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무력정책법: 평가와 전망
북한 핵무력정책법: 평가와 전망
  • 신맹호 前주캐나다 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2.10.13 11:29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9월 8일 북한이 채택한 ‘핵무력정책법’("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과 당일 김정은의 시정연설은 핵공격 대상과 조건, 핵포기 여부에 대한 본심을 놀라울 정도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핵무력정책법은 현 단계에서 핵무기에 관한 북한의 최종적인 공식입장이자 문서라고 보여진다.

우선,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김정은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습니다”고 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한 핵 포기도 없을 것임을 확인하고 있다(“곤난을 잠시라도 면해보자고... 나라의 생존권과... 안전이 달린 자위권을 포기할 우리가 아니며”). 김정은이 “우리의 핵정책이 바뀌자면 세상이 변해야 하고 조선반도의 정치 군사적 환경이 변해야 합니다”라고 언급한 것이 협상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북핵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 발언은 북한이 핵보유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명분축적용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핵무기가 보호해야 할 가장 중요한 대상은 김정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2013.4월 채택된 ‘자위적핵보유국 지위 법령’(금번 핵무력정책법으로 폐기)과 달리 핵무력정책법에서는 핵무기 사용조건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 두 번째 조건은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공격이 감행되었거나 림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이다. 김정은에 대한 어떠한 공격이든, 심지어 공격이 임박하다고 판단만 하여도 핵무기 사용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또한 김정은(국가핵무력 지휘통제체계)이 위험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핵공격을 시작한다고 명시하여 김정은에 대한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보호 장치를 마련하였다. 김정은을 공격하면 바로 핵으로 보복할 터이니 아예 꿈에도 생각지 말라는 협박이다(“국가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에 결정된 작전방안에 따라...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

셋째, 북한이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경우 사실상 언제든 핵을 선제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선, 북한에 대한 공격이 실제 일어나지 않더라도 공격이 “림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핵사용이 가능하다. 또한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한 경우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재래식 전쟁 중 ‘작전상’ 얼마든지 핵을 사용할 수 있다. 아울러,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는 어떤 상황에서든 핵을 동원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와 같은 규정이다.

넷째, 핵무기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상시 공격태세를 유지키로 하였다. 즉, 북한은 “외부의 핵위협과 국제적인 핵무력 태세 변화를 항시적으로 평가하고 그에 상응하게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갱신, 강화”하며, “핵무기 사용명령이 하달되면 임의의 조건과 환경에서도 즉시에 집행할 수 있게 경상적인 동원태세를 유지”할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추가적인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가 예상된다. 한국의 강경책으로 남북 대화가 없어서 북한에게 핵을 개발할 시간을 벌어준다는 논리는 과거에도, 앞으로도 유효하지 않다.

핵무력정책법은 정상적인 국가라면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공격적이고 자의적인 핵전략이다. 북한으로서는 이러한 ‘미치광이’ 정책이 빈말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발하고 핵협박을 구사하게 될 것이다. 최근 미국 항모전단이 동원된 한·미 연합훈련 기간 중 최초로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것도 이러한 사례다. 문 제는 북한의 핵위협과 이에 대한 우리 대응이 상호작용하면서 북한이 실제 핵을 사용하게 될 위험성이 커진다는데 있다. 북한은 핵개발을 위해 벼랑 끝 전략을 구사하여 왔는데, 핵사용 전략도 그럴 것이라는 점은 예상되었던 일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왜 하필 이 시기에 핵무력정책법을 통해 적나라한 본심을 노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김정은은 북한이 확고한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과시하고 핵을 기정사실화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핵무력정책법에서 북한이 ‘책임적인 핵무기보유국’임을 강조하고 김정은이 “핵무력정책을 법화해놓음으로써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가 불가역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언급한데서도 이러한 입장을 엿볼 수 있다. 북한의 핵무력정책법은 미국의 ‘핵태세검토’(NPR: Nuclear Posture Review) 보고서에 해당한다. NPR은 1994년부터 정권이 교체될 때 마다 신행정부의 핵정책을 밝히는 역할을 하여 왔으며 지금까지 총 4회 발표(1994 클린턴, 2002 부시, 2010 오바마, 2018 트럼프 정부)되었다. 바이든 행정부도 금년 초 비공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였으나 아직 대외공개는 하지 않고 있다. 북한 핵무력정책법도 “핵무력이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각이한 정황에 따르는 핵무기사용전략을 정기적으로 갱신한다”고 하는데, 미국과 같은 어엿한 핵국가의 반열에 이르러 있음을 ‘북한판 NPR’로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김정은은 국제사회가 미국 등 서방과 중·러간 신냉전 국면으로 진입하여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라, 중·러의 지원을 통해 제재를 회피하고 생존할 수 있는 전략적 구도가 확립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하노이회담까지만 해도 북한은 제재 해제와 북핵 일부를 바꿀 용의를 표명하였으나 이제 그마저도 거부하고 있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과거 냉전시대와 같이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대중.대러 관계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울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과정에서 핵사용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일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국제사회가 러시아의 핵사용 위협을 이미 경험하여 북한의 핵위협에는 신경을 덜 쓰게 될 것이라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으로서는 본인에 대한 신변위협만 확실하게 제거하면 체제유지에 필요한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다고 보았을 것이다. 이에 따라 자신이 위험에 빠지면 자동적으로 핵이 발사될 것이라고 위협하는 등 핵의 억지효과를 최대한 높일 수 있도록 최고 수준의 협박을 구사함으로써 자신과 체제에 대한 보호막을 확 보하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극복 가능하다고 보이니, 핵을 일부 포기하기 보다는 오히려 핵보유를 확실히 과시하여 김정은 정권의 존속과 체제 강화를 위한 협박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강한 협박을 통해 남남 갈등까지 조장된다면 덤이 될 것이다.

