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경쟁과 문재인대통령 방미 성과
미·중 패권경쟁과 문재인대통령 방미 성과
  • 이강국 前시안 총영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05.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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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미국 방문 중에 알링턴 국립묘지의 ‘무명용사 묘’ 참배, 한국전쟁 참전 용사 명예훈장 수여식 참석, ‘미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착공식 참석 등 세 차례의 ‘혈맹 행보’를 가졌다. 문 대통령은 추모의 벽 착공식에서 “미국과 한국은 고통스러운 역사도 영광스러운 순간도 항상 함께해 왔다. 앞으로 도 동맹의 힘이 필요한 순간마다 한국은 변함없이 미국과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미 기간 이뤄진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첫 대면 정상회담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을 재확인하고, 향후 발전적 한미 동맹을 위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결과물이 나왔다.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국제적으로도 관심을 끌 내용이 많았다. 치열하게 전개될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한국이 나아가는 방향타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번 대통령의 방미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미중 사이에서 ‘전략성 모호성’을 취해 온 한국 정부가 보다 분명한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공동성명에서 “한국과 미국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저해·불안정 또는 위협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하며, 포용적이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을 유지할 것을 약속한다”고 하면서, “남중국해 및 여타 지역에서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 및 항행·상공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 존중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그간 미국의 줄기찬 요청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의식하여 남중국해 문제에 관해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9년 8월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시 외교부 장관은 “규칙에 기반한 해양 질서와 비군사화 공약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해당 수역의 평화와 안전이 유 지되어야 하며 관련 분쟁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 한·미 공동성명에서는 상업 및 항행·상공비행의 자유를 명시하여 남중국해 문제에 관해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다.

나아가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명시되었는데, 한미 양국이 공동성명에서 대만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지난달 중순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서는 “우리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권장한다”고 기술되었지만, 한미 공동성명에서는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 권장” 내용은 포함되지 않아 중국의 입장을 고려한 측면이 엿보인다. 사실, 한국으로 들여오는 석유·천연가스의 운반선 대부분, 수출입 화물선의 상당 부분이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에 이 곳의 안정과 평화는 우리 국익과도 직결된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이 봉쇄되면 한국의 경제 안보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데, 이번에 이 문제에 대해 보다 명확한 입장을 밝힌 것은 한국 국익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구상을 연계하기 위해 협력하고, 양국이 안전하고 번영하며 역동적인 지역을 조성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하였다”고 밝히고, 나아가 “쿼드 등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는 내용이 명시되었다. 그간 한국 정부는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쿼드 참여에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는데, 이번 공동성명에서 쿼드가 언급됨으로써 쿼드 참여의 단초를 마련하였으며 앞으로 워킹그룹 등을 통한 참여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사거리 ‘최대 800km 이내’로 제한된 한국군의 미사일 지침을 완전히 해제하였다. 이것은 한국이 미사일 자주권을 확보했다는 의미와 함께 미국이 직접 한반도에 자국 미사일을 배치하지 않고도 동맹국인 한국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둘째, 한미 양국은 새로운 경제협력 방향을 설정하였다. 반도체, 친환경 EV 배터리, 전략·핵심 원료, 의약품 등과 같은 우선순위 부문을 포함하여, 공급망 회복력 향상을 위해 협력하기로 하였다. 이번 방문 계기에 삼성, LG, SK, 현대차 등 4대 그룹이 미국에 총 394억달러(약 44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신규 파운드리 공장 구축에 170억달러를 투자한다. 그리고 양국은 차세대 배터리, 수소에너지, 탄소포집·저장(CCS) 등과 같은 청정에너지 분야 및 인공지능(AI), 5G, 차세대 이동통신(6G), Open-RAN 기술, 양자기술, 바이오 기술 등 신흥 기술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함으로써 미래 지향적 파트너십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협력하기로 하였다. 