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와 한국의 대응전략
우크라이나 사태와 한국의 대응전략
  • 이양구 前주우크라이나 대사/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2.04.14 15: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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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외교계의 거두였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 저서에서 "우크라이나 없는 러시아는 제국으로 부상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 말은 우크라이나가 서방 세계로 들어오면 그만큼 국제정치 안보 차원에서 자유민주주의 세계에 유리하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이나 러시아나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중심축 국가'(pivot state)다. 세계적 지정학 전략가인 피터 자이한은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 미국의 고립주의 회귀 시 전 세계적으로 3대 전쟁이 발발할 수 있으며 그 첫 무대가 우크라이나 및 발틱 3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직 미국이 고립주의로 회귀하지 않았는데 러시아의 굴기는 이미 시작됐다.

필자가 2016년 3월 초 우크라이나 대사로 부임하기 직전 당시 주철기 외교안보 수석이 각별히 당부한 얘기가 있다. 유라시아 서쪽인 우크라이나나 유라시아 동쪽인 한반도에 분쟁이 발발하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산될 수 있다며 대사 직무를 잘 수행하라고 각별히 당부한 것을 잊을 수 없다. 결국 우려하던 사태가 터졌다. 러시아가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을 시작한 지 40일이 넘는다. 당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4일 이내에 승리를 자신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의 영웅적인 저항과 서방의 지원, 국제 여론 등으로 전쟁이 길어지고 있다. 당초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함락하기 위한 총공세를 폈지만 최근 러시아군은 수도를 포함한 서북부지역에서 전면 철수를 감행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쟁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동 남부지역으로 병력을 재배치하여 전쟁의 목표를 우크라이나 전체에서 동남부를 장악하는 것으로 수정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유엔의 권고안도 듣지 않고 국제사회 여론도 무시한다. 오히려 푸틴 대통령은 끝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목적을 관철할 태세다. 최근 수도 키이우 외곽 러시아군이 장악했던 부차 등 일부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자행한 조직적 대량 민간인 학살 현장이 공개되었다. 국제사회의 공분과 공포를 자아내고 있다. 서방에서는 푸틴 대통령을 전범자라고 비판하고 국제형사사법 재판소의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러시아에 초강력 경제제재를 계속 추가하고 있다. 러시아의 전비는 하루 200억~250억 달러나 된다고 한다. 급기야 러시아의 국가 부도 위기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다. 이에 맞서 러시아는 핵무기 및 생화학무기사용 가능성 시사, 우크라이나 원전 폭격 및 점거, 민간인 대상 무차별 공격 감행 등 더 잔혹하게 강공으로 나오고 있다. 러시아의 잔학 행위가 커갈수록 미국 서방 NATO의 지원도 더 커져가고 있어 계속해서 상황이 더 악화되어 가고 있다. 그만큼 제3차 세계대전의 우려와 공포도 커지고 있다. 그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5차례 이상 실무 회담과 지난 3월 11일 외교부 장관 회담을 개최했으나 아직은 딱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터진 가장 큰 전쟁이 언제 어떻게 결말날지에 대해 3대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당초 단기전과 우크라이나 외 몰도바, 그루지아 등 확전 포함 다섯 가지 시나리오가 있었으나 이제 세가지 시나리오로 축소되고 있다.

첫째, 장기전이다. 러시아군의 보급 차질과 사기 저하 와중에 우크라이나군의 결사 항전으로 전쟁이 수년간 지속하는 시나리오다. 둘째, 외교적 해결이다. 러시아군의 인명 피해가 커지고 반전 여론이 높아지면서 중국이 외교적 중재에 나서는 시나리오다. 셋째, 푸틴 정권의 축출이다. 러시아군 사상자가 증가하고 경제 제재 여파로 엘리트층이 등을 돌려 민중봉기나 쿠데타가 일어나는 시나리오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대체로 장기전 시나리오 가능성을 제일 높게 본다. 하지만 장기전은 모두에게 손실이 커서 가장 피해야 할 시나리오다. 우크라이나는 해마다 3월 하순이 되면 '라스푸티차(Rasputitsa)'라는 기상 변화로 흑토지대 평야가 늪지로 변해 전차와 탱크의 이동이 어렵다. 러시아 군도 예상과 달리 서방의 지원과 우크라이나의 항전으로 막대한 군사적 피해를 보고 있어 확장을 하든지 장기전을 하기엔 역부족이다.

