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초연결, 초융합, 초고속, 초지능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물리적 기술, 디지털 기술, 생물학적 기술이 융합하면서 모든 부문에서 전례 없는 질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데이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고, 코딩도 빠른 속도로 행해지고, 기계의 인지자동화 조짐이 나타나면서 인류의 미래는 인간지능과 기계지능 간의 대결로 점쳐지고 있다. 데이터는 국경을 넘어 정치, 경제, 사회, 국제관계 등 모든 면에서 모든 국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보가 다차원에서 개방되면서 물리적 시공간의 한계가 극복되고 시공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데이터 과학과 뇌과학이 급부상하면서 사회과학 분야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디지털 시장이 기존의 시장개념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은 정치적 힘까지 발휘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
이를 두고 세계경제포럼 클라우스 슈바프는 2016년 4차 산업혁명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고 기술했다. 그 후 5년 뒤, 지난 1월 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언은 “온라인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은 자유와 공정경쟁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안보, 정보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역설하고,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대 디지털 기업의 힘 통제와 관련기업의 책임을 골자로하는 공동의 규정집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미국내에서도 신자유주의를 주도하고 반독점법에 미온적인 시카고 학파도 이번에는 반독점법의 강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거버넌 스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필연적으로 바뀌어야함을 시사한다.
슈바프 회장은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철도와 증기기관 발명을 바탕으로 기계에 의한 생산방식을 1차 산업혁명으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전기와 생산조립 라인의 출현에 의한 대량생산 체제를 2차 산업혁명으로, 1960년대 시작된 컴퓨터와 인터넷 발달이 주도한 디지털 혁명을 3 산업혁명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디지털 혁명으로 나타난 모바일 인터넷, 인공지능, 기계학습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요소로 지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분야의 기술의 융합과 그 기술의 확산 속도와 범위, 깊이에 미친 엄청난 파급효과를 4차 혁명의 특징으로 풀이했다. 일각에서는 4차 산업혁명보다는 3차 혁명의 연장선에서 ‘4차 정보혁명’ 내지 ‘인더스트리4.0’으로 부르고 있다. 관점이 어떻든 중요한 사실은 기계의 용도와 위상의 변화다.
1, 2차 산업혁명 당시 기계는 수동적 조력자였다. 업그레이드는 인간 손에 의존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계가 스스로 한다. 나아가, 인공지능은 강화학습으로 인간의 잘못된 지식이나 선입견을 걸러내고, 인간 지식 자체가 부족하거나 전무한 분야를 보충하고 개척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기계가 기계의 자유의지에 따라 인간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호킹 박사와 머스크 CEO가 인공지능의 미래를 두려워한 이유다. 알파고 제로가 인간 도움없이 72시간 독학으로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를 100전 100승한 것을 보면 근거없는 걱정이 아니다. 인간 중심의 휴먼사회에서 사이보그 중심의 포스트 휴먼 사회로 변동하면서 겪어야할 피하기 어려운 아노미 현상이다.
4차 산업혁명의 주요 동인은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블록체인, 클라우드 컴퓨팅, 3D프린팅 등을 중심으로 기술과 산업 사이에서 일어나는 융합혁신이다. 예를 들면, 물리학과 생물학에 인공지능이 가세하고 기계공학에 바이오 기술이 융합하고 있다. 이러한 사이버-물리 시스템(Cyber-Physical System)의 형성으로 인간과 기계의 잠재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면서 실재와 가상이 초연결 환경에서 초고속으로 통합되고,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인간과 기계간의 관계가 변하고 있다. 그 변화 속도(velocity)가 기하급수적이고 광범위하면서 깊숙이 영향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하여 20세기 후반까지 주도하던 인과적 결정론과 방법론적 환원주의가 쇠퇴하고 세계를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한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방법론으로서 복잡계 이론 체계가 주목받고 있다. 복잡계에서는 환원주의적 접근시와 전혀 다른 새로운 거시적 질서의 창발(emergence)현상이 일어난다. 즉, 상이한 기술들이 만나고 섞이고 변화하 고 거듭나면서 디지털 언어라는 언어구조와 디지털 논리구조라는 공유지 그리고 디지털 파워가 구축되고, 그 속에서 창발이 일어난다. 디지털 플랫폼의 경제적, 정치적 파워가 대표적이다. 디지털 플랫폼이 정치, 경제, 외교 분야의 지배구조에 미치고 있는 양상을 살펴보자.
