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아프간 복귀와 한국의 대응
탈레반의 아프간 복귀와 한국의 대응
  • 이강국 前시안 총영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09.0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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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군이 철수하고 탈레반이 대통령궁을 장악한 후의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 모습은 탈출 인파로 인한 아비규환의 혼잡으로 인해 46년전 월남 패망 당시 ‘사이공 공항’ 비극 장 면을 연상시켰다.

지난 4월 바이든 대통령이 9.11 테러 20주년이 되는 “9월 11일까지 철수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지 불과 넉 달여 만에 일어난 일이다. 아프간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the longest war)이었지만 ‘빛의 속도로’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탈레반의 카 불 입성은 아무리 빨라도 6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20년간 육성한 아프간 정부군 을 믿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불과 카불 함락 1개월여 전인 7월 8일 연설에서 “탈 레반은 월맹군이 아니다. 역량이 그에 훨씬 못 미친다”며 “주아프간 미국 대사관의 지붕에 서 사람들이 구조되는 모습을 보게 될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헬리콥터들이 카불공항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숨 가쁘게 대사관 옥상을 오르내렸 다. 더욱이 8월 26일에는 카불공항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미군 13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것은 충분히 예상되었던 결과이며 아니 예정된 운명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제국의 무 덤’이니까. 영국은 부동항을 얻기 위해 남하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으나 아프가니스탄의 끈질긴 저항에 부딪쳐 결국 독립을 허용했다. 소련은 아프가니 스탄 대통령을 살해하고 친소 사회주의 정부를 세웠으나 ‘무자헤딘’의 맹렬한 저항에 부딪 쳐 10년 동안의 전쟁에서 큰 대가를 치른 채 철수하였는데, 결국 소련 붕괴의 결정적 계기 가 됐다. 미국은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고 2001년 9.11 테러 복수심에서 ‘테러와의 전쟁’ 명분으로 아프간을 침공하여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였다.

필자는 업무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두 차례 가본 적이 있다. 첫 번째는 2002년 10월 아 프간 원조공여국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회의 참석 후 카불공항 출발 시점에서 탈레 반 테러경보가 있어 며칠 기다린 후 버스를 타고 바그람 공군기지로 이동하여 유엔기를 타 고 아프간을 나왔다. 두 번째는 2007년 10월 미국 측과 바그람 기지에서 지방재건팀(PRT:  Provincial Reconstruction Team) 추진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이때는 카불공항에서 바그람 기지로 헬기를 타고 이동하였는데, 육로이동이 매우 위험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결 국 미국도 아프간 제국의 무덤에 빠지는 것에 예외가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고 또 하나, 미군이 아프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막아내면서 결과적으로 이들이 중 국 신장위구르 지역으로 넘어가는 것을 차단하는 방파제 역할을 함으로써 미래의 경쟁자를 이롭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간에 이미 발을 들여놓았던 미국으로서는 2011년 5월 1일 알카에다의 수괴이자 9.11 테러의 주범인 빈 라덴 사살에 성공한 직후 ‘항구적 자유(enduring freedom)’를 심겠 다는 대의명분을 거두고 아프간에서 빠져나오는 데 박차를 가해야 했었다. 이때 나왔으면 명분도 살리고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도 목표를 달성하였다고 판 단하고 2014년 5월 27일 ‘아프간 철수’를 발표하였으나 탈레반의 공세로 치안이 악화되자 2015년 10월 15일 임기 내 아프간 주둔 미군 완전 철수 계획을 백지화했다. 심약한 오바마 로서는 아프간 철군에 따른 책임과 비난을 감수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철수과정에서 큰 혼란이 있었지만 이번에 미국이 아프간에서 빠져 나온 것은 잘했다고 본다. 바이든 대통령 이 아프간 철군 계획을 발표하였을 때 미국 국민의 70% 이상이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가 발 표되었다. 이제 미국은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의 팽창을 막는데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 했다.

M16과 M4카빈, 험비, 블랙호크 헬기 등 많은 무기가 탈레반 손으로 몽땅 넘어갔다. 베 트남이 통일 후에 미군이 남기고 간 장비로 인도차이나반도 강자로 부상한 것처럼 아프간 은 중앙아 군사 강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중국은 탈레반의 재집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탈레반 정권의 존재 자체만으로 아프간과 약 70㎞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분리 독립 세력을 자극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독립 을 내건 이슬람 테러 단체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을 지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 다. 탈레반이 노획한 미제 무기는 여차하면 중국을 겨냥하는 비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래서 중국이 동분서주하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탈레반 2인자로 알려진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톈진으로 초청해 신 장 위구르 독립운동 단체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과의 단절을 촉구하면서 일대일로 전략을 통한 아프간 재건 사업과 경제 지원을 당근으로 제시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지정 학적 요충지인 아프간과 일대일로를 통해 좋은 관계를 맺는다면 중앙아시아 지역 전체로의 영향력 확대도 쉬워진다.

