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발전과 외교의 새로운 과제
인공지능의 발전과 외교의 새로운 과제
  • 조원호 前주가봉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2.01.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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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4차 산업혁명의 핵심동력인 인공지능이 법률, 의료, 교육, 언론, 컨설팅 등 전문가의 영역뿐만 아니라 인간 고유 영역으로 여겨진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까지 창작 활동을 하면서, 일각에서는 인공지능이 외교 전문가의 입지를 좁히고 외교 전문가를 대체할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 견해를 펴고 있다. 인공지능이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 다방면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외교 영역과 외교 전문가의 역할과 정체성도 변해야 한다는 사실은 당연한 순리이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과 더불어 불확실성이 지배하고, 인공지능의 정체가 불명확한 현 단계에서 ‘외교관 대체 내지 무용론’ 같은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우선 인공지능의 부침(浮沈)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56년 미국 다트머스 콘퍼런스에서 존 매카시 등의 제안으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이후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는 1970년대 까지 약 20년간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1980년대 신경망 기술의 발달을 변곡점으로 1990년대 초까지 2차에 걸쳐 ‘인공지능 겨울’을 겪었다. 그 후, 2010년을 전후하여 스위스의 인공지능연구소(IDSIA)가 신경망을 활용해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인공지능의 시대를 다시 열었다.

2011년 IBM의 왓슨(Watson)이 미국의 ‘Jeopardy!’ TV 퀴즈쇼에서 역대 우승자들과의 대결에서 우승하면서, IBM은 왓슨이 인간 의사(醫師)의 능력을 초월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암 치료에 뛰어들었다. 2015년 테슬러 최고 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2년 안에 완전 자율주행 자동차를 완성하게 되고 2019년에는 약 1년 후쯤이면 출시되어 고객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에 압승하면서 구글은 전력 효율화를 통한 기후변화대응에 자신을 보였다. 전 세계는 경악과 충격 속에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했다고 흥분했다. 인공지능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낙관적 논문과 문헌이 쏟아져 나오고 강연, 세미나 등에서 인공지능의 온갖 혜택이 거론되었다. 이에 편승하여, 2018년 인공지능 로봇이 그린 ‘벨라미 초상화’가 출품되어 예상보다 수십 배 고가인 약 5억 원에 낙찰되고, 로봇 아티스트 아이다는 2019년 첫 전시회에서 1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후 지난 7월 두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그러나 퀴즈쇼 승리이후 10년이 지난 2021년 왓슨은 골칫덩어리로 전락하고 퇴역했다. 의사 왓슨의 기능은 과장이었다. 바둑승리 성과를 거둔 구글도 인공지능을 통한 당초 목표인 기후변화 대응과 생명현상 규명 사업을 포기했다. 뉴욕 타임즈 지는 지난 7월 왓슨의 원대한 비전은 사라졌고 왓슨의 실패는 인공지능에 대한 과장과 오만함을 일깨우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왓슨의 우승 당시 IBM의 최고 경영진은 대부분 기술전문가가 아닌 마켓팅 전문가로서, 이들은 왓슨이 퀴즈쇼라는 제한된 환경에 맞추어 제작됐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CNBC도 딥 마인드의 기술이 바둑이나 체스처럼 통제된 환경에서만 제대로 작동할 뿐,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 세계에는 맞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머스크도 지난 7월 ‘일반화된 자율주행은 어려운 문제’라고 말을 바꾸고, 미국언론도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의 표상인 알파고가 쓴 에너지는 무려 이세돌의 8,500배로 나타났다.

인공지능은 약한 인공지능, 강한 인공지능 그리고 초인공지능으로 구분된다. 약한 인공지능은 특정 영역에서 미리 정의된 규칙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지능으로서 인간의 일부 능력을 돕는 도구다. 강한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서 인간과 같은 지성, 감정, 인지능력과 자의식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는ㅡ즉, 인간을 완벽하게 모방한 지능으로서 인공일반지능(AGI)으로도 불리운다. 초인공지능은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을 지닌 초인적 존재로서 호킹 박사나 머스크가 우려한 수준이다. 2-3년 전 인공지능이 봄의 계절에 있을 당시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100주년이 되는 2056년에 강한 인공지능이 실현될 가능성을 긍정적으로(56%) 예측했다. 초예측으로 권위 있는 옥스퍼드대 보스트롬 인류 미래연구 소장은 2040년 50% 수준을 거쳐 2075년에 90% 수준에 도달한 후 30년내 초인공지능 시점이 도래할 가능성(75%)이 있다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인공지능에 대한 이러한 장밋빛 전망과 예측은 과장으로 판명되었다. 현 단계의 인공지능의 수준은 수억 이상의 데이터와 알파고처럼 엄청난 컴퓨팅 파워에 의해 작동하는 ‘약한 인공지능’에 불과하다. 왓슨이나 알파고, 아이다 모두 약한 인공지능이다. 이들은 특정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에서는 성과를 올렸지만 인간 두뇌의 보편적 속성을 모두 모방하는 ‘강한 인공지능’ 단계에는 걸음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안면인식 인공지능은 인간과 달리 차별과 편견이 없고 공정할 것으로 믿었지만, 미국의 주 법원이 사용하는 안면인식 알고리즘 콤파스(COMPAS)의 편향성이 밝혀지면서 인공지능은 중립적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아울러, 안면인식 인공지능이 인종차별과 인권침해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해당 글로벌 기업들은 이 분야에서 손을 떼고 있는 현실이 또 다른 방증이다. 결과적으로, 인공지능의 한계성이 노정되고 인공지능의 지능이 인간의 사고 메카니즘과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재조명과 재인식이 요구되고 있다.

