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류지선 의 '글로벌 다문화 시대' ] "우리는 한국인이다"
[특별기획-류지선 의 '글로벌 다문화 시대' ] "우리는 한국인이다"
  • 류지선 기자
  • 승인 2022.05.12 17:4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산시평생학습관에서 각기 다른 인생의 여정으로 한국에 정착하여 다문화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세 명의 여성을 인터뷰 하였다.  이들은 각각 중국 (K씨), 베트남 (백디나씨), 러시아 (알리사씨)  출신이다. 

■"우리는 한국인입니다"


류지선 기자 (이하 류):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한 분씩 차례대로 소개 및 간략한 라이프 스토리를 들어볼까요? 먼저, K선생님은 중국에서 오셨네요. 조선족이신가요? 

K씨(이하 K):  음..저는 제 소개전에 먼저 ‘조선족’이라는 단어가 좀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아시다시피 이 단어는 중국에서 저희를 소수 민족으로 규정하면서 만들어졌고 한국인의 뿌리를 가지고 중국에 사는 사람들을 좀 낮게 보는 의미가 있습니다.

해외 동포들을 이야기 할 때 재미 교포, 재일 동포라고 하면서 왜 중국에 거주하는 한인은 유독 조선족이라고 부를까요? 

저희는 한국인과 구분되는  중국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반면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고려인’들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에서도 한국 사람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니까요.

저는 중국 흑룡강 성에서 자라고 한국말, 전통 문화를 배우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조선족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그게 아니더군요. 인터넷상에 조선족에 대해 너무나 많은 비하와 모욕적인 발언이 많습니다. 

제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88올림픽 때 였던 것 같습니다.

이산 가족 찾기 프로그램이 많이 생기고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던 시기이기도 하구요.

어느날 한-중 축구 경기를 언니들하고 시청할 때 였는데 큰 언니는 중국, 둘째 언니는 한국, 각자 다른 국가를 응원하며 약간의 갈등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어느 국가를 응원해야 할지 몰라 중간에서 눈치 보며 혼란스러웠습니다.

당시에  한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유행이어서 저는 단순한 호기심에 ‘나도 한번 가볼까?’ 라는 생각으로 비자를 신청했는데 생각보다 비자가 쉽게 발급이 되어 2008년에 드디어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백디나 씨 (이하 백): 저는 한국인 남편을 베트남에서 만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고 현재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당시 남편은 베트남에서 10여년간 사업 중이었고 서로 영어로 소통을 하며 가까워졌어요. 한국어는 거의 못했어요.

그런데 남편 사업이 갑자기 망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가족 전체가 한국으로 오게 됐어요. 당시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 3학년이었는데 한인 타운에 있는 학교에서 한국어를 이미 습득한 후 였기 때문에 한국에 왔을 때 적응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에 온지 2주 만에 안산에서 피자점을 오픈해서 지금까지 운영을  해 오고 있습니다.

왼쪽: 백디나씨, 오른쪽: K씨
왼쪽: 백디나씨, 오른쪽: K씨

알리사씨 (이하 알): 며칠 전 제 결혼 15주년 기념이었어요.^^  저도 백선생님처럼 본국인 러시아에서 한국인 남편을 만났고 결혼을 계기로 한국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아이 둘을 키우며 가정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전혀 아는 바도 없었고 젓가락도 사용할 줄 몰랐습니다.  고맙게도 남편이 매우 자상해서 모든 것을 다 챙겨주고 도와주어서 생활에 별 지장은 없었어요.

알리사 씨
알리사 씨

다문화 가족이라는 정체성, 아이 교육 문제로  한국어, 한국 사회에 관심과 참여

류: 한국 생활, 문화에는 어떻게 적응하여 현재 자신의 모습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K: 처음에는 한국에 오니 너무 좋았습니다. 일단 한국말이 유창하니  적응이 빨랐고 제가 성격이 밝고 체구도 자그마해서 그런지 어르신들이 많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런 분들은 두가지 부류가 있는데,  저희를 독립 운동가의 후손이라고 우대해주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은 저희를 살기 힘들어서 중국으로 도망간 사람들처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일반적인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공장, 식당 등에서 주로 일을 하다 보니 몇 년 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  중국에 있는 남편과 초등학교 4학년의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2013년 이었습니다.

