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핵심기술의 진영화와 한국의 경제안보: 반도체 산업을 사례로
첨단핵심기술의 진영화와 한국의 경제안보: 반도체 산업을 사례로
  • 조원호 前주가봉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3.02.0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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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무역전쟁이 기술전쟁으로 변모하면서 주요 기술선진국은 기술 보호와 국가안보를 위해 중상주의적 기술보호주의 정책을 취하고 있다. 포용적 상호의존과 배타적 민족주의가 공존한 가운데 국가안보를 위해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핵심 기술을 도구로 경제 상호의존을 무기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9년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교란은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 확고한 경제안보를 위해 현명한 대응 전략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우선 한국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국가들의 첨단기술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외부와 경제적 의존 관계(economic interdependence)를 심화하면서 국제사회는 중국이 미국과 서구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합류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중국은 기존의 세계 경제 질서와 다른 ‘권위주의적 국가 자본주의(authoritarian state capitalism)’를 지향하고 있다. 특히, 시진핑 체제가 들어서면서 기존의 세계질서를 수용하기를 거부하고 중국 특색의 현대화를 통하여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별도의 세계질서 수립을 구상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2012년 취임 후 수차례에 걸쳐 밝혔듯이 중국 특색의 현대화는 마르크스 주의에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태적 특색을 적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 특색의 발전 체계, 발전 경로, 발전 이론, 발전 문화의 확립을 뜻한다. 이의 실현을 위해 중국은 소련의 계획 경제와 달리 국가 자체의 막대한 재정 능력을 확충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국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투자 방향을 조정(steerage)하고 있다. 즉, 막대한(2018년 GDP의 10%) 규모의 ‘국가인도(引導)기금’을 조성하여 민간 부문이 국가의 경제, 산업정책과 상호작용하도록 간섭하고 유도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반도체 등 국가 경쟁력 제고에 절실한 첨단기술 부문을 소홀히 하면서 소득 불균형 심화를 야기하는 기업 활동에 대해서는 규제하고 있다. 텐센트, 바이두 등 민간기업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민간 빅테크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는 소득 불균형 해소를 위한 ‘공동부유’ 정책의 일환이다.

아울러, 2006년 ‘국가 중장기 과학기술 발전 계획 요강’을 기점으로 외부 의존적 기술정책에서 벗어나 2020년 까지 기초과학 및 첨단기술 분야의 역량 제고, 반도체, 전기차 등 첨단핵심산업 및 국방분야 경쟁력 강화 등 자주적 혁신 능력 강화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또한, 2007년 ‘양화융합(兩化融合)’ 전략으로 정보화와 공업화를 결합하여 산업 고도화를 도모하고, 2016년 ‘혁신주도 발전전략’과 2021년 14차 국가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을 통하여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첨단기술에 기반한 혁신주도형 경제성장을 추진해가고 있다. 2022년 공산당 대회에서 과학기술혁신 체제를 공고히 하고, 과학기술을 ‘제1의 생산력’, 혁신을 ‘제1의 동력’으로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중국의 최종 목표는 ‘중국제조2025’를 통하여 제조업 최강국을 달성하고, 민군융합’ 전략으로 군사부문을 지능화, 정보화, 자동화하여 창군 100주년 되는 2027년 까지 최강의 군대 현대화(强軍夢) 실현 후, 2035년 까지 사회주의 현대화의 기반을 다지고 건국 100주년 되는 2049년 중국의 위대한 부흥(中國夢)을 이룩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중국형 기술표준을 정립 후 일대일로 연선(沿線)국가 등을 통하여 국제산업표준을 확보한다는 ‘중국표준2035’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와 같이, 중국이 기술패권경쟁 국가로 부상하면서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strategic competitor)와 국제질서 도전자(revisionist)로 공식화하고 그동안 용인해온 중국의 불균형 무역 관계와 불공정 기술탈취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고 있다. 수출통제개혁법(ECRA)을 통하여 미국의 안보에 문제가 되는 투자와 수출 에 대한 규제 장치를 마련했다. 2019년 국방수권법을 통하여 중국 통신장비 기업에 대해 미국 행정기관의 조달과 계약을 금지시키고, 상무부 산업보안국(BIS)의 수출관리규정(EAR)을 근거로 화웨이 등 ‘중국제조2025’와 관련된 중국의 기술기업에 대해 수출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국은 ‘민군융합’으로 민간부문의 첨단기술이 중국 군사력 증강 전략과 융합될 경우 미국 안보와 중국과 패권경쟁에 심각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민간기업이나 연구개발 인력을 통한 첨단기술 유출을 철저히 봉쇄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디지털 기술혁명으로 초연결된 국제사회가 국제사회에서 독자적으로 첨단기술 유출방지와 신흥기술 개발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우방국(like-minded countries)과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대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QUAD, AUKUS가 좋은 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세계화 과정에서 상실한 산업 공유재(industrial commons)를 되찾기 위해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을 통하여 미국 기업의 회귀 (reshoring)와 해외기업의 미국내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2000년을 전후하여 금융자본과 주주가치(share holder value)에 중점을 두고 단기간의 이윤추구를 위해 무분별하게 해외 이전함으로써 산업 공공재의 산업 혁신 생태계에 공백이 생기고 미국 내 산업 연관 관계 작동시스템이 소실되었다. 실례로, 반도체, 첨단 배터리 등 혁신적 아이디어는 미국에서 생성되었지만 이를 산업화하고 상업화한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함으로써 미국 내 연계 고리가 단절되고 산업 경쟁력이 잠식당하고 실업을 양산했다. 미국의 반도체 세계시장 점유율이 1990년 37%에서 2022년 12%로 하락한 결과도 이에 기인한다.

