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프리카에서 쿠데타가 빈번한가?
왜 아프리카에서 쿠데타가 빈번한가?
  • 조원호 前주가봉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10.0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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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5일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기니에서 기니 특수부대 사령관 마마디 둠부야 중령의 주도로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 쿠데타 세력은 알파 콩데 대통령을 억류하고 정부를 해산하는 한편 과도정부를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둠부야 중령은 쿠데타의 주 원인이 콩데 대통령의 권력 개인화(personalization)라고 밝혔다. 기니는 2010년 콩데 대통령이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이후 정치적 안정세를 보여 왔다. 그러나 콩데 대통령이 지난 해 3월 재선까지만 가능한 헌법규정을 3선까지 가능하도록 개정하고 작년 10월 3선에 성공하면서 콩데의 장기 집권 야욕이 드러나고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쿠데타가 발생한 날 일부 시민은 거리로 나와 쿠데타를 환영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1960년을 전후하여 대부분 독립한 이후 2000년까지 2백 회가 넘는 쿠데타가 발생했고, 2000년부터 2020년까지는 약 40회 일어났다. 1년에 4회에서 2회 이하로 점차 감소 추세를 보여 왔다. 그러나 금년 들어 4번 발생하면서 일각에서는 다시 1960년대로 회귀할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경우 쿠데타는 쿠데타를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례가 이를 입증한다. 1963년 토고에서 첫 쿠데타가 발생한 이후 현재까지 수단에서 15회, 부룬디 11회, 가나와 시에라리온 10회, 그리고 나이지리아, 말리, 부르키나파소 등 중부 아프리카 8개국에서 8회 이상 발생했다. 왜 아프리카 대륙에 혁명은 없고 쿠데타만 빈번히 일어날까?

첫째, 특이한 정치문화다. 아프리카는 국가개념이나 민족개념을 확립할 만한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근저가 매우 약하다. 특히, 구술 문화이기 때문에 역사가 기록되고 축적되지 못한다. 이런 특성으로 인하여 아프리카의 정치 문화는 관습과 신화를 통한 상상력에 기반을 둔다. 아프리카 지도층은 다당제는 국민의 결속을 해치고 종족 간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전통관습과 상치된다고 보고 대통령제하에서 일당제가 아프리카 고유 전통문화에 적합하다고 믿는다. 또한, 지도자들(대통령)은 임기 중에 후계자를 임명하면 후계자가 자신을 살해하기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 권력을 쥐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아프리카 대통령들이 후계자에 대한 구도를 남기지 않고 사망함으로써 쿠데타나 내란을 유발한 경우가 많다.

둘째, 배타적 종족 간 관계다. 아프리카의 국별 종족 수는 수십에서 수백에 이른다. 기니 경우 24개의 종족 집단이 있고 카메룬의 경우 약 240에 달한다. 종족 내 결속은 종족 간 배제를 의미한다. 아프리카의 종족 간 배타성은 일반적 지역감정 개념과 질이 다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룬디처럼 50만 명이 넘는 대학살을 가져온 내란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 이는 3백여 년 지속된 대서양 노예무역과 무관하지 않다. 쿠데타가 빈번한 국가들이 대부분 노예무역의 중심지역인 중서부 아프리카 지역에 치중되어 있음에 비추어 볼 때 더욱 그렇다.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팔려간 노예 숫자는 1천만 명에서 1천 2백만 명으로 추산한다. 노예사냥과 송출과정에서 희생된 수 까지 합하면 수백만명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아프리카 총 인구가 8천만 명임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막대한 인적 희생이었다. 이런 대규모 노예사냥은 종족 간 불신과 적대감을 야기 시켰다. 16세기 콩고의 알퐁소 왕이 포르투갈의 옷과 술을 얻기 위해 자기 백성을 매년 2-3천 명 수출함으로써 오늘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무관심의 씨앗을 심었다. 결국, 종족에게 믿을 대상은 오직 종족 공동체와 소위 추장이었다.