신길동에 가족들과 정착하였고 아이가 한국말이 좀 서투르다 보니 학생들이 100명 정도 밖에 안되는 학교를 찾아서 입학시켰습니다.

그 후  6개월 동안 오로지 아이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 주력한 결과 다행이 언어에는 큰 문제 없이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다보니, 일만 했을 때와는 달리 주변 환경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외국어 주민 센터, 글로벌 청소년 센터, 외국인 지원 본부 같은  기관들이 존재하고 상당히 많은 교육 프로그램들이 있었습니다.

일만 열심히 했을 때는 주변 환경을 몰랐는데 제가 이용할 수 있는 기관, 프로그램이 그렇게 많이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

덕분에  닥치는 대로 무료 교육을 듣기 시작했어요. 2015년에는 직접 글로벌 청소년 센터에서 일을 하기도 하면서 검정 고시를 패스하고 방송 통신대에서 4년을 공부하여 작년 8월에 사회 복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현재 경기도 안산에 소재한 관산 중학교에서 이중 언어 강사로 재직 중이고 한국 교원 자격증 과정을 또 공부하고 있으며  안산시평생학습관에서도 다문화 학습 관리사 자격증 과정을 포함,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한국에 정착하자 마자 피자 가게를 연 후  2년 동안은 일에 치여 사느라 심지어 제 주변에 그렇게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도 몰랐어요.

다문화 페스티벌이 있다고 해서 한번 가봤는데 그때 외국인들이 한국에 얼마나 많이 거주하는지 보고 깜짝 놀랐죠.

저는 베트남에서부터 남편과 영어로 소통을 했기 때문에 한국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별로 없었어요. 일이 바빠서 언어를 배울 여유도 없었구요.

한국에서는 어디서나 제가 영어를 하면  좋아하더라구요. 그래서 영어로만 소통하면 충분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매번 선생님이 수첩에 빼곡히 기록을 해 주시는데  제가 이해를 못하니 좀 답답했어요. 뭔가 답변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할 수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첫째 아이는 말을 비교적 늦게 습득하게 된 타입이어서 언어 배우기를 어려워했어요. 전선생님 말씀처럼 저도 닥치는 대로 무료 교육 같은 걸 다 참가해요.

남편은 제가 계속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좀 부정적인 시각이었지만 제가 상도 받고 많은 성과를 거두니 지금은 지지합니다.

지금은 가게 운영을 함과 도시에 학교에서 이중언어 강사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 저도 결국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한국어를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서울대 어학당에 등록을 해서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고 하이킥 같은 한국 드라마도 보며 언어를 익혔어요


외국인에 대한 과대한 친절과 보호는 차별의 또다른 현상일 수도..

본국에서 한국을 접했을 때와 한국에 온 후에 이민자로서 적응을 하면서 체감하는 한국 문화에 대한 부분, 나에 대한 타인의 시선이 다를 것 같습니다.

: 베트남에서 남편과 결혼한 후 한인 타운에서 살았기 때문에 거기서 접한 한국과 직접 와서 느끼는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제 첫인상을 보고 마치 아기처럼 대하는 것 같았어요.

아이를 둘이나 가졌는데도 제 인상이 한국 사람 같기도 하고 어려 보여 그런지 피자 가게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는 저를 보려고 오시는 분도 많았어요.

제가 영어, 한국어 베트남어, 3개국어를 하는 것도 신기한 요인이었건 것 같아요. 

한국에서 살다 보니 결혼 이민자라는 자각이 깊이 생겼고 제 마음 깊은 부분 사람들과 소통 하는데 한계가 있었구나, 난 늘 외국인이라는 느낌이 항상 있었어요.

K: 저도 처음에는 다들 이뻐해 주셨어요. 작은 체구로 다부진 성격이라 그런지 어디서든 환영을 받았던 것 같아요.

충격적인 일이 하나  생기기 까지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였는데 저와 함께 일하는 한 언니가 늘 저를 친절히 대하고 마치 지나칠 정도로 저를 보호 해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를 배려해 주곤 했어요.