그러나 상황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극단주의 테러리즘이 일대일 로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 경내로 유입될 수 있고,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보호하기 위해 개입 하면 ‘제국의 무덤’에 빠질 수 있다. 탈레반의 복귀는 9·11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입장을 따랐던 유럽에도 나비 효과가 나타날 조짐이다. 유럽의 걱정은 아프간 난민에 있다. 아프간 난민은 국경을 맞댄 파키스 탄·이란·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을 거쳐 유럽으로 향할 가능성이 있어, 중 동 난민의 유럽행 복사판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래서 파키스탄은 국 경에 철조망을 두르고 곳곳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다. 그리스와 터키는 난민들이 자국 이 다시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이 되지 않도록 국경을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 도 아프간에서 오는 대규모 난민을 수용하는 데는 난색을 보이고 내심 인접국에 머물기를 바라고 있다. 다만,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아프간인 조력자들의 안전한 후송에는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한국은 20여 년 간 아프간에 10억 달러 이상의 원조를 했고, 종합병 원, 지방재건팀(PRT) 사업 활동 등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공관과 병원 등에서 근 무하면서 우리를 도운 아프간 사람들을 국내로 이송시켰다. 아프간에게 큰 도전은 경제다. 아프간은 국제통화기금(IMF) 명목 금액 기준 2021년 전망 치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92달러 수준이며, 세계 204위로 최빈국으로 분류된다. 게 다가 탈레반 복귀에 따른 혼란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고, 자칫 과거처럼 가난한 농민들이 양귀비 재배로 빠질 수 있다. 난민과 마약, 이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국 제사회와 탈레반은 대화하고 협력해야 한다. 난감한 상황이 됐지만, 국제사회가 탈레반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합법정부로 인정할지에 대해서는 미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철수가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카불공항 폭탄테러로 다수의 미군 피해가 발생하 여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들끓고 탄핵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탈레반 정권 승인 문제를 꺼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탈레반이 어떤 정체성을 보일지, 특히 진정으로 테러집단과 관계를 단절할 것인지 예단하기 어렵다. 그런데,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을 방치해 두면 국제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매우 클 것이다. 인권, 난민, 테러, 마약 등 인간안보와 관련된 주요 쟁점이 아프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아프간의 불안정성은 세계 전역의 위험 요인이 된다. 결국 아프간의 안정화는 국제사회 공동의 이익이다.

탈레반 정권에 압력을 가하는데 치중하기 보다는 선제적으로 탈 레반 정부가 국제사회와 협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된다. 탈레반도 국 제사회 협조와 외국인 투자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탈레 반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국제사회가 노력한다해도 탈레반이 테러문제에 대해 전 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방재건팀(PRT) 운영 등을 통해 거버넌스, 보건·의료·교육·농촌개발 등의 분야에 서 아프간의 역량강화를 지원해 왔고 개발협력 분야 노하우가 풍부하다.

탈레반의 대외 홍 보창구인 문화위원회 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아프간 의 합법적인 대표 정부로 인정받기를 희망한다”고 밝히면서, “한국 정부가 아프간의 미래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탈레반 정권에 대한 미국의 태도도 바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인권 탄압과 테러기지화에 반대한다는 데에는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어 가야하지만 아프간 상황 추이를 보면서 개별적인 소통채널 창구를 전면가동 해서 아프간이 국제사회 정상국가로서 역할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전후 복구 참여 기회를 잡도록 배전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 이다. 

(위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이강국 전 주시안총영사는 중국 연수, 주중국대사관, 주상하이총영사관, 주시안총영사관 근무로 13년 7개월 동안 중국에서 생활했다. 미국 UCSD에서 공부하였고, 주베트남대사관과 주말레이시아대사관에서도 근무하였다.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 『중국의 新실크로드 전략 일대일로』, 『서안 실크로드 역사문화기행』, 『일대일로와 신북방 신남방정책』을 저술하였으며, 현재는 성균관대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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