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플랫폼 혁명과 한국의 선택
디지털 플랫폼 혁명과 한국의 선택
  • 조원호 前주가봉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2.04.1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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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 세기 동안 기술혁신에 따른 경제 성장은 국제질서 변화의 주요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20세기 후반 미국이 선도적 기술에 기초한 지속적 경제 성장을 통하여 구축한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규범이라는 세계질서가 좋은 예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정보통신기술(ICT)을 지배하는 국가가 강대국이 되고, 정보통신기술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국가가 새로운 지정학적 질서 수립을 도모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기술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하고 EU가 새로운 국제 규범과 가치를 추구하는 형국이다.

과거 산업혁명과 달리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여러 분야에서 혁명적 변화가 분산되어 나타나고 있다. 즉, 모바일(아이폰), 미디어(메타), 유통(아마존), 지식(구글), 콘텐츠(유튜브), 화폐(비트 코인)에서 혁명은 기존 경제, 사회 생태계를 완전히 변화시키고 국제관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면서 새로운 국제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이를 가로지르는 축이 디지털 플랫폼이다. 최근 ‘Foreign Affairs’지 등 국제관계 전문지들이 빅 테크 기업이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있게 다루는 배경이다.

플랫폼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대부분 전문가들의 정의도 이해하기 어렵다. 플랫폼 구조가 계속 진화하고 분야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면서 새로운 모델에 따른 새로운 용어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플랫폼 이해를 위해서 우선 ‘기차 플랫폼’의 연상이나 기업은 공급(생산)에 주력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플랫폼 정의보다는 플랫폼의 구조를 알아보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전 세계 검색시장의 약 80%를 점유하고 있는(2018년) 구글 검색을 예로 들어보자.

구글의 플랫폼은 지식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는 구조다. 그러나, 일반적 구조와 달리 공급자는 다른 공급자의 지식을 소비하고, 소비자도 공급자로서 자신의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런 공급자와 소비자 간의 지속적 상호 작용으로 방대한 규모의 지식이 쌓인다. 도서관이나 책에 한정되었던 지식이 모두에게 개방되고 소비자는 비용 부담없이 간편히 검색한다. 공급자에게 소요되는 경비는 별도의 광고 플랫폼을 통하여 창출한 수익으로 충당한다. 검색 서비스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 최고의 질의 지식 생산으로 사용자들에게 최적의 결과물을 제시하는 데 있다. 운영자로서 구글은 플랫폼이 잘 운영되고 공급자와 소비자 양면을 만족시키는 생태계 조성을 위해 도구를 마련하고 운영 원칙을 세운다. 도구는 검색엔진 알고리즘이다. 운영원칙은 검색 결과물에 조작이나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공정성과 투명성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구글은 플랫폼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 나아가, 사용자의 만족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페이지랭크’라는 새로운 검색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검색 시장과 지식 검색에 대한 사용자들의 인식과 지식 계 생태계를 완전히 바꾸었다. 이 때문에 혁명적이다.

위의 사례와 같이, 플랫폼은 공급자와 소비자가 상호작용하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즉, 가치가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일직선으로 흘러가는 전통적 단면시장(pipeline 모델)과 달리 생산자와 소비자를 아우르는 양면시장(two-sided market)의 특성을 지닌다. 디지털 혁명으로 스마트하고 정교한 소프트웨어에 힘입어 플랫폼은 시공간의 벽을 넘어 더욱 정확하고 신속하고 간편하게 생산자(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고 있다.

플랫폼의 핵심개념은 네트워크 효과다. 네트워크 효과는 플랫폼 사용자들이 각 사용자들이 창출한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다. 일반적으로 네트워크 효과는 한 개의 시장에서 네트워크가 커짐에 따라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의미하지만 플랫폼에서는 양면시장의 네트워크가 상호작용하여 성장하고 교차하는 양면 네트워크(two-sided networks)의 효과를 나타낸다. 따라서 그 효과는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 멧칼프 법칙(Metcalfe’s law))이다. 이 때문에 플랫폼 경쟁에서는 누가 먼저 두 가지 시장 모두에서 규모있는 네트워크를 조성하느냐가 관건이다. 즉, 플랫폼은 비즈니스 경쟁력과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이에 따라, 미,중간 기술패권 경쟁의 핵심 중 하나로 작용한다.

