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외교장관회담과 반도체 칩4 동맹 참여
한중 외교장관회담과 반도체 칩4 동맹 참여
  • 이강국 前시안 총영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2.08.1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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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강화를 표방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8월 9일 산동성 칭다오에서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개최하였다. 왕이 부장은 외교부 부처장, 처장, 부사장, 사장, 부장조리, 부부장 등 외교부 요직과 함께 국무원 대만판공실 주임을 거치고 국무위원 직책까지 겸하고 있는 산전수전 겪은 베테랑 외교관이다.

박진 장관도 일찍이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영국에 유학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김영삼 대통령의 통역을 한 후 국회에 진출하여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외교 고수인 4선 의원이다. 모처럼 서로 호적수를 만난 셈으로서 만찬까지 포함해 300분간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고 하니 자국의 국익 확보를 위한 수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을 회담 분위기가 그려진다.

한국 외교부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이번에 양측간 합의하거나 협의한 사항이 상당히 많다. 고위급 및 각종 대화체 가동 활성화,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 한중 FTA 서비스·투자 후속협상 가속화 및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등 역내 다자 협의체 관련 소통·협력 강화, 탄소중립 실현 및 미세먼지·기후변화 관련 협력 심화, 한국 문화콘텐츠 중국 수출 재개 등 인적·문화적 교류 강화,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문제 등이다. 물론 북핵문제와 사드 문제에 관해서도 논의하였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이슈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 칩4 동맹” 참여문제였다.

중국은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중국제조 2025」 제조업 육성정책을 표방하면서, 단시간 내에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술력이 높은 외국기업들을 인수(M&A)해 왔다. 중국 정부가 은행이나 거대한 펀드를 통해 인수자금을 지원하기 때문에 자금력은 중국 기업들에게 절대적인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외교적인 수단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지원한다. 세계적인 로봇 기술을 가진 독일 기업 쿠카 인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반도체 굴기’를 위해 거대한 펀드를 조성해 놓고 기술력 있는 반도체 기업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독일 반도체 회사인 ‘아익스트론(AIXTRON)’은 거의 인수단계에까지 갔으나 미국의 견제를 받아 실패한 적이 있다.

그러나 중국은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반도체 굴기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첨단 공정 개발에 성공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대만의 TSMC로부터 반도체 기술을 확보했을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마음은 급하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반드시 막아야만 중국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각종 제재조치를 통해 반도체 장비와 기술의 중국 유출을 차단해 왔으나, 이것으로 부족하다고 보고 반도체 그물망을 한층 더 촘촘하게 치려고 한다. 이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 바로 ‘반도체 칩4 동맹’이다. 이것은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미국, 한국, 일본, 대만 4자간의 반도체 동맹으로서 미국에서는 팹4(Fab4)로 표기한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기술 및 장비, 한국은 메모리, 대만은 파운드리, 그리고 일본은 장비 분야에 특히 강점을 가지고 있다. ‘Chip4’는 전 세계 반도체 장비의 73%, 파운드리의 87%, 설계 및 생산의 91%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칩4 동맹이 반도체 공급망에서 자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음모라고 주장하면서 반발해 왔다. 미국은 한국에 ‘칩4 동맹’ 참여 여부와 관련해 예비회담을 하자고 제안했고, 한국 정부는 참여 의사를 통보했다. 예비회담에서는 참여국들이 각국에서 반도체지원법을 시행한 데 따른 산업 지원 우수사례 공유, 반도체 인력 교류 확대, 첨단 반도체 부문에 대한 기술협력, 공급망 협력 강화 등의 내용을 주제로 협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박진 장관은 중국측에 한국의 ‘칩4 동맹’ 참여 입장을 통보하고, 중국이 우려하는 입장을 잘 알고 있다며 한국이 칩4에 들어가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 봤을 때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전달했다. 한국이 어느 특정국을 배제할 의도가 전혀 없고, 오히려 한국이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설명한 것이다. 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현재의 국제관계를 고려할 때 칩4 논의 진행 과정에서 중국의 입장을 반영하는데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뿐이라는 점을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왕이 부장은 한국이 신중하게 판단하길 바란다는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에 이어 “반도체 칩4 동맹” 참여 결정은 미중 패권경쟁 국면에서 한국이 중국의 반발을 극복하고 첨단산업 분야에서 국익을 확보하는 시금석이 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일본, 유럽, 호주, 대만 등을 아우르면서 제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표준화 작업과 인공지능(AI), 차세대 이동통신(6G) 등 신흥기술 개발을 선도하려 하고 있다. 중국도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호혜공영’을 내세우고 있지만 싹쓸이 형태로 중국기업들이 독식하다시피 전개해 왔고, 자국기업 위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은 제4차 산업혁명을 자국 위주로 전개할 것이다.

