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가수 이후 20년 만에 AI 걸그룹 데뷔...완성형 아닌 성장형 아이돌
사이버 가수 이후 20년 만에 AI 걸그룹 데뷔...완성형 아닌 성장형 아이돌
  • 오석주 기자
  • 승인 2021.03.24 11: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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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국내 첫 사이버 가수 '아담'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미래 세상이 마치 눈 앞에 현실로 펼쳐지는듯 했다. 미디어들도 연일 보도를 쏟아내며 취재 경쟁에 나섰지만 아담은 2집 앨범을 끝으로 팬들에게 은퇴선언도 못한 채 대중들에게서 사라졌다. 시도는 좋았지만 당시 기술적 한계가 발목을 잡았다. 3D 그래픽기술로 표정과 몸 동작 하나하나를 일일이 구현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 곡을 발표하기도 쉽지 않았다. 

20여 년이 지난 2021년 3월22일, 국내에서 또 다른 가상 아이돌이 데뷔했다. 이번엔 11인조 걸그룹이다. 그런데 3D그래픽 기술이 아닌 인공지능 딥리얼(Deep Real) 기술로 태어났다. 딥리얼은 AI 딥러닝을 통해 가상의 사람, 사물, 자연물, 실내환경 등을 ‘리얼하게’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이번에 데뷔한 11명의 멤버 모두 사람의 댄스 영상에 AI학습을 통해 구현된 가상의 얼굴을 합성한 것이다. 

'이터니티(eternity; 영원)라는 그룹명은 영원토록 대중과 함께 할 최고의 가상아이돌이 되겠다는 다짐에서 붙여진 것이다. 그룹의 취지에 맞게 맴버구성도 국민투표에 붙여졌다. 딥리얼로 만들어진 101명의 가상인물을 인기투표에 붙여 최종 선발된 11명으로 그룹을 결성했다. 첫 싱글앨범 ‘I’m real’은 피노키오가 아버지의 사랑으로 사람이 될 때 했던 말이다. 가상으로 만들어진 아이돌이지만 진짜가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담고 있다. 이번 싱글앨범에는 멤버 중 5명(여름, 수진, 민지, 혜진, 서아)만이 참여했고, 나머지 맴버들은 순차적으로 합류할 예정이다.

작지만 큰 시험대... 대중의 반응은 호불호

이번 첫 싱글 ‘I’m real’이 22일 오후 6시 유투브 공식채널 아이아팹(AiA-fab)을 통해 공개됐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조회수가 하루만에 6만회를 넘겼고, 이틀째인 23일에는 8만7천명에 달했다. 댓글수도 하루만에 1400개나 달렸다. 특히 해외 SNS를 통해 쇼케이스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보다 해외반응이 더 뜨거웠다. 하지만 해외 시청자들의 이터니티에 대한 반응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향후 활동에 대한 기대감과 격려하는 댓글도 많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가짜(페이크)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 부자연스러운 표정과 특색 없는 목소리에 대한 불쾌감, 인간가수의 설 자리가 사라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이런 반응들에 대해 이터니티를 탄생시키고 매니징하는 AI그래픽 전문기업 펄스나인의 박지은 대표는 오히려 반기는 모습이다. 그녀는 당장의 AI 걸그룹의 인기보다는 대중이 AI 걸그룹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가 더 궁금했다. 미국의 '릴 미켈라', 일본의 '이마', LG의 '김래아'처럼 몇몇 AI인플루언서들이 이미 개인적인 활동을 시작했지만 대중이 AI 기술을 수용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또 1명이 아닌 5명의 얼굴을 동시에 스왑해 개인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서로 어우러지게 연출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고난도 기술이다. 그래서 이번 쇼케이스는 펄스나인으로서도 대중의 질책을 각오한 하나의 큰 도전이었다. 이제 데뷔무대를 가졌으니 이터니티를 통해 딥리얼 기술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중의 평가와 질책으로 개선해 나가는 일만 남았다. 

채여름

인간 가수와 AI 가수의 공생?

아이아팹(AIA-fab)에서 만들어진 가상인물(아이안)은 인간의 기술에 의해 태어났지만 인간과 소통하고 상생하는 법은 아직 모른다. 이터니티는 사람과 교감하고 소통하기 위한 방법으로 춤과 노래를 선택했고, 아직은 이것들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래서 완성형이 아닌 성장형 아이돌이다. 나중에는 춤과 노래 뿐 아니라 유투버, 작가, 싱어송라이터 등 개인의 개성을 살린 또 다른 활동으로 사람들과 좀 더 감성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다. 

AI작가, AI화가에 이어 AI가수까지, 이들이 인간의 직업을 대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인간 걸그룹은 좀 더 인간 걸그룹 답게, 가상 걸그룹은 인간 걸그룹이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며 좀 더 가상 걸그룹답게 공생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박 대표의 견해다. 결국 우리사회가 수용하지 못하면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열린 마음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사람이 못하는 부분을 추구해 나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바라본다면 기술이 좀더 우리사회를 윤택하게 만드는 쪽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녀의 시각이다.

펄스나인은 향후 딥리얼 기술을 자사의 '아이아팹(AIA-fab)' 웹서비스를 통해 오픈베타 형태로 무료로 제공할 예정이다. 하지만 기술 자체가 GPU를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당장 모두에게 개방하기는 어렵고, 라이센스를 쉐어하는 형태의 부가서비스나 일부 상업적 프로젝트에 과금 형태로 적용해나갈 방침이다. 하지만 사회적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 업계의 발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프로젝트는 우선적으로 신청을 받아 기술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또 최근 오픈소스인 딥페이크 기술을 오용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들이 잦은 만큼 딥리얼 기술에 대한 정확한 방향성과 정책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기술을 관리해 나갈 방침이다. 

20년 전 아담은 그래픽 기술로 탄생한 아이돌이다. 사람이 일일이 그래픽으로 동작을 구현해야 했다. 하지만 이터니티는 인공지능 학습을 통해 스스로 자연스러운 표정을 찾아간다. 지금은 어색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과 입모양은 더욱 정교해진다. 그래서 성장형 아이돌이다. 어쩌면 영화 '트루먼쇼'에서 트루먼 버뱅크가 태어나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모든 시청자들이 지켜봤듯 우리도 이터니티의 성장과정을 모두 지켜보게 될지 모른다. 이터니티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우리와 같은 성장기를 걷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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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혁제 2021-04-30 16:21:47
이터니티 데뷔는 언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