이런 가운데 1960년대 독립하면서 아프리카의 새로운 권력 엘리트들은 국민들로 부터 신정부의 합법성을 인정받는 것을 제1의 목표로 설정했다. 권력 엘리트들은 이를 위해 도시 중심의 비공식 경제계층을 이용했다. 이 계층의 구성원은 출신지의 농촌을 배경으로 하면서 집권층 및 관료들과 직간접으로 인맥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계층의 인정을 받는 것은 국민 대다수의 인정을 받는 것을 의미했다. 즉, 권력층은 비공식 경제계층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고, 이 계층은 정부의 합법성을 인정 하였다. 양 계층 간 후원자-고객(patron-client)이라는 신 가부장적(new patrimonialism) 공생관계의 사회적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이에 따라, 권력을 잡으면 연고 있는 종족의 생활비 지원 등을 지원하고 다른 종족의 불만을 억제하기 위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재원은 제한되어 있고, 고객은 많다. 더욱이, 불만 세력을 통제하려면 그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결국, 국가를 개인화하여 재원을 충당할 수밖에 없다. 불만 세력은 자신의 몫이 작으면 반군으로 돌변하여 쿠데타를 일으키고 개인화를 도모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바이야르는 이를 ‘돌아가며 배 채우는 먹는 민주주의(mangercratie)’라는 이상야릇한(baroque) 제도라고 표현했다. 199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의 일환으로 IMF가 수원국에게 민영화를 권고했을 때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 스티글리츠는 국제개발사업을 통해 개도국에게 민영화는 개인화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IMF를 비판했다. 이로 인해 그는 해고 되었지만 해고된 다음 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금번 쿠데타의 원인이 콩데 대통령의 권력의 ‘개인화’라고 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개인화는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제도화된 관습이다.

셋째, 허약한 국가 능력이다.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들은 3백년 이상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문명화를 명목으로 식민지배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북아메리카 식민지가 개척의 대상이었다면, 아프리카는 착취의 대상이었다. 서구는 북미 대륙에 문명화된 제도를 이식하고, 아프리카에게는 약탈과 분쟁의 문화를 심었다. 특히, 아프리카는 수세기 동안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국가 능력을 배양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세계은행과 버클리대 에반스 교수 등은 한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들의 국가 능력 배양의 요체를 관료의 높은 질적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즉, 독립 후 국가건설 단계에 국가가 정치, 경제, 사회의 구심점이 되어 건국의 제도적 틀을 마련하고 베버적 관료제를 구축해 나감으로써 대전환을 이룩하고 국가능력을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았다. 반면, 독립 당시 아프리카는 깊은 잠에서 깨어난 어린 아이 수준이었다. 실례로 아프리카에서 관료조직이 제일 발달한 국가 중 하나인 코트디브아르의 경우 독립한지 20년이 되는 1980년에도 국장급(director) 이상 고위 관료 중 코트디브아르 출신은 13%에 불과했다. 아프리카는 전환기적 상황에서 사회학자 스카치폴 표현대로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제도적 구조’를 자율적으로 구축할 역량과 기회가 없었다. 오늘 날에도 큰 변화는 없다.

아프리카 사회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나누어지고, 낮과 밤의 세계가 서로 다르다. 낮에 보이는 세계는 서구에서 수입한 현대 국가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보이지 않는 전통적 토속 생활로 돌아간다. 때로는, 막강한 영향력을 쥐고 있는 군인계층은 낮에는 군인이고 밤에는 반군이 된다.

금번 기니 군부 쿠데타에 대해 미국, 프랑스(EU 대변),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규탄하고 콩데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했다. 중국은 누가 권력을 잡든 중국의 영향 하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자만에 별다른 반응이 없다. 일본의 대 아프리카 전략은 유엔 조직 개편을 통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해 내정 간섭 없이 은밀히 원조를 주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쿠데타를 정의할 때 연극에 비유한다. 연극의 배우만 바뀌면 쿠데타, 시나리오까지 바뀌면 혁명으로 간주한다. 앞에서 개략적으로 살펴본 요인에 비추어 볼 때 향후에도 혁명 없는 쿠데타 발생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외부의 의례적 반응도 지속될 것이다.

*필자의 개인의견이며,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조원호 대사(mahler.1860@yahoo.co.kr)는 OECD파견(무역위, 경쟁위), 주OECD대표부 참사관(개발원조위, 환경위), 주뉴욕총영사관 경제담당 영사, 주가봉 대사, KOICA 이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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