이런 가운데, EU는 2020년부터 ‘개방적 전략적 자율성(Open Strategic Autonomy)’을 대외정책 기조로 표방하고 인권, 환경 등 분야에서 유럽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편 안정된 공급망 확보를 위해 내적 역량을 강화를 목표하고 있다. 특히, ‘기술 주권’을 내세우고, 중국의 자주(self-sufficiency) 전략에 대비하여 탈중국 정책을 취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디커플링 전략과 EU의 기술 주권에 맞서 자립자강의 ‘쌍순환(雙循環)’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쌍순환 정책은 국내순환과 국제순환이 상호작용하여 대순환을 일으키는 전략으로서 초대규모의 내수시장이 주체가 되어 국내-국제시장의 상호순환의 촉진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경제정책의 무게가 수출에서 내수로 전환함을 의미한다. 즉, ‘홍색 공급망’ 구축을 통하여 글로벌 공급망을 벗어나 중국 자체 내에 완성된 가치사슬을 구축하는 것이다. 지난 40여 년 지속된 개혁개방 정책의 대전환이다.

요약하면, 미국은 중국 견제를 목표한 포용적 신뢰가치공급망(TVC)을 구축하고, 중국은 중국 특색의 폐쇄형 자체 공급망(DVC)을 통하여 외부의 압력에 대응하고, EU는 유럽 가치에 기반한 지역가치공급망(RVC)을 형성하면서 첨단기술 산업은 블록화되고 있다.

미국, 중국, EU 3개 축으로 분할된 글로벌 공급망의 진영화는 ITC 강국 한국에 진영 선택을 요구하고 있으며,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은 경제안보를 위한 새로운 인식과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한국경제의 표상(수출의 약 20%)이자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접근해보자.

