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세 번째 역사결의 내용과 함의
중국의 세 번째 역사결의 내용과 함의
  • 이강국 前시안 총영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11.2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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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은 지난 11월 8일에서 11일까지 베이징에서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 전회)를 개최하여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의”라는 역사 결의를 심의 통과시켰다. 역사 결의는 중요한 분기점에서 택하는 역사적인 문건으로 중국공산당의 시대를 구분 짓는 일대 사건이다. 중국공산당 역사상 세 번째인 이번 역사 결의는 내년 하반기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개최를 앞두고 시진핑 주석을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더불어 3대 지도자 반열로 올려 3연임을 확고히 하고 장기집권의 문을 열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1. 제3차 역사결의 내용

19기 6중 전회 폐막 당일인 11월 11일 ‘공보’를 통해 제3차 역사결의 요지가 발표되고, 11월 16일 전문이 공개되었다. 이번 역사 결의는 서문 외에 신민주주의혁명의 위대한 승리, 사회주의 혁명의 완성과 사회주의 건설 추진, 개혁·개방 진행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중국 특색 사회주의 신시대 창립, 중국공산당 100년 분투의 역사적 의의, 중국공산당 100년 분투의 역사경험, 신시대 중국공산당 등 총 7개 주제로 구성됐다. 제1주제부터 제3주제에서는 창당 배경과 혁명 과정,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당이 이룬 업적, 마오쩌둥,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 등 역대 지도자들의 역사적 기여 등을 설명했다.

과거사 오류 지적 여부와 논쟁적 사건에 대한 재평가가 담길지 주목되었는데, 마오쩌둥 시기 벌어진 대약진운동, 인민공사를 ‘착오’라고 비판하고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는 ‘재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제2차 역사 결의 때 정리된 공식 평가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한국전쟁과 관련해 “항미원조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둬 신중국의 안보를 지키고 신중국의 대국 지위를 과시했다”고 자찬했다. 천안문 사건에 관해서는 반공산주의 반사회주의 적대세력의 지지와 선동으로 인해 1989년 봄과 여름의 전환기에 ‘엄중한 정치풍파’가 발생하였으나, 당과 정부는 인민에 의지하고 ‘동란’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여 사회주의 국가 정권과 인민의 근본 이익을 수호했다고 기술했다.

시진핑 주석은 제4주제 ‘중국 특색 사회주의 신시대 창립’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당 지도, 엄격한 당 관리, 경제 발전, 개혁 개방 심화, 의법치국, 문화 발전, 사회 건설, 생태 문명 건설, 국방, 안보, 일국양제 및 조국 통일, 외교 등 13개 소주제로 나눠 집권 9년간의 성과를 자세히 기술했다.

국내총생산(GDP) 100조 위안을 돌파했으며 1인당 GDP 10,000달러를 초과했고,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관해서는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중대한 전략적 성과를 거두어 전염병에 대한 위대한 저항 정신을 만들어 냈다”고 자평했다. 홍콩의 혼란 상황을 벗어나게 하였으며, ‘대만 독립’ 분열주의 행동에 단호히 반대하고 외부 세력의 간섭에 단호히 반대하며 양안 관계의 주도권을 확고하게 장악했다고 기술했다. 세계 혼란 국면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꿔 중국의 국제 영향력을 향상시켰다고 외교 분야의 성과를 과시했다. 제18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위원회는 전면적인 샤오캉(小康)사회 목표를 달성하였으며 당과 국가사업에 있어서 역사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총평하면서, 중화민족은 일어서고 부유해지고 강해지는 위대한 도약을 하였다고 선언했다.

마지막 주제인 ‘새로운 시대의 중국공산당’에서는 두 번째 100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2단계 준비(2020년부터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의 기본적인 실현과 2035년부터 금번 세기 중반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를 하였다고 소개하고, 공동부유 촉진, 과학기술 자립자강 추진, ‘전 과정의 인민민주’ 발전 등을 통해 부유한 인민, 강성한 국가, 아름다운 중국을 만들어 가자고 역설했다.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단결하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상을 전면적으로 관철하며 두 번째 100년 목표를 실현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분투를 촉구했다.

2. 역사결의 추진 배경

중국공산당의 과거 두 차례의 역사 결의는 노선 투쟁 승리의 표시이며 최고 권력자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장기집권의 문을 열어 주었다. 1945년 4월 개최된 중국공산당 6기 7중 전회에서 채택된 제1차 역사 결의(“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는 레닌주의 교리를 고수하는 왕밍(王明) 등 소련 유학파들의 노선에 대한 “농촌으로부터 도시를 포위한다”는 마오쩌둥 혁명론의 승리 선언이었다. 이 역사 결의를 통해 마오쩌둥은 당내 1인 핵심 지위를 확립하고 1976년 9월 사망 때까지 27년간 종신 집권하였다.

