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국제정치에 주는 함의: 복잡계 이론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이 국제정치에 주는 함의: 복잡계 이론을 중심으로
  • 조원호 前주가봉 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06.1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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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어닥친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인류는 1, 2차 혁명의 물리적 행성과 3차 혁명의 사이버 행성이 융합된 디지털 행성으로 진입하고 있다. 사람, 사물, 공간, 시스템이 초연결 되면서 만물지능 인터넷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만물지 인터넷이 이동통신과 공진화하면서 디지털 행성은 스스로 증식하고 적응하는 유기체적 양상을 보이고 예측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따라 사람의 생활양식, 사회 문화 환경, 산업 생태계, 자본주의 패러다임 등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른 세계로 변하고 있다. 국경 없는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은 국제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국제 안보는 사이버 수준을 넘어 디지털 만물 안보 차원에서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초연결, 초융합, 초고속, 초지능이다. 핵심요소는 디지털 혁명에 따른 모바일 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클라우드 컴퓨팅, 블록체인, 기계학습이다. 4차 산업혁명은 ‘4차 정보혁명’ 또는 ‘인더스트리 4.0’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분야의 기술뿐만 아니라 학문(學問)간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이 물리학과 생물학에 가세하고 바이오 기술이 기계공학에 융합하면서 연쇄적으로 모든 분야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복잡하다는 것은 양적 변화보다는 질적 변화를 의미하고 기능적으로 역동적임을 뜻한다. 이러한 복잡성은 비평형, 비선형, 불확실성, 불완전성을 특징으로 하면서 자연이나 사회를 부분보다는 시스템 차원에서 상호 작용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필요로 한다. 즉, 지난 수백 년간 우리 인식체계를 지배해온 뉴턴식 기계주의적 환원주의나 데카르트식 수학적 세계관은 오늘날 급변하는 세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함에 따라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인식과 접근법이 요구되고 있다.

사실, 17세기 전반부터 최근 까지 수 세기 동안 인류는 복잡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뉴턴식 과학의 논리를 빌어 쪼개고 분석한 후 궁극적 진리를 추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데카르트식 합리주의를 통해 전체는 부분의 총합구조로 부분에 의해 규정되고, 부분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고, 부분과의 관계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다. 지식의 체계화도 정량화하여 보편적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요소 환원주의로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선형적 인과성과 평형을 근거로 예측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런 가운데, 1930년대 수학자이자 논리학자 괴델은 ‘불완전성 원리’를 통하여 모든 것을 계산과 논리로만 다룰 수 없음을 입증하고 수학적 형식주의를 비판했다. 또한,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아무리 과학적으로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확실하다 해도 영구적으로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의 ‘불확실성 원리’는 물리학계에 큰 충격을 주고, 수학적, 논리적 추론을 통해 만물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던 힐베르트 프로젝트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다.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과 더불어 모든 현상의 불완전성과 불확실성 그리고 제한적 합리성이 밝혀지면서, 인간은 완벽하게 계산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전통적 관념에서 벋어나게 되었다.

21세기 접어들어 종래의 평형적이고 선형적인 접근법은 최근 초고속으로 초융합되고 연결된 복잡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능가하고 사람 마음까지 읽는 조짐을 보이면서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이런 가운데, 복잡계 이론(theory of complex system)이 일반체계이론(general system theory) 등 기존의 개념으로 설명하지 못한 다양한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면서 주목받고 있다.

