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콜롬비아 파스토(Pasto), 산꼭대기 활주로의 기억
[기고] 콜롬비아 파스토(Pasto), 산꼭대기 활주로의 기억
  • 김주헌 GGGI 前 콜롬비아 사무소장 (현 필리핀 사무소장)
  • 승인 2021.08.25 0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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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떼언덕(Monserrate)에서 내려다본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전경. 사진: 김주헌
몬세라떼언덕(Monserrate)에서 내려다본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전경. 사진: 김주헌

 

#1. 숨이 찼다. 물병 한 개와 과일 몇 개만 들었을 뿐인데 말이다. 슈퍼마켓 까루쟈 (Carulla)에서 숙소까지의 거리도 10여분 분밖에 되지 않았다. 해발고도 때문이었다. 2018년 1월, 고도 2,640m 안데스 산맥의 도시, 콜롬비아 보고타(Bogotá)에 도착한 첫 느낌이었다. 출국 전 지인들은 콜롬비아(Colombia)와 콜럼비아(Columbia)도 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발음이 비슷한 미국 명문 사립대나, 스포츠 브랜드 정도를 무의식적으로 떠올렸을 테다. 그 이외에는 안전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부는 콜롬비아 마약조직을 상대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인 바 있다. 마약왕으로 알려진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일대기를 다룬 넷플릭스의 나르코스(Narcos)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끈 것도 한 몫했다. 좀 더 안다는 사람들은 아마존 산림과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을 이야기하거나, 심지어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자살골을 넣은 후 살해된 축구선수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낸 지인도 있었다.

그만큼 우리에게 제한적으로 알려진 나라임은 분명했다. 그런데, 직접 살아 본 콜롬비아는 전혀 딴판이었다. 고산지대, 평야지대, 아마존, 캐리비안의 지정학적 다채로움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풍성한 문화/예술적 깊이, 자신감 넘치고 창의적인 라틴 특유의 사회분위기에 매료되고 말았다. 수도 보고타는 미술관, 박물관등을 바탕으로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이었고, 20여년전 폭력과 마약으로 점철되었던 도시 메데진(Medellín)은 소문과는 전혀 다른 혁신도시로 변해있었다. 콜롬비아에서 유일하게 지상 전철을 운행하고, 루타에네(RUTA N)라는 씽크탱크는 소위 디자인씽킹 접근법으로 도시의 의료․환경․사회문제 등에 관한 사회적임팩트를 최적화하는 해결책 등을 메데진 시에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하며, 사회적기업, 스타트업 육성등을 담당하고 있었다. 여느 선진국 시스템 못지 않았다. 우리가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2018년 5월 30일 콜롬비아는 37번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메데진(Medellín)에 위치한 루타에네(Ruta N) 건물외벽과 실내 모습
메데진(Medellín)에 위치한 루타에네(Ruta N) 건물외벽

 #2.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그란 콜롬비아(Gran Colombia), 더 멀리는 잉카제국의 후손들이 어떻게 도시를 디자인 한 것인지, 산꼭대기를 다듬어 평평한 활주로가 생겼다. 구름이라도 많이 낀 날에는 대체 어떻게 착륙을 할까. 옆자리에 앉았던 후안카를로스가 농담을 했다. 조종사는 오직 한 가지 옵션 뿐이 없다고. 오로지 착륙 뿐. 비상탈출을 할 강도 바다도 없다. 아비앙카(Avianca) 항공이 콜롬비아 전역에서 2-3명 밖에 안되는 최고의 조종사만 활용한다는 소문도 이해가 갔다. 혹자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비행장이라고도 하고, 착륙 후에 승객들이 모두 박수를 치는(!) 유일한 공항이라는 농담도 했다. 격무로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손에 식은 땀이 흐르고, 가족들의 얼굴도 스쳤다. 세번의 착륙시도 끝에 마침내 착륙에 성공했다. 승객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린시절 등산을 할때 산장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산에 살고 있을까 걱정을 했던 기억이 있다.

