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정상과학(脫正常科學) 시대와 K방역 공공외교
탈정상과학(脫正常科學) 시대와 K방역 공공외교
  • 조원호 前주가봉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08.3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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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하순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10만 명 당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3번째로 낮은 국가로 알려지면서 K방역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이를 해외에 널리 전파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관련 조직을 개편하고 예산을 편성했다. 해외 외신들도 한국이 자유 제한이나 지역 봉쇄 없이 방역에 성공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K방역이 국제표준안으로 채택되면서 일부 외신은 K방역을 각국에 적용해야 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지난 7월 중순 확진자가 1300명대에 이르러 방역 4단계로 높아지면서 방역수칙으로 실내 체육시설에서 음악 속도를 120bpm 이하로 제한한 데 대해 영국 언론 매체 BBC, 가디언, 미국의 뉴욕 타임지 등 외신은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다른 국가에 비해 잘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K방역을 외교정책으로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일부 학계에서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공공외교를 내세우고 있다. 탈정상과학(脫正常科學) 시대에 코로나 팬데믹 방역이나 과학기술이 공공외교의 대상으로 적합한지 살펴보자.

20세기 중반 과학의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이 밝혀지고, 과학기술이 야기한 기술적 위험을 과학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세기 후반 사실이 더욱 불확실하고, 위험부담이 커지고, 과학의 가치가 중립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확실성을 제공해주던 정상과학의 패러다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새로운 상황에 적용되는 과학이 탈정상과학(脫正常科學, post-normal science)이다. 탈정상과학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과학의 주체가 과학자 공동체에서 대중과 이해집단을 포함한 ‘확장된 동료 공동체(extended peer community)’로 바뀐다. 과학적 사실도 과학자의 실험 결과뿐만 아니라 이해 당사자의 경험과 지식, 지리적 역사와 환경 등을 포함하는 ‘확산된 사실(extended facts)’로 변한다.

탈정상과학의 사회는 ‘위험사회(risk society)’이다. 정상과학 시대에는 위험을 지각하고 해결가능한 것으로 간주했다. 즉, 위험을 개인이나 사회적 차원에서 인 식하고, 사회적 기능의 하나로 포함시킬 수 있다고 보고 이를 과학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탈정상과학 국면으로 이동하면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가치가 논쟁의 대상이 되면서 과학을 응용하거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서 해결책을 강구하는 방식은 더 이상 효력이 없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로 고준위 방사능 낙진의 피해를 받은 영국 북부 호수 지방에 위치한 컴브리아 지역의 고지 목양농(牧羊農)에 대한 사례 연구가 종종 인용된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영국 정부는 사고 초기 방사능 수준을 분석한 결과 건강에 위협 요인은 없고 모든 사태는 열흘 이내에 끝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방사능 세슘 수준이 EC의 허용치인 1천 베크렐을 50% 초과한 1,500 수준였는 데도 불구하고 오염이 이미 무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주장하고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식품 안정에 우려할 이유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얼마 후 양에서 검출된 방사능 수준이 낮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높아지면서 컴브리아 지방의 양 판매를 무기한 금지시켰다(일부 지역은 1991년 까지 제한 조치가 계속되었다). 과학자들은 고지에 퇴적된 세슘 농도가 저지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저지의 농도를 고지에 적용하는 등 컴브리아 특수의 지리적 조건과 생물성장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과학적 지식은 현장에 맞지 않았다. 농부들은 오랜 경험과 고도로 세련된 전문적 판단에서 정부의 조치나 과학자들의 예측이 잘못임을 알고 이들을 불신했다. 특히, 보상문제에 대해 정부가 수시로 말을 바꾸는 것에 대해 ‘고의적 음모와 악의가 담긴 사기’라고 분노했다.

컴브리아 연구를 통하여 정부, 농부, 과학자 간의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의 문제점이 노정되면서 위험 관리와 통제에서 신뢰가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과학자의 전문지식과 기술관료의 표준화되고, 경직된 판단 기준이 불신을 초래하고 문제 해결에 한계점을 들어낸 반면, 비전문적인 농부의 현지(local) 지식과 유연한 대처가 유용함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근거하여 탈정상과학 국면에서는 과학과 대중 간의 관계를 일방적인 ‘결핍 모형(deficiency model)’보다는 쌍방향의 ‘맥락 모형(context model)’ 측면에서 접근한다. 결핍 모형은 과학에 대한 대중의 무지(無知)를 전제로 하여 대중의 머리에 과학적 사실과 지식을 채운다는 개념에 기초한다. 이를 근거로 과학계는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더 잘 알고 작동원리를 아는 것을 대중이 과학을 이해하고 과학을 지지할 것으로 생각하고 과학지식을 퍼트리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상기 컴브리아 사례처럼 대중은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단순한 수용자가 아님이 밝혀졌다. 특히, 대중의 과학지식의 성격이 과학자의 과학지식과 다르게 나타나면서, 대중은 과학지식이 일관되지 못하고, 모순되고, 신뢰하기 어려우며, 상황에 따라 부적절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맥락 모형이 중요시되고 있다. 맥락 모형의 핵심은 과학기술이 사회와 무관하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요소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고려한다. 즉, 대중을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집단으로 해석하고 과학의 개념을 과학 지식뿐만 아니라 사회제도와 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한다. 그러나, 서구의 350여 년 과학 대중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맥락 모형은 실질적으로 실행이 어려운 이상형이다.