네트워크 효과는 기술혁신이 주도하는 새로운 경제 현상이다. 20세기 산업화시대에는 거대 독점기업들은 규모의 공급경제(supply economies of scale)에 기반을 두고 독점적 비교 우위를 향유했다. 이에 비해, 21세기 인터넷 시대에는 빅 테크 기업은 규모의 수요경제(demand economies of scale)을 중시하고, 수요측면의 기술 향상을 이용한다. 소셜 네트워크, 앱 개발 등이 향상될수록 사용자에게 더 많은 가치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플랫폼을 설계한다. 규모의 수요경제가 긍정적 네트워크 효과의 근원이며 경제가치의 주된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플랫폼 시장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업이 네트워크 효과의 우위를 점하기 때문에 경쟁 기업이 이를 따라잡기가 매우 힘들다. 즉, 네트워크 규모라는 진입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긴 플랫폼의 지위를 위협하기는 용이하지 않고,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이 어렵다. 때문에, 플랫폼 간의 경쟁은 시장을 나누는 경쟁이 아니라 사활을 건 경쟁의 속성을 지닌다. 결과적으로 플랫폼은 태생적으로 독점적 특징을 지닌다. 경제원론적 독점 개념과 달리 플랫폼 독점은 대체적으로 기술혁신을 유발하는 슘페터적 선량한 독점의 특성을 나타낸다.

특히, 플랫폼이 성공하려면 플랫폼은 개방적이고 공유되어야 한다. 플랫폼에서 개방은 주로 생산자 측의 자발적 참여를 의미하고, 가장 중요하고 이해에 유용한 개념이다. 이런 맥락에서, 모바일 시장에서 거의 99%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 설계 회사 ARM이나 테슬러는 일반적 행태와 달리 자신의 지적재산권을 공개하고 관련 업체들을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간주하고 함께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가치를 창출한다. 구글 운영처럼,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도록 참여를 독려하는 개방적 인프라를 제공하고 공유할 가치를 창출 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할 때 긍적적 효과가 나타나는 플랫폼 특성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 전략의 초점이 내부에서 외부로, 기업 보유 자산과 현금의 흐름 보다는 외부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으로 이전한다. 또한, 혁신은 기업내 전문가 뿐만 아니라 크라우드 소싱과 플랫폼 커뮤니티의 아이어를 통해 일어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한 국가간 경쟁은 단순히 자기편 모으기 경쟁이나 공급망 구축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통적 개념의 기술혁신 경쟁을 넘어 기술연대 내지 기술동맹, 사이버 안보동맹으로 발전하고 있다. 나아가, 전통적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정책, 제도와 체제의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 플랫폼 경쟁은 규범과 가치체계의 경쟁이다. 이를 고려할 때, 미국, 중국, EU의 플랫폼에 대한 국가정책이 신국제질서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시장규모 등으로 디지털 플랫폼의 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플랫폼 강대국과 연대 내지 동맹이 필수적이다. 한국의 현명한 선택이 요망된다.