어느 날 언니와 같이 야근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언니가 갑자기

“K야,너 노래 불러봐” 
“저 노래 못해요” 
 “노래 좀 불러봐!”
 “언니 미안한데 저 노래 못해요”
“너 그럼 잔업 안 시킨다!”
“그래도 못 해요”

전 정말 노래를 못하거든요. 그리고 업무 중에 노래를 하는게 자연스럽지 않자나요.

그랬더니 그 이후로 언니는 저와 절교했어요. 언니가 제 직속 상관이라 저는 그 공장에서 더이상 일을 할 수도 없었어요.

그와 비슷한 일을 몇 번 겪다 보니 한국 사람들이 나를 과도하게 신경 써 주고 이뻐해 주는 것은 어쩌면 나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소유물로서 여겨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생산 현장이 그때와 많이 발전되고 인식도 많이 변하긴 하지만 외국인에 대한 그런 인식들은 아직도 존재하는 것 같아요. 


외국인의 국적, 인종, 출신에 따라 차별적인 시선들

: 남편이 늘 저의 보호막이 되어 주긴 했지만 남편이 없을 때는 힘들었어요.

특히 저 혼자서 관공서를 가면 남편하고 같이 있을 때와 완전히 말투와 태도가 달라지더라구요. 말투가 다르고 불친절한게 일상이었어요.

처음에는 억울해도 참았어요. 제가 한국어로 잘 설명을 못하니까 어쩔 수 없이 감수했죠. 그런데 점점 제도와 사회를 알게 되니 못 참겠더라구요.

누군가 그랬어요. 법을 알아야 말할 수 있다고. 제가 기관, 개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껴질 때 강하게 대응을 하면 그들의 태도가 확 달라져요.

요즘 저보다 어려운 가정들을 위해 사회 봉사를 하다보니 그들이 얼마나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는지 실상도 많이 알게 되었어요. 

K: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에서도 한국인과 결혼한 이민자들에 대한 시선은 또 다르답니다.

서양인과 동양인도 다르게 취급 받고, 같은 동양인이어도 중국인에 대해서는 또 달라요. 한국 사회에는 외국인의 인종, 국적, 출신에 따라 차별적인 시선이 강하게 존재해요.

: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물론 제가 한국 여성만큼 언어가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왠만한 일은 제가 어느정도 잘 할 자신 있고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 정말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 처음에 안양에서 살 때는 어디를 가도 인기가 많았어요.

제가 영어를 할 줄 하니까 이웃들이 저와 얘기하고 싶어하고 많이 존중해 줬어요. 그런데 안산으로 이사 오니 사람들의 시선히 180도로 달라졌어요.

‘러시아에서 왔어? 춤 좀 춰? ‘ 이런 식이었어요. 이미지가 너무 안 좋아요. 까레이스키라고 하죠?

안산에 고려인들이 참 많은데 그들 대부분이 러시아에서 살기 힘들어 한국으로 이주해서 가장 힘든 육체 노동을 하고 있는데 아무데나 쓰레기 버리고 깨끗하지 않게 사는 사람이 많으니 어느정도 이해하지만 러시아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너무 강해요.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할 부분들 

류: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 전 아직 러시아 국적자에요.

사실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을 때  혜택이 많아요. 주변에서도 바꾸지 말라고 조언해요. 아이들 대학 입학 시 다문화 특별 전형이 있고, 학교에서 강사로 일할 때도 외국인으로서 원어민의 신분일 때 기회가 많이 주어져요.

그래도 언젠가는 한국인으로 귀화하겠죠. 그렇게 되면 가족 여행을 갈 때도 저만 다른 줄에 서서 출입국 심사를 할 필요도 없을테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생활 기록부에 ‘다문화’ 라는 범주로 기록이 남아요. 아이들은 한국어밖에 할 줄 모르는 한국인인데도 일단 다문화로 분류되면 시선이 달라지게 되거든요. 

K: 저는 한국인으로 귀화를 했지만 귀화 후에 불이익들이 좀 있어요.

이제는 한국 국적 자격자로서 번역 업무를 하려고 하면  외국인 대상의 한국어 능력 시험인 TOPIK, 한국인 대상의 중국어 능력 시험인 HSK 자격증이 둘 다 있어야 해요. 통, 번역 업무에 있어 ‘원어민’의 자격 범위가 좀더 융통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류: 나는 어느 정도 한국인이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한국 사회가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은?

