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체성과 對아프리카 공공외교
한국의 정체성과 對아프리카 공공외교
  • 조원호 前주가봉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06.2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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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정부는 G7참석 홍보 사진에서 남아공 대통령을 빼고 편집했다가 사과하고 수정했다. ‘문 대통령을 사진 가운데로 옮기기 위해 작업하다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한국의 G7 정상회의 참석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의미이고, 우리나라가 G7에 초청된 것은 민주주의 국가이자 기술 선도국인 우리의 격상된 위상에 대한 평가’라는 내용을 홍보했다. 정부 차원의 홍보 사진과 홍보 내용은 그 나라의 정체성(正體性)과 무관하지 않다. 금번 홍보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대아프리카 공공외교와 관련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족국가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2가지 견해가 있다. 본원적 견해와 구성주의적 견해다. 전자는 정체성을 인종, 역사, 언어 등 본원적 요소에 기반을 두고 정체성이 변하지 않는 속성을 지닌 것으로 본다. 후자는 근대화, 가치관, 인식체계 등 요소에 중점을 두고, 국내외적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고 본다. 본원적 요소는 투사(projection) 방식으로 국제사회에 알려진다면 구성적 요소는 주창(advocacy) 방식에 의해 알려진다. 공공외교는 주로 주창방식이다.

주창방식에 의한 정체성은 열망 정체성(aspirational identity)과 역할 정체성(role identity)으로 구분된다. 열망 정체성은 자국 기준으로 국제사회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기를 부여한다. 2001년 9.11 테러 사태 후, 미국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이식시키기 위해 이집트와 모로코에 수십억 달러의 공적개발원조(ODA)를 제공한 것이 좋은 예다. 역할 정체성은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위상에 적합한 역할을 스스로 정하고 이행하는 데 초점을 둔다. 스웨덴의 환경 공공외교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국가 자신의 열망과 역할이 국제 질서에 부합하지 않고 자국의 현실이나 대외정책과 괴리현상을 보이면 그 국가의 정체성은 훼손되고, 공공외교는 오히려 부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즉, 열망 정체성과 국제사회의 인식 간에 차이가 있고, 역할 정체성과 실제 능력이 일치하지 않고, 국내적 현실과 대외적 행태가 다를 경우, 그 국가의 정체성은 불신을 낳고 비판을 받는다.

공공외교는 국익을 증대하고 국가의 품격과 위상을 높이는 수단이고 과정으로서, 소프트 파워와 연계되어 이해되고 행해진다. 조셉 나이(Joseph Nye)는 소프트 파워를 행위자가 문화, 가치, 이데올로기 같은 무형의 힘을 통하여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즉, 매력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상대방도 원하게 만들어 목적을 달성하는 힘으로 보았다. 그러나 9.11 사태 직후 이 접근법에 기반을 둔 미국의 공공외교는 일방적이고 패권적이고 문화제국주의로 비난 받았다. 특히, 상기 미국의 민주주의 이식이 결실을 거두지 못하면서, ‘우리’가 말한 것이 ‘그들’에게는 달리 들리고 ‘우리’의 열망이 ‘그들’의 열망이 아니고, ‘우리’의 말을 믿고 안 믿고는 ‘그들’의 판단에 달려있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즉, 하버마스(Habermas)의 도구적 행위나 전략적 행위에서 쌍방 의사소통행위로 이전한 것이다. 최근에는 쌍방 의사소통행위를 넘어서 함께 소통하고 참여하여(engagement) 보다 유익한 글로벌 공공재를 만들어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가의 신뢰도와 국제적 연대가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는 신공공외교의 핵심이다.

