 생각했다. 삼고초려 한 그에게서 강력한 메시지를 얻게 됐다. 그리고 회사를 만들었다. 그의 기술력과 나의 마케팅 능력과 자본을 합한 것이다.”

“ 당시 제빙기는 각 얼음을 갈아서 만드는 빙삭기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1988년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제빙기가 처음 한국에 도입됐다.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부시맨이 콜라병을 보고 놀랐던 것처럼. 새로운 물건이 세상에 나오면 생각과 마음, 행동을 바꿔야 한다. 제빙기 시장처럼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시장은 더욱 그렇다.”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나.

정대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했다. 지금의 눈꽃빙수를 처음으로 만들었던 사람이 바로 나지만 음식이기 때문에 무척 힘든 작업이었다. 특히 기존 제빙기로 얼음을 만들어 빙삭기에 갈아 만든 팥빙수가 아주 인기가 있었고 내가 만들었던 제빙기는 그런 제품에 비해서 가격이 10배 이상 높았다.”

"스마트폰 예견한 토플러 '미래의 부' 에서

기술의 중요성 깨닫다"

-스마트폰에서 새로운 사업 메커니즘을 깨달았다고 들었다.

정대표 “점점 제조에 대한 메커니즘을 알기 시작했다. 기존 제품의 품질을 몇 가지 업그레이드 했다. 그 계기는 엘빈토플러의 「미래의 부」라는 책을 읽고 나서였다. 그 책은 이미 스마트폰에 대한 예견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찍이 스마트폰 시장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 때의 핸드폰은 2G 또는 3G를 사용하던 시기였다.

“그 책을 통해 마케팅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개인 간의 통신이 발달할 것이라는 예견을 했고 그것이 생각해 보니 지금의 트위터나 카카오톡 같은 SNS 이었다.

그때 느낀 것이 대중의 마음을 한꺼번에 사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한사람의 울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눈꽃빙수의 맛이 결국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을 알기에 묵묵히 일에 전념 했다.“

-브랜드 마케팅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인가.

정대표“어느 순간 기존 기계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꽃 얼음을 만드는 기계를 알리기보다 브랜드 마케팅을 먼저 시도 했다. 현재는 눈꽃빙수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 했다. 강남역 근처에 눈꽃빙수거리가 생길 정도로 열풍이다.”

-사업을 하다보면 데쓰밸리(죽음의 계곡) 구간에 봉착하게 된다. 어떻게 극복했나

정대표 “제품은 그런대로 팔렸다. 그러나 AS가 문제였다. 기존 판매된 제품에 하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기술력의 보완이 필요했다. 직원들도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의리는 더더욱 없다. 2010년도에 회사를 접을 위기에 처했다.”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의리는 더더욱"

“마포에 있던 사무실을 접고 남아있던 제품들을 아파트 거실에다 보관했다. 버릴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결국 아파트까지 팔고 월세 방으로 이사를 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만 바라보는 처자식들 때문에라도 꼭 살아내야 했다. 딸 셋에 아들하나를 둔 가장으로서 어떻게든 살아내기로 했다.”

-생활고가 심했다고 들었다

정대표“우연히 읽은 또 한권의 책이 나를 일어서게 만들었다. 지금 대통령이신 박근혜 자서전이다.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그 책에서 감동했다. 울었다. 다시 용기를 냈다.”

“돌반지도 결혼예물도 모두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집사람 생리대 살 돈도 없었다. 결혼할 당시 LG전자에서 휘센에어컨 한정판 샀다. 휘센이란 브랜드를 금장으로 만든 것 이었다. 그 금장이 혹시 돈이 될까 해서 내다 팔았는데 5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LG전자에 처음으로 감사하단 생각을 했다.”

-사업실패후 재기에 나서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정대표 “회사를 문 닫고 남은 건 몇 가지의 자재와 스타렉스 차량이 남았다. 회사 전화기는 핸드폰으로 착신 전환했다. 고객 A/S 때문이었다. 맨땅에 헤딩했다. 10분이면 교체할 모터를 3시간에 걸쳐 갈아주곤 했다. 어디가 고장인지 원인도 모르면서 고객이 부르면 달려갔다.”

현장에서 부딪치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책도 샀다. 전기와 냉동관련 서적이다. 2년 동안 전국을 돌며 A/S를 했다. 용접기술도 그 때 혼자 터득했다.