미국은 플랫폼을 발전시킨 원조 국가다. 당연히, 미국 플랫폼은 위에서 살핀 플랫폼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즉, 글로벌 개방형(globalism)의 특징을 지니고 기술혁신을 통한 지속적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외계 우주와 상호 연결되고 상호 작용하는 기술 지상 낙원주의(techno-utopianism)를 추구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 침공 시 우크라이나가 이용한 스타링크가 좋은 결과물이다. 다만, 최근에는 빅 테크 기업의 독점적 행태가 기술혁신과 신규 경쟁자의 진입에 장애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여 관련 규제 법을 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가장 큰 당면 과제는 중국의 급부상을 견제하는 것이다. 미국의 빅 테크 기업이 국가안보에 협력하여 줄 것을 권고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클린 네트워크’ 구축하고,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전대통령의 미국 제일주의에서 동맹외교로 전환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반면, 미국을 모방한 후발 주자로서 중국의 플랫폼은 사회안정과 체제 유지를 위한 국수주의적 폐쇄형(nationalism) 플랫폼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중국은 오래 전 부터 자신만의 인터넷 세상을 구축하고 체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구글, 메타, 유튜브 등의 인터넷 플랫폼을 차단하고 있다. 대신, 자국의 바이두, 위쳇 등을 이용한다. 물론, 이 기업들을 만리방화벽에 가두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콘텐츠를 검열한다. 따라서, 중국의 풀랫폼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빅 테크 기업에 대한 통제 동기도 미국과 전혀 다르다.

EU의 플랫폼은 미,중에 비해 기술 수준이 떨어지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에 동조하여 민주주의, 법치주의, 인권 등 가치체계를 중시한다. 다만, 국가 안보 보다는 사생활 보호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유럽 가치에 기반을 둔 개방형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EU 안보를 위한 네트워크 확충을 더욱 중요시 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상은 중국의 행보다. 중국은 2021년 3월 14차 5개년계획 발표를 통하여 ‘지금은 새로운 과학기술혁명과 국제질서, 세력균형의 근본적 조정의 시기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세계가 지난 10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거대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밝히고 2035년 중국이 세계인류의 혁신국가로 부상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당시, 시진핑 주석도 중국의 국가 이론, 체제, 문화가 지난 70년 서구에 의해 수립된 세계질서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기의 대변환 담론’이다. 그러나, 이 담론은 신국제질서를 위한 새로운 규범과 가치체계를 제시하기 보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중국의 반응에서 나타났듯이 역사에 나타난 독재 내지 권위 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 중국은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여 이 담론을 플랫폼화하고 네트워크를 통하여 세계각국에 전파하고 있다. 즉, 중국은 방대한 자국시장을 기반으로 SNS, 전자상거래, 핀테크 등 분야에서 자국산 플랫폼을 만들고, 디지털 실크로드를 통하여 동남아, 아프리카, 중동 등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당시 미국 제일주의 처럼 최근 중국은 글로벌 공공재를 등한시하고 미국에 대한 대립각으로 중국 중심주의를 표방하는 데 그침으로써 ‘킨들버거 함정’에 빠져있다.

1990년대 세계는 인터넷이 국경, 종교, 이념을 초월하여 자유롭고 개방된 형태로 글로벌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에릭 슈밋 구글 전 회장이 2018년 예견했듯이 최근 인터넷은 ‘플랫폼의 플랫폼’(platform of platforms) 경쟁으로 분할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제에 접목되고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유하면서 글로벌 가치사슬의 한 허리를 장악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통하여 지 속적으로 창의력을 배양하고 기술혁신을 추구하여왔다. 우리나라가 향후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을 시현하고 신국제질서 수립에 관여하기 위해서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플랫폼은 개방되고 글로벌화 되어 공유되어야 한다. 중국의 독자적이고 폐쇄적 플랫폼에 동조할 경우, 우리의 디지털 공간의 생태계는 중국에 종속되면서 국가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요즈음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우리의 창의적 콘텐츠를 생산하는 생태계가 와해 될 것이다. 경제는 중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발상은 디지털 공간의 경쟁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디지털 플랫폼 생태계에서 승자독식의 원리가 지배한다. 중국은 우리의 경제협력이나 보완 대상이 아니라 경쟁상대이다.

*필자의 개인의견이며,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조원호 대사(mahler.1860@yahoo.co.kr)는 OECD파견(무역위, 경쟁위), 주OECD대표부 참사관(개발원조위, 환경위), 주뉴욕총영사관 경제담당 영사, 주가봉 대사, KOICA 이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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