국가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 그 국가의 사회의 질로 측정된다. 즉, 사회자본의 질적 수준이 국가의 정체성과 정통성에 영향을 준다.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OECD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 등 물질적 조건은 OECD 회원국 중 중위권에 위치하고 있으나 사회 관계 등 생활의 질적 분야에서는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즉, 물질적으로 성장했으나 사회의 품격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회관계의 최하위 평가는 신뢰도와 투명성이 최하위라는 뜻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준다. 또한, 우리 사회는 ‘공작들의 꼬리경쟁’처럼 쓸모없는 과도한 경쟁으로 사회 응집력이 매우 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번 홍보처럼 우리 ‘중심에서’ ‘선도’ 등등 주창하는 것은 20세기 중반 냉전 시대의 사고 방식으로서 상대방의 공감보다는 불신만 가중시킬 소지가 크다. 더욱이, 국제사회는 개도국의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그 개도국을 절대 선진국으로 분류해 주지 않는다. 기껏해야 선발 개도국 아니면 신흥 공업국으로 불러준다. 자긍심은 중요하지만 자신을 스스로 선진국 대열로 분류하면 오히려 국격을 격하시키는 행위로 인식된다. 문명사적 관점에서 볼 때, 선진국이라는 정체성은 전적으로 외부로 부터 주어진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야만적이고, 가난하고, 위험한 지역으로서 원조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이에 대한 서구의 책임이 막중하다. 아프리카는 15세기 시작된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어온 이래 현재 까지 한번도 주인 행세를 하지 못했다. 식민제국주의 시대는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희생되고 착취당했다. 20세기 중반 독립 이후 국제개발사회는 약 10년 단위로 경제성장을 시작으로 빈곤감축과 구조 조정을 거쳐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개발담론으로 내세웠으나 그 성과는 미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원조의 주 대상인 아프리카의 빈곤은 더욱 악화되고 최빈국 수는 오히려 늘었다. 1990년대 세계화 조류에 부응하여 무역이 개도국 경제 발전의 원천임을 천명하고 ‘무역을 위한 원조(Aid For Trade)’를 외쳤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잉여 농산물로, EU는 아프리카 전체 예산보다 많은 보조금으로 이를 억제시켰다. 세계 수출총액 중 아프리카의 비율은 0.4%에서 0.3%으로 하락했다.

이런 사실을 근거로, 포스트 개발주의자와 포스트 식민주의자는 국제개발원조 공여국과 세계은행, IMF는 새로운 개발 담론을 끊임없이 개발하며 아프리카를 영원히 저개발 상태에 묶어두고 주인 행세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공여측이 빈곤감축전략보고서(PRSP)를 조건부로 ODA를 제공하지만 수 백 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가 전적으로 공여측에 의해 작성됨에 비추어 볼 때, ‘힘이 곧 지식’이고 ‘개발이라는 말이 곧 힘’이라는 이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이런 가운데 남아공은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특히, 1960년대 스티브 비코의 인권과 인종 평등을 강조한 ‘흑인의식 운동(Black Consciousness Movement)’과 만델라 전 대통령의 ’용서와 화해‘에 의한 국정철학이 인류의 공감을 얻으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열망이나 역할 정체성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친 희생과 착취와 억압의 역사 속에서 얻어낸 숭고한 정체성이다.