복잡계 이론은 1980년대 중반 미국의 민간 산타페(Santa Fe) 연구소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산타페 연구소는 자연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학을 망라하는 융합학문의 요람으로 출발하여, 기존의 이론이나 패러다임으로 다루지 못하는 많은 문제들을 복잡계 개념에서 접근해 왔다. 무엇보다, 다양하고 수 많은 행위자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전체 시스템 차원에서 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고, 새로움에 적응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복잡계 이론은 물리화학자 프리고진(1977년 노벨화학상 수상)에 의해 창시되었다. 프리고진은 종래 과학이 전제한 닫힌계의 평형적이고 선형적인 선형 구조에서 탈피하여 열린계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의 새로운 질서를 발견했다. 그는 평형에서 멀어진 화학 반응계에서 요동의 증폭으로 인해 계(시스템)가 불안정해지고 어느 분기점에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산일구조(散逸構造)를 증명하고, 이를 ‘혼돈으로 부터의 질서’라고 명명했다. 특히, 변화 없는 평형상태와 가역적(可逆的)이라는 뉴턴 역학과 양자 역학의 이론과 달리,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 비평형 상태가 자연계에서 오히려 일반적이고, 평형처럼 보이는 상태는 간헐적이고 불규칙하게 일어나는 폭발과 변동 사이의 잠시 정적인 기간에 불과하다는 단절 평형(punctuated equilibrium)을 입증했다. 이 학설은 자연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현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복잡계 이론은 최근, 경제학, 정치학, 행정학 등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 예술에 활용되고 있다.

복잡계 이론은 카오스 이론과 프랙탈 기하학 그리고 열역학을 포괄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즉, 카오스 이론의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 프랙탈 기하학의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 열역학의 ‘열린계(open system)’를 아우르며, 만물이 보편 법칙에 의해 사전에 주어져 있다는 뉴턴식 결정주의적 인식론과 달리, 불확실하고 혼돈스러운 동적인 환경 속에 숨겨진 질서를 발견하는데 초점을 둔다. 그리고 숨은 질서 속에 새로운 현상을 파악하고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는데 적합한 패러다임을 정립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복잡계 이론의 핵심 개념은 2가지다. 자기 조직화와 공진화(co-evolution)다. 자기 조직화는 시스템이 외부의 개입 없이 자생적으로 질서를 연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개념이다. 공진화는 자기 조직화의 방식으로서 상호의존적인 종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함께 적응하고 진화하는 것을 말한다. 즉, 복잡계 이론은 외부의 개입이 없이 내부의 구성 요소 간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통해 전체 시스템이 특정 방향으로 경도되고 스스로 임계상태(critical state)로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현상과 형태에 대한 학설이다. 앞에서 언급한 디지털 행성이 이에 비유된다.

복잡계 이론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모래 탑 패러다임’이 인용된다. 이 예는 초기에 민감한 작은 충격만으로 시스템 전체가 붕괴되거나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너진 조그만 하나의 모래알이 연쇄 반응으로 다른 모래알과 상호 작용으로 요동치면서 분기점(bifurcation point)에 이르면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큰 사태를 유발하면서 창발(emergence)을 일으킨다. 이는 사소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변화가 양(陽)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에 의해 증폭되면서 체제가 급변함을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자연 재해 뿐만 아니라 혁명이나 전쟁 같은 인간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대형사건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이와 같은 조직화 임계성(self-organized-criticality)은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유발함을 뜻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개미 집단의 집이나 점균류의 곰팡이의 응집현상이 인용된다. 개개의 개미는 집을 지을 만한 지능이 없지만 개미 집합체는 외부 간섭 없이 집을 짓는다. 점균류 곰팡이는 사전에 구상이나 속도 조절자 없이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형태를 탄생시킨다. 즉, 단위체나 시스템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공진화하면서 초기 형태와 전혀 다른 새로운 산물을 창발 시키고 또 적응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렇게 상호작용하며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복잡적응계(complex adaptive systems)라고 부른다. 이 점에서 카오스 이론과 차이를 보인다. 카오스 이론은 가장 간단한 체제도 복잡한 형태를 보일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복잡한 비적응 결정 체계(complex nonadaptive deterministic system)를 다룬다면, 복잡계 이론은 아무리 복잡한 체계도 단순한 규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구분될 수 있다.

