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기의 국제질서 따라잡기 (3)
급변기의 국제질서 따라잡기 (3)
  • 이동휘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04.1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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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는 미국대선의 후유증

거의 3개월에 이르는 기간의 정정혼란을 초래하여 왔던 미국대선은 2021년 1월 20일 조 바이든 후보가 제46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개표개시 직후 제기되었던 선거공정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1월 6일 개최된 상하원합동회의가 각 주의 선거인단을 인증함으로써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결과에 여전히 승복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의사당난입사태 이후 시도된 탄핵안이 부결되면서 정치적 후폭풍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2022년의 중간선거와 2024년의 차기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의 국내정치에는 커다란 지형변화가 예상되고 있는데, 이렇게 볼 때 2020년의 미국대선은 법적절차 상으로는 분명히 완료되었으나 정치과정 상으로는 ‘끝나지 않은 대선’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목도되고 있는 미국내 정치혼돈은 대선 이전에 나타나기 시작했던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요인들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표면화 된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들의 엄중성은 비단 미국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변환기에 접어든 국제질서 전반에도 심대한 문제를 던져 줄 것으로 보인다.

첫째, 가치관의 충돌이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실은 헌법에 내포된 자유, 개인존중, 신앙을 축으로 하는 미국의 신조가 문맥대로 해석되고 온전히 유지되어야 한다는 보수주의 우파와, 사회와 세계의 변화에 맞추어 평등, 정의,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진보주의 좌파 간의 가치관의 충돌이다.

가치관의 차이가 비교적 물밑에 머물러 왔던 과거와는 달리, 이렇듯 표면화 되어 전통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원칙을 고수하려는 공화당과 이념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적 정책을 실천하려는 민주당 간의 극렬한 정쟁으로 비화하게 된 데는 지난 4년 간 보수적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온 트럼프의 재선은 반드시 제지되어야 한다는 진보진영의 위기감에서 비롯된 적극적인 의지가 작용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민주당 측은 현행 선거관련규정들의 미비성에 착안하여 코로나방역을 위한 선거제도강화(Fortified Election)라는 명분 하에 일부 경합주들의 선거규칙을 변경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였다고 보도된 바 있다(TIME지, 2021.2.4 기사, ‘Shadow Campaign’ 참고). 반면, 공화당 측은 비록 일부 소속 의원들의 반대의견도 존재하나 이러한 조치들을 부정선거(Rigged Election)를 위한 행위들로 간주하고 성토하여 왔는데, 이러한 논쟁의 배경에는 연방과 주 간에 불분명하게 규정된 채 존치되어 온 권한의 배분과 적용의 경계 등의 구조적 문제들도 일정부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과학기술의 함정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거의 인력에만 의존하였던 종래의 선거방식에 대한 혁신적 개선 가능성을 가시화하여 효율화의 이점을 향유하게 하는 반면, 기계조작과 국제적 차원의 해킹에 의한 선거결과의 부정적 변용 문제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또한, 첨단기술의 대중적 활용장인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포함하는 빅테크의 정치관여는 이들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우파들의 선거결과 수용을 어렵게 하였으며, 빅미디어로 불리는 뉴욕타임즈와 CNN 등 주류언론의 보도도 유사한 이유로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 2020년 벽두에 시작된 팬데믹의 창궐과 이에 대한 과학적 지식의 미비함도 정부의 대응책을 둘러싼 대립을 키워 왔는데, 개인의 행동자유는 가능한 한 유지되어야 한다는 공화당 측의 견해와 방역목적 상 엄격한 통제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민주당 측 견해 간의 충돌이 야기되어 왔다. 이러한 괴리는 선거운동 방식의 차이는 물론 유권자등록과 서명확인, 우편투표의 확대 및 개표 시간의 연장 허용 문제 등을 둘러싼 논쟁점을 형성하였고 선거결과에 대한 신뢰 도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셋째, 세계화의 모순이다.

미국 내에서 악화되고 있는 좌우대립의 현실적 바탕은 한편으로는 세계화되어가는 환경에서 초성장한 빅텍과 초국가적 금융자본을 관리하는 빅머니로 구성되는 사회상층부로의 부의 편재와 다른 한편으로는 쇠락하는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중산층이 느끼는 점증되는 박탈감 사이에서 형성되어 온 세계화의 모순이다.

현재 민주당의 지도층은 1990년대 구소련과의 냉전이 종식된 이후 심화되어 온 세계화를 주도하여온 당시의 집권세력들로 그 과정에서 중국의 세계경제편입과 급속성장을 가능케 하는 한편, 자신들의 정치경제적 위상도 강화해 왔다. 또한, 워싱턴을 중심으로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되어 양당 내에 공히 존재해온 정치・행정・사법 분야 등 국가운영에 종사하는 전문가집단 중심의 소위 ‘워싱턴기득권그룹(Washington Establishment)’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빅테크, 빅머니, 빅미디어와 민주당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당사자 간에 세계화의 확산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세계주의(Globalism) 연대가 구축되었다. 반면, 세계화의 심화 과정에서 불이익이 점증되어 왔다고 항의하는 근로계층과 미국우선주의를 제창하고 반세계화적 성향을 보여온 트럼프의 지지층이 소위 ‘트럼프주의(Trumpism)’를 기치로 하는 국가주의(Nationalism) 연합을 형성하면서, 양 세력 간에 첨예한 대립과 충돌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렇듯 커다란 후유증이 지속되고 있는 미국대선은 ‘신남북전쟁’으로도 일컬어지는 가치관의 충돌이라는 과거로부터의 숙제가 최근의 급속한 발전이 초래하는 과학기술의 함정을 극복해야 한다는 미래의 과제와 결부되면서 그 심각성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또한, 냉전종식 이후 각국 엘리트들 간의 초국가적 협력에 힘입어 더욱 빠르게 확대되어온 세계화에 내재한 모순은 한 국가의 내부에서 야기되는 계층 간 반목의 심화를 넘어 국가 간의 대립과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증대시키고 있는데, 금번 선거 전후에 더욱 빈번히 거론되고 있는 타국의 관여설 또한 이러한 우려를 증폭시킬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상기한 세 가지의 엄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지속될 미국대선의 후유증이 향후 미국 외교정책의 전개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됨에 따라, 중국의 패권도전 등으로 이미 변환기에 접어든 국제질서는 불확실성과 유동성의 증대로 불안정성 또한 증폭될 가능성이 커지게 될 것이다. 나아가 미국만이 아니라 여타 국가들도 보수와 진보의 가치관을 둘러싼 이념적 대립,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직면하게 된 경제사회적 딜레마의 대두, 그리고 동시에 제기된 세계주의와 국가주의의 간 긴장 등의 동질한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는 이른바 ‘위기의식의 세계화현상’으로 인해 국제질서의 대변환이 일어나고, 급기야 20세기 초 이후 100년 만에 또 다른 시대적 변곡점에 봉착할 수도 있음을 감지케 하고 있다.

지난 백여 년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국제질서의 변환기에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명운이 갈렸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즉, 제국주의의 힘이 밀어닥친 조선왕조 말기에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선택지가 놓여졌고, 광복 후 들이닥친 냉전구조의 형성과정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선택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미국대선을 계기로 가시화되고 있는 복합적인 도전에 대한 대응이 한반도의 명운을 가른다는 동일한 맥락의 인식 하에 대한민국이 국제질서의 급변기를 헤쳐나갈 포괄적인 국가대전략을 모색하는데 모든 역량을 결집함으로써 또 다른 역사적인 분기점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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