따라서 러시아는 군사 목표를 축소하여 우크라이나 동부 남부 지역 점령을 목표로 하고 있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병력을 재배치하고 있다. 미국과 NATO 회원국은 개별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군사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어느 쪽도 절대적으로 군사적 우위에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러시아가 요구하는 NATO 가입과 영토 문제에 대해 타협 여지를 시사했다. 제반 사정에 비춰 보면 대규모 전쟁은 우크라이나 동남부를 중심으로 외교적인 협상을 앞두고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이 전쟁의 성패가 향후 사태를 가늠하게 될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가늠하는 몇 가지 변수가 앞으로의 향배를 좌우할 것이다.

첫째, 푸틴 대통령의 독특한 역사관과 세계관, 그리고 합리적 의사결정 여부다. 푸틴 대통령은 지금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을 재현하는 듯하다. 특히 러시아가 기존에 돈바스 분쟁지역을 넘어 군사적으로 동부 남부 쪽으로 점령지역을 확대해서 기정사실화 한다면 군사적 우위는 차지할지 몰라도 서방의 대 러시아 경제제재 해제는 어려울 것이며 이는 장기전으로 확산되는 큰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향후 매우 예의주시 해야 될 대목이다.

둘째, 하르키우 돈바스 마리우플 등 동남부지역에 우크라이나의 저항 지속 여부와 러시아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느냐가 관건이다. 이미 우크라이나는 NATO 비가입 문제, 영토문제 ,중립화 문제 등 러시아 요구 조건에 대해서 상당히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셋째, 서방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강도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미국과 NATO는 아직 군사적 개입에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점점 미국과 NATO 개별 회원국 차원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앞으로 생화학 무기 사용, 전술 핵무기 사용 등 다른 우발 상황이 발생하면 NATO의 직접 참전 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넷째, 중국의 입장과 역할이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거나 러시아 경 제 제재에 동참할지도 중요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하면 신냉전 구도로 갈 우려도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의 본질은 우크라이나 차원에서는 외교 안보 주권까지 확보하겠다는 독립 전쟁이다. 러시아 차원에서는 러시아 제국의 부활과 영향력을 도모 하겠다는 패권경쟁이다. 미국 유럽 서방 차원에서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와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체제 경쟁이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UN의 정신과 가치와 주권. 독립, 영토보전이라는 UN의 질서를 지키는 의미가 있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서방의 승리는 유럽 등 자유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한편 러시아에도 보다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더 나아가 중국 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에도 자유의 바람을 확산 시킬 수 있다. 반대로 러시아의 승리는 권위주의 전체주의 제국 주의확산을 가져 올 것으로 보인다. 이 전쟁은 자유민주주의 대 러시아 중국 북한 등 권위주의 진영간 신냉전 구도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특별히 우리는 러시아 외에 중국과 북한 같은 만만치 않는 공산주의 체제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 다행히 우리 정부 차원에서도 유엔의 대(對)러시아 권고안과 경제제재에 동참했다. 우크라이나에 긴급 자금을 지원하고 정상끼리도 통화했다. 신임 대통령 당선자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정상간 통화도 하였다. 조만간 젤렌스키 대통령의 우리 국회대상 화상 연설도 할 계획으로 있다. 민간 차원에서도 우크라이나 지원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6일에는 기독교 차원에서 유엔난민기구(UNHCR) 및 세계식량계획(WFP)과 공동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캠페인 행사를 열었는데 6000여명이 참여했다. 국민의 모금 참여 등으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 문제는 우리 문제이기도하기에 우리는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에게 각성과 성찰을 하게 했다. 그동안 우리는 동맹이나 우방을 소홀히 했다. 이념·진영 갈등도 심했다. 외부의 도전을 직시하기보다 국내 문제에 함몰되기도 했다. 북핵 문제나 종전선언 등에 대한 낭만적 기대나 중국·러시아의 권위주의에 대한 선의의 기대 등 안보에 대한 모럴해저드가 팽배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정체성 측면에서 다소 모호하지 않았는지 성찰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이유는 또 있다. 미래에 대한 안보보험 차원이다. 우크라이나와 유사한 안보 위기는 한반도에서도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완전한 평화가 아니라 매우 불완전한 평화다. 특히 핵무기를 안고 있는 북한이나 공산주의 중국과 권위주의 러시아가 있는 한반도는 결코 평화로운 지역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책임도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패는 자유민주주의를 러시아·중국·북한 등으로 확산하느냐, 아니면 권위주의가 유라시아 전역으로 퍼지느냐 여부를 좌우하는 중대한 기로다.