현 단계에서 인공지능의 성능과 활동 범위는 데이터에 의해 정해진다. 막대한 데이터를 섭취하고 목표한 결과를 실증해야 제구실을 인정받는다. 특히, IBM의 의료사업 실패에서 보듯이, 인공지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데이터가 오염되지 않고 잘 가공되어야 한다. 또한, 인공지능의 기능이 향상되려면 오류와 단점을 찾아내기 위해 여러 번 실증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외교 분야는 다르다. 외교는 통제되거나 제한된 환경에 국한되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잘 가공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축적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러시아처럼 데이터를 오염시켜 허위정보조작을 통해 다른 나라의 정세를 교란시킨다. 더욱이, 외교는 임상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외교와 인공지능과 상관관계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왓슨의 사례처럼, 양자 관계를 비전문가들이 산업조직이나 기업경영방식으로 접근하고 판단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최근 인공지능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전반과 융복합 추세를 보이면서 디지털 외교, 디지털 국제무역 등 새로운 양태의 국제관계 역학이 부상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의 발전은 국가 경쟁력과 국가안보와 직결되고, 국력의 향배를 결정짓는 관건이 되면서 우리에게 몇가지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첫째,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디지털 국제규범과 담론의 형성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면서 전통적 틀로 해석하고 접근하는 데 많은 한계가 노정되고 새로운 과제가 부상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인공지능의 법적 지위, 개인정보보호와 인공지능 개발의 윤리규칙 등 디지털 거버넌스 규범, 우리 정부 주도로 채택된 유엔 결의안 ‘새로운 디지털 기술과 인권’ 관련 담론, 디지털 국제무역 관련 국제규범, 우주 분야 국제규범 등이 대표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2010년 미국과 이스라엘의 스턱스넷에 의한 이란의 핵시설 타격 사례처럼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다양한 자율무기체계와 침해 도구들은 국가 간의 분쟁과 외교정책의 도구로서 인간을 초월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국제규범은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새로운 진영논리의 개발이다. 최근 ICT 기술 경쟁의 특징은 자본과 기술에 기반을 둔 성능 좋고 저렴한 결과물 생산뿐만 아니라 산업의 표준구조(industry standard architecture)와 산업매력(industry attractiveness)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이다. 규모에 의한 승자 독식 게임이다. 여기서 데이터와 플랫폼이 절대적이다. 바로 ICT 최강국인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패권경쟁의 핵심 요인이다. 미국은 자국의 빅데이터 기업의 이익을 위해 데이터의 국가 간 유통을 옹호하는 데 대해, 중국은 데이터의 주권개념을 내세워 ‘데이터 현지화( localization)’ 정책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이유다. 플랫폼 경쟁으로서 미국은 중국의 IT 기업을 배제하기 위해 2020년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출범시키고 세계적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글로벌 데이터 안보 이니시어티브’로 대응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개도국에 5G, 사이버 인프라를 보급하기 위해 100조 원 이상의 재원을 투입하고 ‘디지털 실크로드’를 구축해가고 있다. 2018년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이 예견했듯이 인터넷 세계가 미국 주도와 중국 주도로 분할되면서(Splinternet) 국경, 종교, 이념을 초월한 현재의 인터넷이 지리적 내지 지역적으로 분할, 구축되고 있다. 이는 종래의 동맹외교의 질적 변환을 알리는 조짐으로서, 전통적인 정치, 경제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제도, 가치체계 등 변수를 고려한 새로운 진영논리를 요한다.

셋째, 데이터 식민주의에 대한 대처전략 모색이다. 미국의 페이스북(Free Basics)이나 중국의 크라우드 워크 등 IT 기업들은 막대한 자본을 동원해 개도국의 데이터를 착취한 뒤, 초연결을 통하여 해당 국가의 시장 질서를 파괴하고 막대한 이윤을 챙기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이를 제국주의 시대의 노골적인 자원과 노동력의 착취와 대비시키기 위해 은밀하게 초연결된 데이터 식민주의(data colonization)라고 칭한다. 이런 네트워크가 구축되면 개도국 시장은 물론 정치, 사회문화 등 영역뿐만 아니라 외교영역에 영향을 주면서 우리의 입지가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우리의 대개도국 공공외교와 국제개발원조(ODA)의 실효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산업혁명은 기술개발로 인하여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것이라는 위기와 공포와 함께 해왔다. 그러나 실업률은 증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의 질을 높이고 직업의 다양성을 통하여 사회분화를 촉진시켜 인류 복지 증진에 이바지해 왔다. 기술의 영향을 받는 외교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2019년 이후 유엔훈련연구기구(UNITAR)가 디지털 시대를 대비하여 시행 중인 ‘Diplomacy 4.0’프로그램, OECD의 인공지능의 공공부문 포괄적 적용 연구, 스탠퍼드 대학이 2114년 까지 지속하는 ‘인공지능에 관한 100년 연구’ 프로젝트는 외교 분화와 외교 지평을 넓히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오히려 인간중심 외교영역을 더욱 확대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개인의견이며,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조원호 대사(mahler.1860@yahoo.co.kr)는 OECD파견(무역위, 경쟁위), 주OECD대표부 참사관(개발원조위, 환경위), 주뉴욕총영사관 경제담당 영사, 주가봉 대사, KOICA 이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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