나아가, 민간 우주 탐사, 과학, 항공 연구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하였으며, 원전사업 공동 참여를 포함한 해외 원전시장 내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한미 동맹이 과거 수혜적·안보위주의 동맹이었다면, 이제는 호혜적·동반자적 동맹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표준화 작업을 선도하려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항해 중국도 선도자가 되기 위해 발걸음을 빨리 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제4차 산업혁명을 자국 위주로 전개하려 하기 때문에 중국과 같이하면 한국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 유럽, 호주 등에는 한국 기업이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많고, 반도체, 통신장비, 전기자동차,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의 시장도 크며, 제4차 산업혁명 표준화 작업에서 한국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번 대통령 방미를 통해 한국이 글로벌 밸류체인 전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양국은 ‘파트너십 설명자료’를 통해 “첨단제조 및 공급망에서의 양국의 협력을 이행하고 점검하기 위해 청와대와 백악관 간 한미 공급망 태스크 포스 구축을 모색한다”고 표명했다. 한편,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해외 투자에 대한 면밀한 심사와 핵심기술 수출통제 관련 협력의 중요성에 동의하였다”고 하였는데, 미국은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에 대한 기술통제 문제 관련 한국에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한미 양국은 포괄적인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보건 분야에서 새로운 협력의 지평을 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약 55만명 정도의 한국군이 미군과 자주 접촉하고 있다”면서, “한국군 55만명을 위해서 백신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힘으로써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여러 건의 백신기업 파트너십이 체결되었다. 이와 관련,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더나와 백신 위탁생산 계약을 맺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해외에서 생산된 모더나 백신 원액을 받아 국내에서 충전해 완제품을 만들 계획이다. 모더나 백신 원액은 미국과 스위스에서 생산되고 있다. 또한, 모더나는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와 투자 및 생산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 다. 모더나는 한국에 mRNA(병원체 또는 암세포의 특정 단백질을 생산하는 메신저 RNA) 백신 생산 시설 투자와 인력 채용을 위해 노력하고 한국 정부는 모더나의 비즈니스 활동에 협력하는 것이 이 양해각서의 주요 내용이다. 그리고 노바백스는 SK바이오사이언스, 보건복지부와 코로나19 백신을 비롯한 백신 개발 및 생산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로써 미국의 원천 기술과 한국의 생산능력을 결합해 전 세계적 백신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림으로써 코로나 조기종식에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기업들은 미국 기업들과의 백신협력을 통해 전문성과 개발 역량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미국은 백신을 무기로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는 중국과 ‘백신 외교’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 백신의 생산기지가 되면 중국의 백신 외교를 견제하는 효과를 보게 된다.

이번 방문을 통해 한미 동맹은 협력의 지평이 크게 넓어져 전통적인 안보 동맹을 넘어서 기술 동맹, 경제 동맹의 차원까지 복합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으로 평가된다. 백신 및 반도체·배터리·원전·6G 네트워크, 기후변화, 개발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실질 협력 관계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이번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과의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서 안정적인 공급망의 기반을 다지게 됐고, 한국은 첨단 기술협력, 백신과 관련한 파트너십 구축 등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도 미국과 협력할 기회가 본격적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모처럼 한국 외교가 활력을 찾은 느낌이다. 물론 중국이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대만 문제는 순수한 중국 내정”이라면서 “어떤 외부 세력의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등 대만문제, 남중국해 문제, 쿼드 등에 관해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반응이다. 한국 정부는 중국의 반응에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대통령 방미 성과가 결실을 맺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방문이 미중 패권경쟁 시대에 한국이 미중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는 소극적 인식 대신 국익창출을 위한 기회로 만들어가겠다는 적극적 인식을 가지고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위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이강국 전 주시안총영사는 중국 연수, 주중국대사관, 주상하이총영사관, 주시안총영사관 근무로 13년 7개월 동안 중국에서 생활했다. 미국 UCSD에서 공부하였고, 주베트남대사관과 주말레이시아대사관에서도 근무하였다.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 『중국의 新실크로드 전략 일대일로』, 『서안 실크로드 역사문화기행』, 『일대일로와 신북방 신남방정책』을 저술하였으며, 현재는 성균관대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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