물론 적절히 균형 잡을 필요는 있다. 러시아를 지나치게 고립시키거나 러시아 국민을 적대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러시아가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전환되고 경제 발전을 통해 독일 같은 강국으로 거듭나서 중국의 변화를 촉진하고 중국의 굴기를 견제하는 긍정적인 균형자 역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지난 3월 9일 대선에서 탄생한 윤석열 당선인의 새 정부가 5월 10일 출범하면 유라시아 외교의 중요성을 고려해 다음과 같은 대범하고 창의적인 전략의 새판을 짜야 할 것이다.

첫째, 자유민주주의와 인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가치외교를 견지해야 한다. 둘째, 유라시아를 상대로 외교 전략을 새롭게 수립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초당적인 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특히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외교를 적극 추진해 볼 필요가 있다. SDGs는 비정치적 주제요 UN 회원국 모두가 2030년까지 달성해야 될 글로벌 아젠다이다. 대한민국이 특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셋째, 한·미 동맹 강화, 한·일 관계 회복은 기본으로 하고 미들파워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미들파워 네트워크를 강화해 강대국 중심의 지정학 질서가 흔들리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넷째, 안보 위협 요소를 차단하는 예방외교와 위기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다섯째, 국제정치의 냉혹함과 잔인함, 우리가 처한 안보 현실을 직시하고 소탐대실하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만큼 글로벌 의존도가 높은 나라도 없다. 가장 글로벌 의존도가 높은 나라임에도 역설적으로 글로벌 역량 및 글로벌 지수는 매우 낮다. 필자는 우크라이나 대사 재임 시절 겸임국인 몰도바를 자주 방문했다. 역사학자인 몰도바 자유대학 총장은 한국을 15세기 대항해시대를 연 포르투갈에 비유했다. 포르투갈은 인구도 많지 않고 땅도 크지 않지만 글로벌 전략을 추진해 세계적 강국으로 도약했다. 우리의 미래는 글로벌에 달려 있다. 우리도 포르투갈·스페인·영국·프랑스 같은 글로벌 파워가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미들파워 파트너들과 함께 유엔의 SDGs를 구성하는 5Ps(peace, prosperity, planet, people, partnership)를 선도하면 유라시아 역사를 새로 쓰는 세기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 한반도의 평화 통일, 동북아시아와 유 라시아의 평화와 번영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축적해온 역량을 총동원한다면 지정학 위기가 역사 발전과 문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의 개인의견이며,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양구 대사는 주 우크라이나 대사(몰도바대사 겸임), 주 블라디보스톡 총영사, 외교부 조정기획관, 러시아 CIS 과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국립 대학교 산학협력단 중점교수·동북아 공동체 문화재단 상임대표·통일문화연구원 유라시아 센터장·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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