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후변화정책과 중견국 공공외교
한국의 기후변화정책과 중견국 공공외교
  • 조원호 前주가봉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11.1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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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6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를 중심으로-

지난 10월 말 로마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 지구의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에 비해 섭씨 1.5도 이내로 억제하자는 노력에는 합의했으나 핵심사항인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 설정과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시기에 대한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그런 가운데 제조업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를 지닌 우리나라는 G20에 연이어 개최된 영국 글라스고우 정상회의에서 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당초 26.3%에서 40%로 대폭 상향 조정 감축하고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관련 산업계, 기업, 에너지 전문가, 일부 환경단체 등은 목표 달성의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국가 경쟁력 약화는 물론 생산시설의 해외이전으로 심각한 고용 창출 문제에 봉착할 것으로 내다보고 정부의 조치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전국 61개 대학의 교수 225명으로 구성된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는 정부의 탄소 중립 시나리오는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 없고 경제적으로 국가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배출량 세계 1위 중국(28.8%)이 2030년 까지 감축이 아니라 오히려 늘려간다는 정책을 발표한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받을 한국이 누구를 위해 무모한 정책을 공약했는지에 대해 비판의 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중견국으로서 한국의 기후변화정책의 공공외교로서 효과성에 대해 타진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의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1988년 세계기상기구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주도로 기후변화 연구를 위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탄생했다. 1990년 IPCC는 기후변화 문제를 대응하기 위한 국제규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유엔은 이를 근거로 1992년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을 기본협약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1997년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기본협약 내용을 구체화하고 이행을 위한 교토의정서를 채택했다. 기본협약과 교토의정서는 기후 변화체제의 근간으로서 작용해왔다.

기후변화협약은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과 각국의 역량(CBDR-RC, 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and respective capabilities)’에 따라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기초하여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공약, 공동이행제도(JI), 청정개발체제(CDM), 배출권 거래(ET) 등 이행국가와 체계를 명시했다. 개도국은 감축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당시 세계 1위 배출국인 미국은 교토의정서가 중국, 인도 등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제외하고, 미국 경제에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참여뿐만 아니라, 미국보다 산업 경쟁력이 약한 EU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개도국도 의무 부담해야 한다는 문제가 당사국 총회 등에서 거론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17차 더반 총회에서 이에 대한 돌파구를 찾고 교토의정서가 만료되는 2020년부터 모든 당사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신기후체제 설립에 합의했다. 그리고 2014년 20차 리마총회에 참가한 196개국은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개도국에 재정지원, 기술개발 및 이전, 역량강화 등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합의 내용이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약의 요체가 되었다.

그러나, 신체제는 교토의정서와 마찬가지로 지구보호를 위한 객관적이고 사회적 내지 과학적 관점보다는 정치적 내지 국가 이기주의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교토의정서의 배출권 거래와 파리협약의 핵심인 ‘각국이 자체적으로 결정한 기여(NDC)’ 조항이 이를 대변한다. 배출권 거래는 배출 초과 국가와 미달 국가에 경제적 도움은 되지만 글로벌 총 온실가스 감축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편법이다. NDC는 중국이 리마 총회에서 ‘감축 공약을 외부에서 검토하는 것은 주권에 대한 모욕’이라고 반발하면서 탄생했다. 즉, 중국 등 주요 개도국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의무부담이 모든 국가에 적용되지만, 각국의 다른 여건을 고려하여 배출량을 자체적으로 결정한다는(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발상에서 마무리된 방편이다. 이에 따라 당사국의 각자 재량은 넓어지고. 당사국을 검토할 수 있는 유엔 차원의 공식적 절차는 사라졌다(이에 대해 현재 재론 중). 다만, NDC는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명확하고 투명한 내용으로 작성되고, 공약후퇴 방지(no backsliding) 원칙이 확립되면서 신체제는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11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전 세계가 합의하고 ‘인류역사상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라고 칭송된’ 파리협정에서 탈퇴했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후변화의 과학적 확실성을 믿지 않는다는 공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1997년 당시 중국, 인도 등 개도국의 의무 제외를 이유로 교토 의정서 비준을 거부하고, 전 세계가 참가한 파리협약을 이기적이고 당파적 차원에서 탈퇴했다.