어떤 인류는 물길을 막아 삶의 터전을 만들었지만, 이들은 산을 깎고 조각내 산악 도시를 만들었다. 경이로운 인류의 성취다. 현재 우리는 모두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지만, 이런 인류의 성취를 복기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해발고도 2,500미터가 넘는 산꼭대기에 위치한 파스토(Pasto) 공항 활주로이야기다. 이 도시는 콜롬비아 서쪽 최남단에 위치한 나링뇨(Nariño) 주의 주도이고 에콰도르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바삐 보이는 일상이지만, 모두가 모두를 알고 포옹과 악수로 마음을 표시하는 모습이 정겨웠다. 나링뇨 주는 안데스 산맥, 아마존 산림, 생물다양성 지대를(chocó biogeográfico) 접하고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파스토에 머무르는 사흘동안 한국인은 커녕, 단 한 명의 아시아인도 만나지 못했다. 방문전 한국 관련 검색을 해봤더니 2015년 LG CNS가  파스토시 버스관리시스템 사업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부였는데, 이 먼 곳까지 진출한 한국기업의 개척 정신도 알아주긴 해야겠다. 적도 근처의 작열하는 태양 때문인지 여성들이 피부미용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고 했다. 우연히 들른 한 현지 병원에서는 한국의 발전된 피부과와 성형외과 시스템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3. 나링뇨 주 공무원과 커피를 주제로 환담을 나눴다. 사실 콜롬비아 커피에 대해서는 굳이 많은 이야기가 필요없겠지만 말이다. 현지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스타벅스 등으로 납품되고 있고, 품질은 커피제국으로 불리는 콜롬비아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다. “커피로드(Eje cafetero)”에 위치한 소도시 낀디오(Quindío)의 커피 농장에서 이틀밤을 지낸 적이 있다. 오렌지, 바나나, 카카오 나무와 어우려져 최상급 풍미를 만들어내는 커피 농장에서의 이틀밤은 특별했다. 갓 볶은 원두를 갈고 고요히 앉아, 주변의 향기와 함께 커피를 마시던 그 찰나의 기억은, 여느 커피전문점에서 콜롬비아 커피를 마주할 때마다 불쑥불쑥 기억을 비집고 찾아온다. 그 작은 갈색의 액체가 세상을 바꿀지는 못할지라도, 세상에서 오는 우울함을 달래줄 때가 있다는 한 작가의 문구와 함께 말이다. 보고타에 체류할 때, 남미의 스타벅스라 불리는 후안발데스(Juan Valdez) 커피전문점에 들러 아침마다 항상 커피를 마시곤 했었는데, 그 곳에는 팔뚝에 근육이 넘치고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농부가 커피자루를 한쪽 어깨에 들쳐멘, 마초느낌 물씬 나는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알고보니 후안 발데스에서 매년 커피농부 선발대회를 개최한다고 했다. 최고로 뽑히려면 겉모습뿐만 아니라, 커피 농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증명해야 한다. 이 매력적인 브랜드가 몇년 전 압구정동에 문을 열었다가, 한국 소비자들의 선택을 못받아서 문을 닫았다고 하는데,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파스토 공항 활주로에서. 사진 김주헌
산꼭대기에 위치한 파스토 공항 활주로에서. 사진 김주헌

 #4. 보고타 한복판 후안발데스 커피샵 근처에는 대형 콜롬비아 국기가 걸려 있었다. 선명한 노란, 파란, 빨간색의 국기는 높은 산을 배경으로 강렬한 느낌을 주곤했다. 노란색은 금(gold), 파란색은 물(water), 빨간색은 피(blood)를 상징한다. 금은 콜롬비아가 보유한 거대한 광물자원을 상징한다. 아직 보유자원의 20퍼센트 정도밖에 활용을 못했으니, 발전 가능성은 많다. 파란색은 물을 상징하는데, 지정학적으로 콜롬비아는 서쪽으로는 태평양, 북쪽으로는 카리브 해와 맞닿아있다. 카리브해의 항구도시 카르타헤나(Cartagena)는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인 낭만과 열정의 도시다. 기후와 생활양태가 고산지대에 위치한 보고타나 메데진과는 전혀 다르다. 아마존 산림과 안데스 산맥을 관통하는 여러 강도 흐른다. 마지막으로 빨간색은 스페인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운 콜롬비아 인들의 피를 상징한다. 현재의 콜롬비아는 1819년부터 1831년 동안의 그란콜롬비아(Gran Colombia), 대콜롬비아공화국으로부터 유래한다. 당시의 영토는 오늘날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 전체 및 코스타리카, 페루, 브라질, 가이아나의 영토도 부분적으로 포함하고 있었다. 12년간 라틴아메리카의 맹주 역할을 했던 인물은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 해방을 이끌었던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로, 스페인 식민지배에 대해 저항하던 라틴 아메리카 세력을 통합했다. 그러나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후 연방주의자들과 분리주의자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고,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 강력한 국가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 미국의 입장 등 대내외적 이유로 그란콜롬비아는 해체되고 만다. 오늘날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의 국기는 그란콜롬비아 국기의 영향을 받았다.

