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관할권의 확대와 인권 보호
보편적 관할권의 확대와 인권 보호
  • 박희권 前주스페인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03.1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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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말 독일의 한 법정은 전직 시리아 정보기관원에 대해 4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사람들을 체포, 구금하여 고문과 살해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였다. 보편적 관할권(universal jurisdiction) 원칙을 적용하여 시리아 정부관리에 내려진 첫 번째 판결로서 향후 시리아 내전에서 잔혹행위를 저지른 많은 이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처벌될 수 있는 역사적 선례로 남을 것이다.

보편적 관할권에 대해 명확하게 합의된 정의는 없다. 대체로 범죄 발생장소, 범죄자 또는 희생자의 국적에 관계없이 범죄행위의 성격만을 근거로 어느 국가든지 행사하는 형사 관할권을 말한다. 실제로는 대상자의 신병을 확보한 국가가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관습국제법상 보편적 관할권이 적용되는 범죄는 해적행위, 노예매매 및 아동·부녀자의 매매 등이 있다. 아울러 항공기의 불법납치, 외교관에 대한 공격, 테러, 제노사이드(집단살해)와 고문 행위를 규율하는 다자협약은 이러한 행위들을 보편적 관할권이 적용되는 국제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관습국제법과 조약에 의해 보편적 관할권이 인정되는 이유는 범죄행위가 ‘모든 인류의 적(hostis humani generis)’으로 인정될 만큼 잔혹하여 인류 공동체의 이익을 침해하기 때문에 어느 국가라도 이를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형법에는 보편주 의에 입각한 처벌조항은 없으나 ‘국제형사재판소 관할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나 유엔해양법 협약 상 해적행위와 관련된 특별법에는 이에 대한 조항이 있다.

보편적 관할권이 국제적 관심을 받게 된 주요계기는 1998년 발생한 피노체트 사건이었다. 그해 9월 피노체트가 치료를 위해 영국에 입국하자 스페인의 B. Garzon 치안판사가 피노체트의 재직 시 행한 범죄행위를 재판하기 위해 그의 스페인 인도를 요구했던 것. 영국 법원은 칠레에서 자행된 범죄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하였는데 이는 고문행위를 보편적 관할권이 적용되는 국제 범죄로 인정하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정치적, 건강상 이유로 피노체트가 스페인에 인도되지는 않았으나 이 사건은 국제법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즉, 국제 공동체 이익을 침해하는 국제 범죄에 대해 보편적 관할권이 적용되었고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 주권 면제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국제인도법과 인권법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 사건이후 보편적 관할권의 행사가 급증하였다. Maximo Langer 미국 UCLA 교수에 따르면 2008년~2017년간 보편주의가 적용된 사건은 815건에 달했다. 이는 그 이전 20년간 적용된 숫자와 비슷하다. 최소 16개국이 보편주의 원칙을 적용하여 사건을 심리하였으며 그 중 71건은 대부분 유죄 판결로 종결되었다. 피고인의 40%는 아프리카인, 25%는 중동인, 20%는 유럽인, 8%는 아시아인이었다. 보편주의 원칙을 적용하여 궐석(in absentia) 재판을 허용하는 나라도 있었다. 현재 보편주의 원칙적용을 리드하고 있는 나라는 스페인,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북유럽국가와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이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현재 약 110건이 심리중인데 대부분 이라크와 시리아에서의 인권침해 사건이다.

보편관할권이 확대 적용되는 과정에서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영토주권과 충돌되며 범죄자의 국적국과 긴장 관계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컨대, 범죄지 국가의 관할권 내에서 행해지는 전쟁범죄, 인도에 반한 죄 등에 대해서는 관할권이 충돌된다. 또한 보편주의가 정치적 목적에 의해 또는 소송남용의 목적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용될 경우 국제질서를 혼란시키고 국가 간 대립을 초래할 수 있다. 물론 범죄혐의자가 범죄발생지국에 소재하는 경우 속지주의에 따라 범죄 발생지국이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이 맞지만 만일 범죄발생지국이 범죄혐의자에 대하여 법 집행의사가 없거나(unwilling) 또는 능력이 없는 경우(unable)에는 처벌을 희망하는 국가가 보편적 관할권에 근거하여 범죄인 인도를 적극 요청하는 방안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하여야만 보편적 관할권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상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관할권의 확대는 국제인권보호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 특히, 인류 최초의 상설 재판소인 국제형사재판소(ICC)가 구조적 한계를 노정함에 따라 보편주의에 의한 인권보호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2002년부터 활동을 개시한 ICC는 전쟁범죄, 인도에 반하는 범죄, 제노사이드 범죄, 침략범죄를 관할 범죄로 하여 국제사회에서 법의 지배를 확산시킬 것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ICC는 범죄 발생지국이나 범죄인 국적국 중 어느 한 국가가 ICC 규정 당사국일 경우에만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안보리가 회부할 경우 제약 없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으나 미, 중, 러 등 강대국은 로마규정에 가입하지 않고 거부권 행사를 통해 국제형사법의 집행을 방해하고 있다. 또한 의도적이진 않지만 ICC의 수사, 기소, 재판이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집중되면서 ICC가 ‘선별적 정의(selective justice)’를 추구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보편적 관할권은 국제인권보호측면에서 ICC의 보완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인권보호를 외교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로마규정에 서명을 하지는 않겠지만 ICC를 묵시적으로 지원하고 트럼프 대통령 때 탈퇴한 인권이사회(HRC)에 재가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시대적 배경 하에서 보편적 관할권의 적용 확대는 ‘정의의 심판을 피해 숨을 곳은 없다’라는 인식을 강화시킴으로써 국제인권 보호에 기여할 것이다.

*필자의 개인의견이며,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박희권 대사(heekwon79@gmail.com)는 외교부 조약국장, 주유엔 차석대사, 주페루 대사, 주스페인 대사를 역임하고 현재 한국외대 석좌교수, 한서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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