마오쩌둥 사후 ‘두 개의 범시’(兩介凡是, 무릇 마오쩌둥 주석이 내린 결정은 우리 모두 결연히 지켜야 하며, 무릇 마오쩌둥 주석이 내린 지시는 시종 일관되게 따라야 한다)를 내세운 화궈펑의 범시론과 실사구시를 표방한 덩샤오핑의 실천론 간에 노선 투쟁이 전개되었는데, 1978년 12월 개최된 중국공산당 11기 3중 전회에서 실천론이 승리하여 개혁개방 노선이 채택되었다. 이어서 1981년 6월 중국공산당 11기 6중 전회에서 제2차 역사 결의(“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가 채택되면서 개혁개방 노선이 확고하게 방향을 잡게 되었다. 역사결의 채택 직후 덩샤오핑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실권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였고 국가주석이나 당 총서기 직책은 맡지 않았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 실질적인 중국의 최고지도자로서 역할을 하고 1997년 2월 사망할 때까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위를 가졌다.

시진핑 주석은 집권 초기부터 강도 높은 반부패 캠페인으로 거물급 간부들을 실각시켰지만 이것을 노선 투쟁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은 덩샤오핑과의 차별성을 통해서 당과 국가의 기본노선을 전환하려고 한다. 하나는 중국몽을 내세워 도광양회(韜光養晦)에 종언을 고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부론을 공동부유론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대혁명을 연상시킬 정도로 중국사회에 광풍을 몰고 오고 있는 공동부유는 사회주의 이념과 원리에 보다 더 충실할 것임을 의미한다.

2018년 3월 국가주석직 연임 제한에 관한 헌법 규정이 폐지된 가운데 내년 제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역사결의가 채택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덩샤오핑 시기 채택된 제2차 역사 결의에는 ‘개인숭배 탈피’와 ‘집체영도제도’(집단지도체제)라는 표현이 들어갔으나, 제3차 역사 결의에서는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강조해온 ‘당중앙 집중통일영도’라는 표현이 명시됐다. 중국공산당이 세 번째 역사 결의를 통해 시진핑 주석을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잇는 지도자 반열에 올려 1인 장기 집권체제를 다질 명분을 제공했다. 이로써 3연임으로 총 임기를 15년으로 늘리는 것은 확실시되고 더 이상 얼마나 지속될 지 지켜봐야 할 상황이 됐다.

3. 중국 자신의 길 강조

이번 역사 결의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한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와 ‘21세기 마르크스주의’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상은 당대 중국 마르크스주의, 21세기 마르크스주의이자 중화문화와 중국 정신의 시대적 정수로 마르크스주의 중국화의 새로운 도약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공산당 이론지 치우스(求是)는 11월 15일 시진핑 주석이 2012년 집권 이후 최근까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한 발언을 발췌해 “시진핑 : 마르크스주의와 그 중국화의 혁신이론으로 전 당을 무장하라”라는 제목의 글을 온라인판에 올렸다. 여기에는 지난 7월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행한 연설에 담긴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연설에서 시 주석은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를 계속 추진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우리 당의 기본 지도 사상이며 우리 당의 영혼과 깃발이다”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중국공산당이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상을 높이 세우고 시진핑 자신도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를 강조하는 것은 서방식 민주주의와는 다른 길을 갈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중국 정부 관계자들이 중국식 ‘민주’를 강조하며 쓰는 ‘전 과정의 인민 민주’가 이번 역사 결의에 등장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4. 역사결의가 국제사회에 주는 함의

주지하다시피 중국이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하여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동참한 데 있다. 그런데, 이번 역사 결의는 “서구의 이른바 입헌정치, 다당제 권력교체, 삼권분립과 같은 정치사조의 침투를 경계하고 막아야 한다”고 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와 ‘21세기 마르크스주의’를 강조하고 있어 ‘중국 자신의 길’을 펼쳐나가겠다는 의미를 보다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이 세계에 문을 열고 경제발전을 하면 점점 민주주의 등 서방의 가치를 공유하게 될 것이라는 낙관론은 미국에서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이러한 배경하에서 전방위적으로 대중국 견제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역사 결의 채택 즈음에 바이든 대통령이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화웨이 같은 중국 통신장비 업체 제품의 미국 반입을 제한하는 보안장비 법안에 서명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이번 역사결의 전문이 시진핑 주석과 바이든 대통령 간의 화상 정상회담이 열린 당일에 공개된 점도 눈길을 끈다. 미국에 당당히 맞서 주장할 바를 주장하는 지도자의 이미지가 부각될 수 있는 날에 맞춰 시진핑 주석의 치적과 역사적 지위를 강조한 역사결의의 전문을 공개함으로써 정치적 효과의 극대화를 노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의 새로운 ‘역사 결의’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한국은 중국의 경제 발전에 따른 최대의 수혜자인 동시에 중국발 리스크로 인한 타격을 가장 크게 입을 수 있는 나라이다. 중국발 리스크는 최근 겪고 있는 요소수 부족사태를 통해서도 분명히 확인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중국과의 관계 설정과 국제 정세 속에서 견지해야 할 외교 원칙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물론 주권국가로서 중국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중 수교 이후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중국사회가 다른 사회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음을 제대로 알고 방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국제사회가 시진핑 체제하의 중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위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이강국 전 주시안총영사는 중국 연수, 주중국대사관, 주상하이총영사관, 주시안총영사관 근무로 13년 7개월 동안 중국에서 생활했다. 미국 UCSD에서 공부하였고, 주베트남대사관과 주말레이시아대사관에서도 근무하였다.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 『중국의 新실크로드 전략 일대일로』, 『서안 실크로드 역사문화기행』, 『일대일로와 신북방 신남방정책』을 저술하였으며, 현재는 성균관대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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