조셉 나이는 한국처럼 지정학적으로 하드 파워가 몇 배 강한 강대국에 의해 둘러 싸인 경우 인접한 지역에만 매달려서는 입지를 극복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아프리카, 중남미로 시야와 활동무대를 넓힐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인접국들이 우리보다 훨씬 많은 원조 공여 등으로 인하여 이를 추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경우, 중국은 3년 단위로 협력 포럼을 개최하고, 천연자원 확보와 분쟁지역 영유권 지지 획득, 글로벌 리더로 부상하기 위해 수백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이 포럼에는 거의 모든 아프리카 정상들이 참석한다. 일본도 매 3년 단위로 개최되는 아프리카 개발회의(TICAD)와 수백억 달러의 원조 공여를 통하여 유엔 회원국의 약 4 분의 1을 차지하는 아프리카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대부분 아프리카 정상들이 참석한다. 특히, 유엔 개편을 통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해 아프리카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자신의 식민지배 역사의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일본식 개발모델 이전 같은 표현이나 발상을 절대 금하고 주로 문화외교에 치중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중국이나 일본의 막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해 보다 친근감을 갖고 있다. 한국이 아프리카처럼 식민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고 가난을 겪었기 때문에 아프리카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아프리카에 맞는 동기를 부여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기대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아프리카를 무시하고 배척하고 있다. 동행을 통한 나눔보다는 서구적 접근법과 자만으로 귀한 손님을 박대하고 있다. 하나의 예로, 인기 있는 연예인과 일부 비정부기구가 아프리카의 굶주린 어린아이를 홍보영상으로 내세워 아프리카 원조를 호소하고 있다. 이에 대해, KOICA 장기석사 과정에 참석한 약 20개국의 아프리카 연수생들은 ‘한국의 이런 행태와 인식은 식민제국 시대의 서구의 문명화 논리와 무슨 차이가 있는 가?’ 묻고 이에 모두 한결 같이 분노한다. 이들은 각 부처에서 요직을 맡을 엘리트층이다. 이들은 한국의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고, 아프리카를 무시하는 일방적으로 접근하는 데 대해 실망한다. 나아가, 한국의 치열한 경쟁사회를 경험하고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사실을 알고 한국의 발전상을 부러워하지만 한국처럼 되기를 거부한다. 우리나라 개발모델을 사기위해 가난이라는 영혼을 팔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프리카의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연대(solidarity)다. 정부 부처에 연대국(局)이 있을 정도로 결속을 중요시 한다. 소유보다 존재를, 사람 중심의 이성보다 자연 중심의 감성을 중시한다. 경쟁이나 효율성이라는 어휘가 없다. 21세기 지금도 주술사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아무리 좋은 원조 사업도 이들의 동의가 없으면 추진할 수 없다. 또한, 기술을 배척한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산업혁명이 서구인에게 풍요로운 삶을 가져왔지만, 아프리카는 그들을 위해 팜 기름과 코코아, 커피의 같은 서구의 기호품을 대량 재배하도록 강요당하여 막상 자신의 필수 식량 생산을 소홀히 했다. 오늘날 식량을 수입하고 수출 상품 다변화를 못하는 근본 요인이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는 기술을 아프리카를 비참하게 만든 원천일 뿐만 아니라 연대를 해치는 요인으로 간주하고 이를 거부해 왔다. 최근 이디오피아 등 국가들이 4차 산업혁명의 표상인 디지털 혁명이 자국의 사회적 연대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하고 ’기술로 부터의 보호주의‘를 취하는 배경이다.

2015년 OECD 과학기술장관회의 ’대전선언문‘과 2019년 우리나라 주도로 개최된 OECD 각료이사회에서 디지털 기술 발달과 포용 성장, 인간 중심의 가치와 공정성 그리고 사회통합 제고 간의 조화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이 맥락에서 우리나라는 아프리카에 대해 ’중심과 선도‘ 보다는 ’포용과 통합‘을 요체로 하는 공공외교를 펼칠 때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더욱 친밀감을 갖게 될 것이다.

신공공외교의 핵심은 신뢰에 바탕을 둔 쌍방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은 상대방의 역사, 문화, 인식체계를 알 때 가능하다. 아프리카와 가장 인연이 깊은 철학자 헤겔은 아프리카를 이해하려면 우선 자신의 인식체계를 완전히 버리라고 했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는 열대 원주민에 대해 ’몇 만년 전에는 그들도 최근의 인간과 유사한 지능을 갖고 있었으나 그들은 지능을 철학과 과학보다는 혈족 관계에 사용한 사람들이다‘라고 기술했다. 경쟁(competition)의 어원은 ’함께(cum) 찾는다(petere)‘이다. 우리의 대아프리카 공공외교에 성찰을 요하는 금언이다.

*필자의 개인의견이며,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조원호 대사(mahler.1860@yahoo.co.kr)는 OECD파견(무역위, 경쟁위), 주OECD대표부 참사관(개발원조위, 환경위), 주뉴욕총영사관 경제담당 영사, 주가봉 대사, KOICA 이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 대학원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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