바이든 신정부는 파리협약에 재가입하고 기후안보에 역점을 두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기후정상회의에서 미국은 기후변화 관련 글로벌 리더십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미국(14.5%)은 2005년을 기준으로 2030년 까지 50%정도 감축한다는 종전의 입장을 견지하고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미국은 리더십을 지향하면서 전향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않은 데 대해 실망하고, 향후 정권이 공화당으로 변경될 경우 미국의 정책 기조가 또 변경될 것이라는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사실,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에 대해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20%, 민주당은 70%의 신빙성을 보이고 있어 근거 없는 우려가 아니다.

중국은 작년 유엔총회에서 탄소 중립시점으로 2060년을 제시했고 3위인 인도(6.6%)는 금번 당사국 총회에서 2070년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중국과 개도국들은 선진국이 개도국 재정지원 등 온실감축 이행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음을 비판하고, 역사적 책임을 재삼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해 미국과 EU는 일부 개도국들이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룬 현 시점에서 1992년 당시 기준으로 선후진국을 구분하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위를 종합해 보면, 국제사회는 기후변화 협상을 글로벌 공공자산 보호보다는 국익을 위해 정치화시켜왔다. 중국의 2030년까지 지속적 배출량 증가 정책은 ‘중국몽’을 실현한 후 2060년 미국을 초월하겠다는 야심 찬 속셈으로 보인다. 결국,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이 지적한대로 온실가스 감축의 의미와 메트릭스가 국가마다 다른 상황에서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공약의 신뢰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가교 역할을 기후변화 정책의 일환으로 주창해 왔다. 또한, 조셉 나이 등 해외 공공외교 전문가들도 기후변화가 한국과 같은 중견국가가 적극 나서야할 분야라고 평가하고 강조해 왔다.

공공외교는 상대국 국민이나 국제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하 여 상대방으로부터 자국에 유리한 정책을 이끌어 내고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평판을 높여 궁극적으로 국익에 이바지하는 수단이고 과정이다. 이 수단과 과정은 상대방이 이에 매력을 느끼고 관심을 갖고 참여할 때 제대로 작동한다. 무엇보다, 이를 위해 신빙성과 신뢰가 중요하다. 더욱이, 21세기 공공외교는 상대방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상대방으로부터 공감(empathy)을 얻고 현실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는 미국이 21세기 벽두에 이락 침공을 계기로 깨달은 신공공외교의 교훈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다음 근거에서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정책은 공공외교로서 효과를 나타내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첫째, 우리 정부의 정책에 대한 공감이다. 중견국의 공공외교의 출발점은 국내 합의다. 그러나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 정책은 국내적으로 합의보다는 불협화음과 불만이 노정되고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국내적으로 공감을 얻지 못한 정책에 대해 국제사회가 매력을 느낄 수 없다.

둘째, 상대방과 역할공유와 상호인정이다. 즉, 구성주의적 접근법이다. 온실가스는 국적도 국경도 없다.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 한 국가라도 뒤쳐진 국가가 있으면 해결될 수 없고, 금번 G20 유치국인 이태리 드라기 총리가 모든 국가가 함께 갈 수 있는 로드맵을 강조한 이유다. 이는 개도국의 참여와 적응능력 배양이 우선임을 뜻한다. OECD가 최근 개발협력과 기후정책을 병치시키고 이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고(Aligning Development Co-operation and Climate Action: The only way forward), 선진국이 2020년부터 매년 1,000억 달러의 녹색기후기금(GCF)를 조성하게된 배경이다. 우리나라(1.75%)만의 독주는 선후진국 간 가교보다는 국제적 불협화음의 표상이 될 소지가 없지 않다. 기후변화의 특성상 보조를 맞추는 포용전략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국가 경쟁력에 도움 된다. 유엔의 지속가능개발 목표(SDGs)와 기후변화 정책은 불가분 관계다.