#5. 비오는 어느 일요일 오후, 보고타 한 복판 7번 도로 70번대 길. 미국국제개발처(USAID) 사무소장과 직원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는 장소에 들러 인사도 할겸 맥주나 한 잔 하러 가는 길이었다. 달리는 차창 너머로 고위층 인사들이 자주 방문한다는 엘 노갈(El Nogal Club)이 보였다. 상류층 클럽 같은 곳이었다. 건물이 좋다고 말하는 내게, 친구는 한숨쉬며 말했다. “한 10여 년 전에 저 건물 폭파됐었지. 저거 전부 새로 지은 거야. 게릴라들에게 거액을 받은 사람이 주차장에 폭탄을 놓고 나오기로 했는데, 그 사람 미처 나오기 전에 게릴라들이 폭파 단추를 눌러버렸지. 벌 받은 거지. 내 친구는 5분 전에 나와서 살았어. 많이 죽었지. 많이.”53년간의 내전은 사망자 22만 명, 강제이주자 5백70만 명, 실종자 2만5천명이라는 무시무시한 숫자를 남겼다. 다른 나라와의 전쟁도 아닌데 말이다. 이 정도면 콜롬비아인들에게 뿌리 박힌 아픔과 분노를 이방인의 시각으로 감히 헤아리기 쉽지 않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내전, 그리고 1990년대부터 정부와 게릴라 그룹 사이에 평화 논의가 시작된 이래, 2016년 12월 쿠바 하바나에서 콜롬비아 정부와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은 평화협정을 맺었다. 핵심은 혁명군을 공식 정치단체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협상 후 이들은 모든 무기를 정부에 반납했고, 7,000여 명이 무장해제됐다. 평화협정에는 난관이 많았다. 국민투표 후 나라는 반으로 갈라졌고, 실제 협정의 이행은 2017년 중반에서야 시작됐다. 협정을 주도한 산토스 전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지난 40년을 통틀어 살인율도 근래가 가장 낮다. 테러공격, 납치 등이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미래지향적인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많은 피해자 가족들이 피눈물을 삼켜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르따헤나(Cartagena)의 밤풍경. 사진: 김주헌
까르따헤나(Cartagena)의 밤풍경. 사진: 김주헌

#6 콜롬비아 정부와 반군사이에 체결된 하바나 평화협정에는 6가지 중요한 주제가 있다. 통합적 농촌개혁, 반군 세력의 정치참여, 적대적 행위 중단, 불법 작물재배 대체재 마련, 희생자 대우, 실행 및 검증 메커니즘 수립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요점은 반군의 주 근거지였던 농촌지역을 중앙경제에 편입시키는 통합적 농촌개혁이다. 나링뇨주에 머물 때, 해변가에 위치한 투마코라는 도시에서 콜롬비아 코카인의 20%가 생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코카인 등 불법 작물재배의 대체재 확보를 위해서는, 새로운 작물 선정, 역량교육, 시장확보 등 농업가치사슬 전방위적 혁신이 필요할 것이다. 이에 더해 IT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혁신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술과 경험에 더해, 임팩트투자의 시대적흐름에 맞춰 다양한 사업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남아메리카 대륙 북단에 위치한 나라에 갑자기 한국이 관심을 가져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콜롬비아는 6.25 한국전쟁 당시 중남미 국가로는 유일하게 군대를 파견한 혈맹이다. 경제적으로도 2016년 칠레, 페루에 이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3번째 중남미 국가이기도 하다.

#7. 이반 두케 마르케스(Iván Duque Márquez) 콜롬비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차 방한했다. 중남미 3대 시장으로서 풍부한 지하자원과 5천만명이 넘는 성장세의 인구, 문화적 다양성뿐만 아니라, 평화협정 이후 경제재건, 농업혁신, 디지털 전환, 녹색경제 인프라 확립 등에 대한 의지를 고려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와 협력이 기대된다. 체계적이고 정확한 한국사람들과 창의적고 자신감 넘치는 콜롬비아 사람들이 만나면 생각해보지 못한 경제적, 문화적 융합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한다. 파스토행 아비앙카 비행기에 같이 탑승했던 후안카를로스는 현재 주한콜롬비아대사가 되어 양국의 협력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데 종횡무진 역할을 하고 있다. 머지 않은 미래에 그 산꼭대기 비행장에 다시 한 번 내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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