과학과 대중 사이에 사회적으로 구별이 시작된 것은 과학계가 형성되고 과학혁명이 일어난 17세기부터다. 특히, 1660년 영국의 왕립학회(Royal Society)와 1666년 프랑스의 왕립과학아카데미(Academie royale des sciences)가 설립되면서 과학계가 제도화되고, 과학자들은 토론하고 학회는 과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18세기 중반 과학 전시관이 개설되고 오늘날 개념의 전문적 과학연구로 변모한 가운데 1799년 영국의 왕립연구소(Royal Institution)가 설립되었다. 이 연구소의 주 역할은 과학 대중화였다. 19세기 중반 영국 과학진흥협회(BAAS)와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가 설립되고, 과학을 알리는 방법이 소수 엘리트 중심의 토론에서 중상류 층을 대상으로 한 전문적 강의로 변모하고 점차 하류층 까지 확대되었다. 19세기 후반 들어 산업화의 가속화로 새로운 사회계층이 생겨나고, 도시인구가 증가하고, 대중의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과학은 독자 노선을 추구하고 과학 대중화는 정치적 문제로 부상하였다. 1828년 과학전문지 아테네움(Athenaeum)이 발간되고, 뉴욕 타임지와 런던 타임지 등 언론매체는 과학혁신과 기술경쟁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이런 가운데 과학 지식이 ‘과학적 개념’과 ‘일반 대중적’ 개념으로 차등화되고 과학계가 폐쇄적 집단으로 굳어지면서 과학계와 대중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균열이 생겼다. 이 때문에 오늘날 대중의 참여는 본질보다는 절차상 형식적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한, 대중들은 위험을 확률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재앙의 정도, 통제 가능성, 후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총체적으로 인식하면서 대중의 과학지식이 높아질수록 과학에 대한 비판의 수위도 높아졌다. 또한, 과학에 대한 비판세력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사회적 갈등이 표출되고 반과학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에 편승하여 언론매체는 과학기술 자체보다는 사회적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해 왔다. 결과적으로, 과학 대중화 운동을 더 한다고 대중의 지지를 얻는 것은 아니었다. 이는 운동량이 클수록 홍보 효과도 커진다는 일반적 인식과 배치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맥락 모형의 본질은 은폐되고 형식을 둘러싼 논쟁만 무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같은 맥락에서 과학기술이나 팬데믹 전염병의 방역을 다른 나라 대중을 상대로 공공외교를 펼칠 경우 논쟁만 불러일으키고 국익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줄 소지가 크다.

공공외교는 국익을 증대하고 국가의 품격과 위상 높이는 수단이고 과정으로서, 소프트 파워와 연계되어 이해되고 행해진다. 소프트 파워는 행위자가 문화, 가치, 이데올로기 같은 무형의 힘을 통하여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능력이다. 즉, 매력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상대방도 원하게 만들어 목적을 달성하는 힘이다. 그러나, 9.11 사태 직후 이 접근법에 기반을 둔 미국의 공공외교는 일방적이고 패권적이고 문화 제국주의로 비난받으면서 쌍방 의사소통이 신공공외교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쌍방 의사소통행위를 넘 어서 함께 소통하고 참여하여(engagement) 보다 유익한 글로벌 공공재를 만들어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계층의 다양한 인식과 태도, 국가 간 과학기술의 차등 등을 고려할 때, 과학기술이나 팬데믹 전염병의 경우에는 쌍방 의사소통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컴브리아 경우처럼 한 국가의 일정 지역에서 조차 쌍방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데 다른 국가의 대중을 상대로 외연을 넓혀 실행하는 것은 실효성이 거의 없다.

K방역은 과학적 지식과 사회제도와 문화요소의 혼합물이다. 그러나, 과학적 지식과 위험에 대한 문화적 태도 그리고 사회 조절 능력은 국가마다 다르다. 컴브리아 사례처럼 120bpm 같은 과학적 접근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사회적 불신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대부분 개도국은 과학기술을 식민제국주의의 도구로 간주하고, ‘기계적 연대(mecanical solidarity)’를 가장 중요한 가치관으로서 삶의 제일 신조로 여긴다. 상당수 개도국이 ‘기술로 부터의 보호주의’를 내세우는 이유다. 이런 환경에서 사회적 거리를 시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선진국 일부 시민이 마스크를 거부한 것은 과학적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과학에 대한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각국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제도와 문화가 상이한 상황에서 K방역 같은 단일 문화권에서 가능한 하향식 접근법은 반(反)K방역을 야기 시키며 좋지 못한 선례로 세계 역사에 기록될 소지가 있다. 일방적이고 하향적 특성을 지닌 K방역은 수평적이고 쌍방 교류를 특징으로 하는 K팝과 전혀 다르다.

그러나, 무엇보다 탈정상과학 시대의 핵심은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과 초고속 변화다. 이는 어느 특정 국가의 과학기술 수준, 어느 특정 국가의 사회제도와 문화, 어느 특정 시점에 기초한 정태적 모델은 의미가 없음을 뜻한다. 델타 변이처럼 바이러스가 자기 조직화하여 공진화(co-evolution)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팬데믹 전염병의 방역이나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공공외교는 국가 단위보다는 WHO나 OECD 같은 국제기구를 통하여 포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국익에 훨씬 도움이 된다.

*필자의 개인의견이며,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조원호 대사(mahler.1860@yahoo.co.kr)는 OECD파견(무역위, 경쟁위), 주OECD대표부 참사관(개발원조위, 환경위), 주뉴욕총영사관 경제담당 영사, 주가봉 대사, KOICA 이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 대학원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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