셋째, 정책의 지속성과 신빙성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정부정책의 특징은 녹색성장 위원회를 주축으로 한 ‘녹색성장’이었다. 2009년 OECD 각료 이사회는 우리나라가 제안한 ‘녹색성장 선언문’을 채택했다. 같은 해 G8 환경장관 회의에서 슈타이너 UNEP 사무총장은 한국의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과 정책을 국제사회의 모범사례로 소개하고 이와 관련된 보고서를 작성, 국제사회에 공표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서 기후변화 정책은 실종되었다. 현 정부는 지난 5월 영국모델을 본받아 탄소중립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위원수는 7배 정도 많지만 영국과 달리 독립성은 거의 없다. 일각에서 위원회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가운데 위와 같은 자충수 정책을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외부에서는 한국도 미국처럼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변경될 것이라고 예측할 것이다. 그러나 중견국 한국과 강대국 미국은 다르다. 기후변화는 한국의 정책 공공외교로서 더 이상 가치를 지니지 못할 것이다. 외교의 한 축을 잃게 된다. 이것이 현실주의이다.

넷째, 환경자원의 가치이다. 최근 프랑스 등 EU 10개국은 기후변화와 싸울 수 있는 최상의 무기는 원자력이라고 밝혔다. 기업계의 대변인으로서 당사국 총회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빌 게이츠는 원전만큼 효율적이고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전력생산 방법은 없다고 전제하고 한국은 대양광 등 재생에너지 생산에 제약을 받는 지리적 환경에 비추어 볼 때 탄소 제로를 목표한다면 원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탈원전을 고집하고 태양광 설치를 위해 수십만 평의 갯벌과 산림을 파괴하고 있다. 환경 가치는 경제적 논리의 시장가격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심미적, 역사적 요소를 고려한 가상가치평가방법(contingent valuation methods)에 의해 측정된다. 새만금을 이 방법에 의해 산정하면 새만금 전력 가치의 수백 배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한국이 국내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현실적이고 경쟁력 있는 지속가능하고 후손을 위한 방법을 버리고, 왜 극소수의 고집으로 인류 공동 유산을 훼손하는지 세계는 전혀 이해 못한다. 빌 게이츠는 자신이 남긴 탄소 발자국에 죄책감은 느끼고, 이를 지우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청정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산과들과 밭과 바닷가에 온통 탄소 발자국을 남기고, 우리 기업은 국제경쟁력을 잃을 것을 걱정하고 있다.

당사국 총회를 바로 앞두고(11월 10일) 탄소 배출 미국과 중국은 세계가 예상하지 못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각계에서는 기후협약의 목표를 달성하고 인류를 위한 고무적 성명이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기후협약 이행을 위해 한층 강화된 노력을 한다는 의지는 표명했지만 기존의 공약을 변경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글로벌 리더의 위상을 견지하고, 중국은 선진국이 의도하는 탄소 국경세 등 환경기준 강화에 대응하면서 기존 목표를 달성한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기후협약의 객관적 균형자 역할을 해오고 GCF의 최대 기여국이면서 그간 미중에 불만을 품은 EU는 공동성명을 조심스럽게 환영했다.

금번 정상회담에서 당사국 총회의 큰 그림을 그려 놓았기 때문에 당사국 총회(11월 12일 폐막)에서 더 큰 그림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구체제 교토의정서가 선후진국 간의 줄다리기였다면 파리협약을 중심으로 한 신체제는 미·중간 패권경쟁, 나아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 대결의 양상을 보일 것이다.

*필자의 개인의견이며,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조원호 대사(mahler.1860@yahoo.co.kr)는 OECD파견(무역위, 경쟁위), 주OECD대표부 참사관(개발원조위, 환경위), 주뉴욕 총영사관 경제담당 영사, 주가봉 대사, KOICA 이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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