북한이 제재를 회피할 공간이 있는 한, 제재를 통한 압박으로 협상을 도모한다는 우리 북핵정책은 설 자리가 사라진다. 사실 북한이 어떤 경우에도 핵을 포기하지 않고 협박수단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점은 이전부터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상식이었다. 그래서 핵무력정책법이라는 극도의 위험상황에도 우리 사회의 반응이 덤덤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핵의 위험성이 예정대로 현실화되고 있다는 암담한 현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으로 어떤 북핵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인가 고심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제재와 대화 제안 외에는 특별한 대안이 없다. 현 정부의 ‘담대한 구상’도 우리의 정책적 지향성(대화에 열려있고 평화적 해결을 지향하며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음)을 제시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그 이상의 효용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부든 대북정책을 국내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서 북한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접고 담담하게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방책이라 본다. 북한이 활용 가능한 국제정치의 구도도 언젠가 바뀔 수가 있고, 북한도 조금씩 변화가 누적되면 변곡점에 도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북한의 셈법도 자연스럽게 바뀌게 될 것이다.

우리로서는 능력 범위 밖의 일에 매달리기 보다는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 즉, 우리로서는 북핵을 억지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3축 체계’ 등 압도적 군사력을 구축하고,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 공약을 최대한도로 확보하는 것이 그 핵심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과연 우리가 핵무장을 주장하거나 시도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로서는 우리의 핵무장이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이 대세다. 그러나 장래의 정책 선택지(옵션)ㅣ로서 핵무장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국제사회의 어느 국가도 한국이 예측 불가능한 핵위협 하에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고,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무장 용인을 검토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이 핵억제를 우리에게 제공하려 할지 불확실성이 있다. 우리가 핵무장 필요성을 주장할 경우 적어도 미국으로부터 핵억제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협상 레버리지가 될 수 있고, 중국에 대해서도 북핵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경각심을 줄 수 있다. 실제 핵무장을 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당시의 국제정치 구도와 미·중과의 정치, 경제적 관계, 북한 위협 정도 등을 감안하여 장래에 별도로 검토할 문제이다.

(위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신맹호 대사(smaengho@gmail.com)는 외교부 부대변인, 국제법률국장, 주불가리아, 주캐나다 대사 등을 역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성진 2022-10-14 14:05:04
한국도 핵무기 보유는 필연인 것이다.
한국의 핵무기 보유를 미국이 막는다면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는 왜 막지 못하고 있냐는 것이다.
북한이 핵이 완성되면 한국에 대한 압박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라는 사실로 보아 한국으로서는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하여서라도 핵무기 보유는 필연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미국이나 유엔의 눈치 보기에 앞서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국민의 열망이 요동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유엔이나 미국에 인지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윤석열정권은 그 무엇보다도 핵보유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