반도체는 우주산업,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G5 등 첨단핵심기술의 필수 소재다. 소위 ‘산업의 쌀’이다.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 반도체)로 구분되며, 반도체 시장규모는 5,950억불(이중 메모리 반도체는 29%, 2021년 기준)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주문형 생산방식의 시스템 반도체와 달리 생산 후 판매방식으로 시장변동에 매우 민감하다. 최근 3년간 수요와 공급의 급격한 불일치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요동치는 것은 반도체 산업 역사의 당연한 추세이고 단면이다. 시스템 반도체 생산은 크게 설계(팹리스), 제조(파운드리), 조립과 테스트(ATP) 3개 공정으로 구분된다. 설계와 설계자산(IP)은 미국이 절대 우위를 점하고, 제조 장비는 미국과 네델란드(ASML), 제조 소재는 일본, 파운드리는 대만(TSMC)과 한국, 원료(리튬, 코발트 등)는 중국, 테스트는 싱가포르가, 종합생산(IDM)은 한국과 미국(Intel)이 특화하고 있다. 한국은 메모리 분야에서 절대 우위(약 44%)를 점하는 반면 시스템 반도체에서는 매우 취약하다(약 3%).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규모와 시장변동의 취약성 고려시, 메모리 반도체에서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시스템 반도체에서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관건이다.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교란되면서 주요 국가들은 반도체 공급망의 회복과 안전성 확보가 첨단핵심기술 육성 및 보호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보조금 제공 등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을 제정하여 미국 내 반도체 신규 투자 생산 기업에 보조금을 주고(570억불 규모) 투자세를 공제해 준다. 또한, 규범과 가치체계를 같이하는 우방국들과 ‘반도체 동맹’을 맺고, 북미 3개국 간 ‘반도체 포럼’ 결성(2013.1.10.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friend-shoring)하고 있다. 아울러, EU와 무역기술위원회(TTC)를 통해 반도체 공급 조기 경보 체계를 수립 등 공급망 회복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제조2025’를 기반으로 2030년 까지 반도체 보급률을 70% 까지 끌어올린 후 막대한 시장을 기반으로 반도체 생산 자립을 지향하고 있다. 반도체 굴기를 위해 1,430억불 규모의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하고 있다. EU는 유럽 최대 반도체연구소 IMEC를 통해 기술경쟁 우위 확보를 위한 범유럽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반도체 법 제정으로 2030년 까지 반도체 자급율을 현재 9%에서 20%로 증가시킬 계획 하에 430억 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그러나 최근 뉴욕 타임즈지(2023.1.1.)가 밝혔듯이 반도체 기술의 특성상 특정 국가가 반도체 생산의 전(全) 공정을 독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의 취약성(반도체 설계, 제조장비 전적으로 외부의존)을 무기화하고,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도약에 반드시 필요한 ‘길목기술(chokepoint technologies)’의 중국 유출을 통제하기 위해 공급망을 재편하면서 한국의 진영 선택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위를 종합해 볼 때, 한국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반도체의 경우, 홍콩 포함 수출의 약 60%), 아래 관점에서 한국은 경제안보를 위해 미국과 EU 진영에 합류하는 것이 타당하다.

우선,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분열되면서 시장의 규모보다는 시장의 안정이 더 중요하고, 경제적 효율보다 경제안보를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 중국은 자국의 방대한 소비시장을 무기화하여 일방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공산당의 ‘조정 전략’으로 중국 시장은 외자기업에 배타적이고 불투명하고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유사한 가치체계와 투명한 제도를 공유한(신뢰가치 공급망) 미국 그리고 EU와 공조할 때 경제적 이득은 감소할 수 있지만 경제안보는 보다 확고히 확보된다.

다음으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한국은 중국을 떠날 수밖에 없다. 이는 위에서 밝힌 중국의 폐쇄적 홍색 공급망 전략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의 반도체 10나노 미만 초미세 공정 기술이나 세계 유일의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ASML의 경우에서 보듯이, 한국이 중국과 절대 비교 우위로 초격차를 유지하면 중국은 진영을 떠나 한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 유사한 맥락에서, 미국, 중국, EU가 경제안보를 위해 막대한 보조금 지급 등 정부 지원을 하고 있듯이, 한국도 반도체 등 신흥핵심기술 육성과 초격차 유지를 통한 경제안보를 위해 정부의 적극 지원이 필요하다.

끝으로, 산업 경쟁력의 원천이고 국민 경제의 핵심인 산업 공유재(industrial commons)의 중요성이다. 산업 공유재는 R&D 인프라, 생산 공정 혁신기술, 엔지니어 역량 등으로 구성된다. 이를 기반으로 대학, 연구소, 협력업체(partners) 등이 상호 보완적 공조로 혁신적 산업 생태계가 형성된다. 한국이 산업 공유재를 통하여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려면 중국의 파놉티콘적 체제보다는 미국의 슘페터적 경제문화와 교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은 1970-8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기업에 세제 혜택 등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산업정책으로 세계가 질시하는 경제발전을 이룩하였다. 당시 세계은행과 IMF는 한국의 전략적 산업정책을 경제 역사상 최악의 경제 논리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21세기 미국과 중국이 이를 본받고 있다. 경제안보의 핵심인 전략산업의 전후방 효과는 기업 역량으로만 확보되지 않는다.

*필자의 개인의견이며,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조원호 대사는 OECD파견(무역위, 경쟁위), 주OECD대표부 참사관(개발원조위, 환경위), 주뉴욕총영사관 경제담당 영사, 주가봉 대사, KOICA 이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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