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고 또 씻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강박장애'
씻고 또 씻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강박장애'
  • 데일리경제
  • 승인 2007.11.30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씻고 또 씻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강박장애'

내성적이고 유난히 깔끔한 성격의 K양(18세)은 쉬는 시간이면 개인 비누와 수건을 꼭 챙겨들고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살다시피 해서 평소 친구들 사이에 ‘손 씻는 아이’로 유명했다. ‘본래 예민한 성격이니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고3 수험생이 되자 손 씻기는 물론 샤워까지도 5~6시간 이상씩 걸려 지각이나 결석하는 일이 잦아지고 갈수록 본인도 힘들어지면서 부모님 손에 이끌려 정신과를 찾았다. 이처럼 강박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을 보인 K양의 경우 그 어머니 역시 강박적으로 청결을 추구하는 성향을 지닌 것으로 드러났으며, 수험생이라는 부담감이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증상이 악화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 원치 않는 생각과 행동을 반복, 일상생활 장애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는 원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그 증상은 크게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으로 나눌 수 있다.
강박사고는 반복적으로 의식에 침투하는 고통스러운 생각, 충동 또는 심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음란하거나 근친상간적인 생각, 공격적이거나 신성모독적인 생각, 오염에 대한 생각, 반복적 의심, 물건을 순서대로 정리하려는 충동이다. 이러한 생각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알지만 잘 통제되지 않고 반복적으로 의식에 떠올라 고통스러워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고를 없애기 위한 노력이 흔히 강박행동으로 표출된다.
강박행동은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나타내는 행동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씻기, 청소하기, 정돈하기, 확인하기와 같이 외향적 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숫자 세기, 기도하기, 속으로 단어 반복하기와 같이 내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강박행동이 지나치고 부적절하다는 것을 본인도 잘 알지만, 하지 않으면 심한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강박행동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강박증상은 정상인에서도 흔히 관찰된다. 그러나 이러한 강박사고나 행동을 한두 개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 강박장애는 아니다. 진단은 그 증상이나 행동이 환자의 건강한 생각, 사고,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기능을 얼마나 저해하는가에 달려있다.

■ 스트레스, 원인은 아니지만 증상악화 요인
강박장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선천적, 환경적, 정신적 요인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병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이 관련된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 신경해부학적으로도 전두엽·미상핵 등 특정부위에 뇌혈류가 증가되는 등의 이상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유전적인 소인도 간과할 수 없다. 강박장애 환자의 1차 가족 중 약 35%가 이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스트레스 자체가 강박증의 원인은 아니다. 그러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강박 증상이 악화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아이의 출산, 또는 이혼 등의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은 강박증을 발병시키거나 기존의 강박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

■ 평생 유병률 2.5%로 드물지 않은 질환
예전에는 강박장애가 드문 질환으로 소개되었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평생유병률이 2.5%이며 1년 유병률이 1.5~2%인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연령별로는 흔히 청소년기나 초기 성인기에 시작되지만, 소아기에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발병 연령은 남성이 여성보다 더 빠르다. 남자는 6~15세 사이에 가장 많이 발병하는 반면, 여자는 20~29세에 흔히 발병한다. 강박장애의 증상을 앓았던 사람들의 75% 정도가 30세 이전에 증상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강박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병원을 찾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강박장애를 병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거나 그러한 증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많은 환자들이 의사나 진료기관을 찾길 꺼린다.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울증을 비롯한 다른 불안장애, 강박성 성격장애, 섭식장애, 뚜렛장애 등을 동반할 수 있으며 심하면 정신분열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또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알코올 및 약물을 남용하는 경우도 있다. 강박장애는 빨리 치료할수록 쉽게 증상이 호전된다.

■ 강박장애에 대한 무지, 치료 시 두려움이 증상 악화
강박장애는 유전적 요인이 크고 생물학적 원인이 많기 때문에 스스로 예방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평소에 불안을 적절히 해소하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나름대로의  해결책(예를 들어, 운동하기, 취미생활 갖기, 명상하기 등)을 나름대로 갖고 있다면 강박적인 사고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강박장애를 치료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일반적으로 질환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경향, 강박증에 대한 무지, 약물복용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행동치료 시에 두려움에 맞서는 것을 회피하는 점 등이다.
중요한 것은 강박장애가 뇌의 이상과 관련이 있는 뇌질환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푼다거나 마음을 편하게 갖는 등의 일반적 방법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에는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 약물치료와 함께 행동요법 정신치료 등 병행해야
강박장애의 치료에는 정신치료, 인지행동치료, 약물치료, 수술요법 등이 있다.
정신치료는 치료자와의 면담 형식을 통해 환자가 가지고 있는 고통, 방어기제 등을 살펴보고 문제 해결을 도와주도록 한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것은 약물치료이다. 약 80~90%의 환자에서 약물에 의하여 정상적인 사회생활이나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호전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약물단독으로 증상이 완벽하게 없어지지는 않는다. 때문에 약물치료와 더불어 행동치료를 같이 시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흔히 사용되는 행동요법들로는 불안감을 촉발시키는 상황에 환자를 반복적으로 노출시키고 그 상황에서 강박행동을 수행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에 저항하는 법을 배우도록 돕는 노출/반응차단 기법과 원치 않는 생각들을 머리 속에서 차단시키고 불안감을 줄이는 데 집중하도록 돕는 사고차단요법이 있다.
여러 가지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의 호전이 없고 증상이 너무 심한 경우 뇌수술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수술을 통해 강박장애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부위의 신경다발을 절단하거나 강박사고나 행동의 조절과 관련된 뇌 영역을 자극해 주는 장치를 삽입하는 방법 등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수술치료는 부작용이나 후유장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질환의 진행이 5년 이상 되고 다른 치료법들에 효과를 느끼지 못해 일상생활이나 사회 활동을 심하게 제약을 받는 환자에 한해 실시할 수 있다.

■ 자료문의 : 한림대의료원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과 석정호 교수

<배원숙 기자 baeluv@kdpress.co.kr>

<(c)극동경제신문.http://www.kdpres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단, 블로그등 개인사이트 뉴스 링크는 사용해도 좋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