A/S하면서 받은 비용으로 아이들 학교 보내고 월세도 내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스타렉스 차안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잠도 잤다. 여름 뙤약볕에 기름 아끼느라 에어컨도 켤 수 없었다.

1년 정도 A/S를 하고 다닐 때쯤 기계를 마스터 했다. 소비자를 직접 만나니 그들의 생각을 듣게 되고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눈꽃빙수는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지친 어깨..무력감..우울증에 포기 직전

아내의 말 한마디 "반드시 성공할 테니 끝까지 해라"

2년쯤 되었을 즈음 우울증이 왔다. 죽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처자식 편하게 해주고 죽을 순 없을까 고민도 했다. 자동차 사고로 죽으면 보험금이라도 나올까 싶어 일부러 역주행을 한 적도 있었다. 많이 울고 울었다.

그러던 중 종편채널이 만들어지고 창간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마케팅 담당으로 영입 제의가 오기도 했다. 이런 고생 안하고 차라리 월급쟁이 할까 하는 유혹도 있었다. 집사람과 상의했다. 집사람은 지금 사업을 끝까지 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힘을 주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재기에 성공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던데

정대표“지인으로부터 현재 OEM으로 제조하고 있는 회사를 소개 받았다. 선박공조 시장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는 회사다. 직원만 해도 1만 8천명에 달하는 대기업 버금가는 회사다.

대표를 만났다. 그리고 중역진 38명 앞에서 제품 한 개 남은 것으로 브리핑을 했다. 당시 템피아 홍보실장 출신이란 걸 알기에 초라하지만 들어줬다고 한다. 제품시연도 했다. 마케팅에 자신이 있고 제품 기술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 있고 당당히 설명했다. 기계를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다.“

“중역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당시 유사제품이 15개 정도에 달했다. 중역들 반응이 싸늘한 건 유사제품의 난립도 한 몫 했다. 또 투자비용도 대략 30억 이상은 들어야 했다. 생산라인 갖추고 인건비에 자재비를 합쳐서 그 정도는 든다. 대금 결제는 제품 팔아서 1개월 후에 갚겠다고 했다.

설명을 듣던 대표는 “만들어 줘”라고 말했다. 대표의 말 한마디에 스노우폴은 제2의 창업을 맞이하게 됐다.

지인 소개로 사업 브리핑 기회

중역들 싸늘한 반응...대표 "만들어 줘"

제2의 창업 나서다

2012년 3월에 법인설립을 다시 했다. 5월부터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하여 지금 전국에 스노우폴 제품이 5천대 이상이 깔려있다. 2013년부터 이익을 남기기 시작하여 작년도에 60억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300억 이상 예상하고 있다.“

“제조사는 제조물로 말해야 한다. 향후 10년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이 기술을 응용해 눈 내리는 스노우폴을 활성화 시키고 기술적로는 오픈할 수 없지만 식기세척기 시장에도 뛰어들 예정이다.

현재 제빙기를 리노베이션 해서 콤보형과 선박용도 제작할 것이다. 바닷물을 정제해서 빙수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대기업과도 거래를 열었다고 들었다

정대표 “눈꽃창조연구소를 15인으로 발족했다. 제빙기사장은 현제 약 8천억 가량이다. 향후 5배 이상 성장할 것이다. 현재 대기업인 롯데, 신세계, CJ에서 모두 스포우폴 제품을 쓴다. 오더 받아 놓은 것만 해도 5천대 이상이다. 롯데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달고 식품기계 쓰는 건 대한민국 최초이며 엄청난 사건이다.”

해외시장 진출에도 나서고 있다. 태국부터 시작했다. 향후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국에 진출할 예정이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경제가 어렵다. 부도 위기에 몰린 사업가도 많고 청년들의 고뇌도 상당하다.

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정대표“3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 기분 좋은 것. 대한민국 최초로 만들고 시장을 개척해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

둘째, 부담 가는 것. 사회적 책임이 생겼다. 이 기계로 생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담이고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셋째, 전 세계 얼음의 역사를 바꿀 것이다. 아직 나는 목마르다.“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온다. 상상이상의 고통도 함께 온다. 그러나 그늘이 있으면 반드시 양지가 있다. 성공을 위한 가치관만 잊지 않는다면 좋은 일은 필연적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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