2016년 1월 삼원계 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이 보조금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삼원계 배터리는 중국 기업도 생산하는 경우도 있으나 삼성 SDI나 LG 화학 등 한국 기업들이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한국 기업들을 배제하려는 속셈이었다. 당시 중국측의 논리는 삼원계 배터리를 장착한 버스에서 화재가 났기 때문에 삼원계 배터리는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삼성 SDI나 LG 화학 배터리를 장착한 버스에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삼원계는 모두 위험하다고 했다. 그리고 중국 기업도 삼원계를 생산하는 경우도 있고 삼성 SDI나 LG 화학도 중국 기업과 함께 합작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 기업을 차별대우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무리 관련 기업체에서 읍소를 하고, 한국 정부가 나서서 요청을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중국 시장을 보고 수억 달러를 들여 투자했으나, 보조금 지급 대상 리스트 삭제로 중국내 판매가 막히다보니 어떤 기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막대한 물류비를 들여 유럽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어떤 기업체는 당초 51% 이상의 한국측 합자비율을 49%로 줄이고 중국측 합자비율을 51%로 맞추어 배터리 보조금 지급 리스트에 들었다.

이 사례에서 볼 때 한국 기업이 중국주도의 제4차 산업혁명이나 첨단산업 협력 시스템에 들어가게 되면 종속될 우려가 크고 발전 기회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미국, 유럽, 호주 등에는 한국 기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넓고, 반도체, 통신장비, 전기자동차,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의 시장도 크다. 무엇보다도 제4차 산업혁명 표준화 작업에서 한국이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중 양국은 아직도 무역 등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한국은 반도체, 석유화학, 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 생산에 필수적인 원부자재의 대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 한편으로 중국 시장은 워낙 크기 때문에 포기해서는 결코 안 되며, 여건이 녹녹치 않지만 대중국 기술우위를 유지하면서 ‘판매자(seller)’로서 계속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중수교 이래 처음으로 나타난 대중 무역적자가 더 커질 우려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탈 중국, 중국시장 대안론”이나 “중국 투자, 지정학 리스크 고려” 같은 발언은 백해무익하다. 아무리 그 말이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공개적인 발언의 파급효과, 불필요한 오해 초래, 나아가 국익에 미칠 부정적 측면 등을 고려해 신중히 해야 한다. 설화에 휩싸이면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함은 물론 국가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누구를 막론하고 고위공직자들은 먼저 경청하고 해야 할 말은 하되 준비하고 가려서 하고 정책을 철저히 추진하는 태도로 임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대한민국의 국익을 확보할 수 있다.

(위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이강국 전 주시안총영사는 중국 연수, 주중국대사관, 주상하이총영사관, 주시안총영사관 근무로 13년 7개월 동안 중국에서 생활했다. 미국 UCSD에서 공부하였고, 주베트남대사관과 주말레이시아대사관에서도 근무하였다.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 『중국의 新실크로드 전략 일대일로』, 『서안 실크로드 역사문화기행』, 『일대일로와 신북방 신남방정책』, 『대한민국 나침반 역사속의 위인들』, 『한중수교 30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저술하였으며, 현재는 성균관대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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