K: 저는 70~80% 정도 한국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외국인들도 예전에는 건설 현장, 식당, 공장 같은 노동자가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에는 교육, 자기개발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이 늘고 있어 향후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관공서에서 차별 이야기 나왔을 때 왜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차별을 한 원인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소통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요?

내 삶에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저희를 생각하니 무관심하고 불친절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 안산평생문화학습관, 다문화 가족 센터들에 다문화 출신의 직원들이 더 많아지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딱딱한 교육적 차원이나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서로를 접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으로서의 프로그램들이 필요해요.

제가  몇년 전에 한 기관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한국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분이 처음에 외국인을 대놓고  싫어하셨어요. 왜 한국 정부가 외국인들에게 돈을 쓰냐고 주장하시면서 저와도 많이 싸웠어요.

그런데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2년 정도가 지나니 그분이 이제는 알겠다고 하세요. 스스로 경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변화되겠어요?   
 


‘어디 출신이세요?’ 물으면 부산, 베트남, 서울 출신을 모두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때 평등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듯

: 한국은 점차 다민족 국가가 되어가요. 언젠가는 사회가 더 나아질꺼라고 희망을 갖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외국인인 제가 먼저 바뀌고 한국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야 해요.  

초면에 제가 ‘안녕하세요 베트남에서 온 백디나입니다’ 라고 먼저 한마디 하면 아무래도 분위기가 좀 더 부드러워져요. 노력하면 되요. 저는 지금 이중 국적자인데 시험을 보기 위해  한국 역사 공부를 하며 화장실에서도 달달달 외웠어요. 

제가 다문화 가정임이 자랑스러워요. 제 아이들에게도 우리는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늘 얘기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한국말밖에 모르는데 우리는 한국말, 베트남어, 영어까지 할 줄 알고 다양한 문화도 이해할 수 있자나요.

한국 사람들도 점차 노력하고 변화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은 저출산 국가이기도 하지만 미래 발전을 위해서도 외국인을 진정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이제 한국 사람이든 외국이든 ‘서울에서 왔어요, 부산에서 왔어요’ 하는 의미가 ‘베트남에서 왔어요’ 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 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평등하게 대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저절로 바뀌지 않아요.

인식 변화에 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안산도 이전에는 이미지가 참 안 좋았어요.

하지만 살다 보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이 모든 것들이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에는 좋은 점이 참 많아요. 어른들을 존중할 줄 알고 쓰레기도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공중 도덕도 배울 수 있어 참 좋아요.

러시아 사람들은 담배를 엄청 피우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서 참 좋아요. 한국에서 러시아인들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이해하기에 저도 인식 개선을 위해 보건소에서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봉사 활동에도 많이 참여했어요.

서로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물론 한국 사람들의 노력도 필요하구요. 외국인들도 이제는 단순히 여기에 돈 벌러 온 게 아니라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들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한국 문화에 대한 교육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80% 정도는 한국을 받아 들인 것 같아요. 한국의 좋은 점들을 참 사랑해요. 이렇게 서로 소통하고 섞여 살아 가다보면 서로 이해할 수 있자나요? 

국제 결혼도 점차 많아지고 있어요. 러시아 사람들이 춤만 추는 사람들이 아니네? 어떤 분들은 저한테 괜찮은 러시아 친구 없냐고 소개시켜 달라고도 해요. 저희 가정이 사는 모습이 이뻐보여서 그런거 같아요.


류: 오늘 이렇게 진솔한 인터뷰에 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산시평생학습관은 2021년에  우리 나라 최초로 ‘다문화학습관리사’라는 민간자격증을 개설하였다.

다문화학습관리사는 이중언어가 가능한 이주민이 이주민 아동에게 한국어 및 학습지도를 한다. 이미 현장에서 다문화학습관리사가 활약하고 있으며 올해에도 뜨거운 호응 속에서 다문화학습관리사 2기 교육과정이 진행중이다.

▲안산시평생학습관에서 다문화 학습 관리사 2기에 참여하고 있는 수강생들 토요일 오전 10시임에도 강의실이 수강생들과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