국제정치의 원리를 이해하는데 요소 환원주의보다는 구조주의가 호응 받아 왔다. 그러나 구조주의는 체제의 구조를 강조한 나머지 구조를 주어진 대상으로 간주하고 정태적으로 접근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 구조주의는 시대적으로 고정된 구조에 시각을 맞추고 주어진 지식과 정보에 의존하고 국가가 평형상태에 있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탈냉전의 도래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읽지 못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단위체와 구조간의 상호 작용을 중시하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가 주목 받고 있다. 국가 이익과 정체성을 구조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는 대신, 각국의 사회규범, 문화, 가치체계 등 주관적인 요인에 의해 변화하고 구성된다는 관점에서 구성주의는 복잡계 이론에 포함된다. 복잡계 이론은 국제정치를 분석하고 이해하고 외교정책을 수립하는데 몇가지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국제사회에 나타나는 복잡성, 무질서, 불안정, 불평형이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창발의 기회가 되고 새로운 질서를 향한 정책으로 변동시키는 긍정적 요인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다. 9.11 테러 사태로 창발 된 신 공공외교정책이 하나의 예다.

둘째, 체계적 위험 속에 내재된 보이지 않는 변수와 질서 발견의 중요성이다. 우리가 보기에 불안정하고 무질서한 혼돈을 잘게 쪼개보면(fractal), 쪼개진 대상들도 규모만 다를 뿐 원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진화한다는 사실이다(프랙탈 기하학). 동일한 기본 요소가 스스로 닮은 특성을 반복적으로 나타내지만 우리는 작은 것은 간과하고 큰 형태에만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에 현상을 제대로 분석하고 이해하지 못함을 일깨운다. 구 동구권의 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평상시 안정 상태에서도 상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도 등 모든 면에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관찰과 지식 확대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특히, 디지털 혁명시대는 결과 산출물이 아니라 동역학적 과정이 중시된다.

셋째, 비가역성(非可逆性) 시간 개념이다. 자연 현상이 질서에서 혼돈의 가장자리로 이동하면서 창발이 일어나 더 높은 차원으로 진화하듯이, 국가도 과거 역사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지향하라는 시사점을 주는 개념이다. 일부 대학은 금번 코로나 팬데믹으로 나타난 ‘비대면 문화’는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과거 ‘대면 문화’로 되돌아가지 않고 초연결, 초지능 디지털 혁명과 융합하여 새로운 차원의 사회문화로 진화할 것으로 예측하고 적응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최근 한·일 관계에 주는 의미가 적지 않다.

넷째, 공진화 할 수 있는 역량의 확충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세계가 초연결되면서 외부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환경을 함께 만들어갈 역량 개발의 필요성이다. 인류의 초고속 진화에 따른 엔트로피(entropy, 혼돈과 무질서)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제협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기후변화, 사이버 테러, 개도국 빈곤, 팬데믹 등 국제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 네트워크 거버넌스의 활성화가 요구된다. 중견국으로서 한국이 정체성을 공고히 할 수 있는 분야다. 또, 적극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시점이다.

다섯째, 하향식 접근의 한계성과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다. 단위체들은 스스로 학습하고 조직하여 전체구조에 큰 영향을 준다. 개미 한 마리가 외부의 지시 없이 먹이를 찾는 최단 거리를 알아내듯이 개인화와 다양성에 의한 창의성이 중요하다. 또한, 초연결과 초융합 그리고 초지능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의 영역이 좁아지고 있다. 누구나 접하는 정부의 정책발표나 주어진 정보를 통하여 세상을 읽고 해석하는 시대는 지났다. 인지과학을 모르면 수십년 뒤떨어진 사람으로 인식되는 세상이다. 2차 대전의 종식의 배경은 루즈벨트, 처칠, 스탈린의 3자 회동과 원자탄과 컴퓨터, 그리고 인지과학을 동시에 읽을 때 전체가 보인다. 물리계는 원천이 수학, 철학, 예술임을 상기하고, 국제 정치계는 과학자 아인슈타인, 수학자 튜링과 괴델, 인류학자 베네딕트 그리고 심리학자 융과 소통이 필요한 세계다. 

(위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조원호 대사(mahler.1860@yahoo.co.kr)는 OECD파견(무역위, 경쟁위), 주OECD대표부 참사관(개발원조위, 환경위), 주뉴욕총영사관 경제담당 영사, 주가봉 대사, KOICA 이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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