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를 위한‘중국 역할론’의 취약점
북한 비핵화를 위한‘중국 역할론’의 취약점
  • 최병구 前주노르웨이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08.1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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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 비핵화에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미·북 정상 간 톱다운 방식으로도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못했고, 남북 정상회담도 이렇다 할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고도화를 위한 활동을 계속하자 과거 시도된바 있는 다자회담 방식이 다시 거론되면서 ‘중국 역할론’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중국 역할론’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제기되어 왔다.

일례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시진핑 주석에게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주문했고, 4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미국이 북한 문제와 글로벌 이슈에 관해 중국과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해서는 “중국의 건설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으로부터도 이런 기대가 수시로 표명된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지난 3월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북한을 설득해서 비핵화를 도모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고, 국무부는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함께 일할 수 있기 바란다”는 입장을 반복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보면 ‘중국 역할론’은 수사에 그치고 실효성이 거의 없었다. 북한의 핵개발을 막는데 중국이 얼마나 실제적인 기여를 했는가에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도움을 준 측면은 없지 않은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 중국에게도 북한의 핵미사일은 득보다 실이 크다. 중국은 북한의 핵무장으로 동북아 정세가 불안해지거나 미·한·일 안보협력이 강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아가 동북아에서의 핵 확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중국의 이익에 반한다.

중국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레버리지가 있다. 북한에 대한 식량·석유 공급이 그런 지렛대가 된다. 하지만 중국이 북한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것과 이런 영향력을 실제 사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중국이 북한을 강력하게 압박하면 북한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 이는 중국에게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일이다. 중국이 북한 정권이 흔들릴 정도의 압박을 가하면 북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이를 너무나 잘 안다.

중국이 북한을 움직여 비핵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킬 동기(動機)는 최근 들어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가장 큰 요인이다. 시진핑 주석이 ‘중국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미국과 첨예한 대결을 시작한 마당에 북한 비핵화에 협조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신들의 협조 없이는 북핵 협상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아는 중국은 오히려 이를 對美 레버리지로 사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은 미국이 상당한 정도의 반대급부를 중국에 제공하지 않는 한 북한을 압박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최근 파고가 높아지고 있는 대만문제도 ‘중국 역할론’의 힘을 뺀다. 대만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대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되었다. 미국이 대만과 급속히 가까워지면서 중국도 북한과 더 가까워질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의사에 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낮아짐을 의미한다.

북한에 대해 결정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는 나라는 실상 미국이다. 2005년 9월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북한의 불법자금을 세탁하는 은행으로 지정하고 북한 자금을 동결했을 때 북한은 예상을 훨씬 능가하는 반발을 보였다. 2017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중국 등 유엔안보리 이사국들을 움직여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도 미국이었다. 미국은 북한 정권을 국제금융시스템으로부터 고립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 실제로 2017년 북한의 돈세탁 통로 역할을 한 중국 단둥은행을 미국의 금융체제에서 퇴출시켰다. 2018년에는 북한과 중국 등 해운 운송과 무역 등에 연루된 개인과 기관, 선박에 대해서도 제재 조치를 취했다. 금융과 경제 압박으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막으려는 조치였다. 이런 미국에 대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7월 3일 “수 십 년 동안 북한에 가한 위협과 압박을 반성하라. 한반도 일은 중국 문 앞의 일이다”라며, 미국은 그동안의 헛수고를 그만하고 이제 손을 떼라는 식의 요구를 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중국의 역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데도 왜 한국과 미국은 늘 이를 강조했을까? 한국의 경우에는 對中 편중 외교를 합리화하기 위해 그랬던 측면이 있고, 미국의 경우에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책임이 미국에게만 돌아오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물론,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취임 초기 전임 대통령들이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왜 중국을 압박하지 않았느냐고 분노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일찍이 ‘중국 역할론’의 한계를 지적했다. 일예로, 美기업연구소(AEI)의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동북아의 안보 딜레마로부터 미국을 구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이 미국 외교정책 결정 과정에서 한 세대 넘게 존재해 왔다”며 “특히 시진핑 정권 아래 중국공산당이 동북아에서 미국이 겪는 어려움을 덜어주려 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황당한 일”이라고 지적한바 있다.

이상 살펴본바와 같이 북한 비핵화에 있어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감나무 밑에 누워 익은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져야할까?

첫째, 중국의 對北 역할에 대한 기대를 낮추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이런 경험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시진핑 주석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면 중국이 북핵 문제 등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었 으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이유로 우리에 대해 무차별적이고 부당한 제재를 가해왔다. 문재인 정부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중국의 기여를 기대하고 중국에 다가가는 자세를 취했지만 이렇다 할 결과를 얻지 못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는 중국이 북한의 대북 제재 회피를 돕는 나라로 지목한다. 중국을 대북 전략의 지렛대로 삼을 수 없음을 말해준다.

둘째, 북한을 실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나라는 역시 미국이다.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가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대북 문제를 놓고 워싱턴과의 입장 차이가 심했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시행되고 있는 시기에 문 대통령은 유럽을 순방하면서 대북 제재 완화를 설득한 일도 있다.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였다.

셋째, 북한이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에 관해서도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입장은 오랫동안 일관성이 있었다. 6자회담 프로세스를 무력화 시킨 것도 북한이었다. 북한은 한국의 도움으로 미국과 정상회담까지 한 이후에는 한국을 철저히 소외시키려 했다. 미국이 한반도 문제의 키를 쥐고 있다는 북한의 인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4자회담이나 6자회담이 열린다 해도 북한의 이런 인식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넷째, 북한 비핵화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국제사회에 더 강력하게 보여야 한다. 북한 비핵화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한다. 우리 스스로 강한 의지를 갖고 이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서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이 역할을 해주기만 바란다는 것은 우리의 진정성을 의심받는 일이다. ‘북한 비핵화는 우리 문제’라는 주인의식이 필요하다.

*상기 칼럼내용은 필자 개인의견이며,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최병구 대사는 주미국 총영사, 주노르웨이 대사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외교안보」(2017), 「외교의 세계」(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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