첫째, 디지털 마켓이다. 이는 기존 시장 개념과 전혀 다르다. 데이터를 많이 축적하고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는 디지털 거대 기업은 시장을 독점하고 타기업의 신규 진입을 억제하고 있다. 특히, 네트워크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용자에게 더 큰 혜택을 주면서 결국 포지티브 피드백 루프 효과(나비효과와 유사 개념)를 유발하여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이 중요하지 않다. 쿠팡이 한국에서 지난 7년간 약 5조 원 적자를 내면서도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이유다. 플랫폼 자본주의, 불로소득 자본주의, 공유경제가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생산수단 없이 기술적 장치만 보유하고 시장을 지배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택시 기업인 우버는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가 없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미디어 페이스북은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디지털 파워가 국익뿐만 아니라 국력에 지대한 영향을 주면서 디지털 보호주의를 유발하고 있다. 미국, EU, 중국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보호주의가 대표적이다. 미국과 중국은 인공지능기술과 5G같은 소프트 파워에서 패권 경쟁에 몰입하고 있다. 미국은 기술보호를 넘어 국제안보 차원에서 일본 등과 글로벌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 EU는 중국의 디지털 보호주의를 맹비난하는 한편, EU내 첨단 산업 육성 및 보호를 위해 미국의 진입을 차단하고 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은 체제유지에 영향을 주는 외부 기술을 차단하고 관련 기업활동을 억제시키고 있다. 또한, 첨단 기술을 절도하거나 외국 기업에 대한 기술 이전 강요 등으로 비난 받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디지털 플랫폼을 순전히 국익과 국력 신장을 위해 자국 디지털 기업은 독점금지법에 어느 정도 위배되어도 눈감아 준다. 대신 외국 기업은 철저하게 억제하고 있다. 최근, 미국 글로벌 기업 모두가 중국을 떠난 배경이다. 우리나라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나아가, 디지털 보호주의는 글로벌 공급망 무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이 최고의 기술 수준과 서비스 부문에서 독점적 위치를 점하고, 일본이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가장 후방인 첨단 소재, 부품, 장비에서 독점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자국 완결형 가치사슬인 홍색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디지털 보호주의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을 중심축으로 한 가치사슬에 적극 참여하고, 우리나라의 가치사슬을 그 축에 접목시켜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사항은 한국의 GDP 대비 R&D는 2019년 기준 4.6%로 세계1위다. 그러나 과제 성공률은 98%로 너무 높고 사업화 성공률은 20%로 2개국 중 17위다. 과학기술분야 전문가들의 관심이 정부주도 사업에 집중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필요한 것은 장롱 속 지식이 아니라 시장을 지배할 창의이다.
둘째, 자유민주주의 지배구조의 훼손이다. 디지털 글로벌 기업은 정보를 독점하고 특정 정당을 위해 여론을 조정하고 자사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시민의 정치적 선택 폭을 제약하고 있다. 거짓 뉴스나 증오 발언(hate speech)을 사용자도 모르고, 검증하지도 않고, 여과하지 않고 퍼트림으로써 사회적 갈등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가치체계를 훼손시키고 있다. 사용자는 데이터 주고, 대가를 지불하고, 사생활 침범 당하면서 만족하고 있다. 역설이다. 러시아는 소셜봇을 이용하여 미국, 프랑스 등의 소셜미디어 공간에 가짜뉴스를 퍼뜨려 외국의 정치에 개입하고 사회를 혼란시키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반독점 정책을 총괄하는 ‘반독점 차르’ 신설을 검토 중이다. 독일은 2018년 증오 발언을 소셜미디어 기업이 24시간 내에 삭제하지 않으면 최대 5천만 유로(약 670억 원) 벌금을 부과하는 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주 대상인 글로벌 기업의 권력을 약화시키는데 매우 제한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문제는 인터넷 플랫폼의 권력을 약화시킬 명분이 매우 약하다는 점이다. 사실, 일반적 관념과는 달리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글로벌 기업들이 가장 혁신적이고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이 1위, 검색 90% 이상 차지한 구글이 2위, 유통 50%를 차지한 아마존이 3위, 마이크로소프트 4위, 삼성이 5위다. 이들 기업들은 효율과 소비자 후생 극대화를 위해 끊임없이 혁신하고 있다. 신규 기업이 진입해도 이들 보다 더 좋은 지배구조와 소비자 후생을 보장해 준다는 근거도 없다.
셋째, 디지털 플랫폼은 새로운 지식외교를 창출하고 외교 행위자를 변화시키고 있다. 방대한 외교정보를 디지털화하고 집적하고 관리하여 생산된 지식은 지식외교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개인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정보 접근이 가능하고,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생산하고, 특정 국제정세를 이슈화할 수 있음에 따라 외교행위자가 다변화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공공외교가 시사하듯이, 중상주의적이거나 다른 나라 정서를 침해하는 접근법은 절대 피해야한다.
빅데이터를 통한 지식외교 접근법은 외교 전문가의 지식과 영역을 축소시키고 보다 포괄적이고 정확하게 분석, 평가해주고 있다. 실례로 구글이 서비스를 시작한 2004년 미국 대선부터 2016년까지 이슈에 관계없이 검색량이 많은 후보가 대선에 승리했다. 즉, 2016년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우세를 점쳤던 당시 여론과 달리 빅데이터는 트럼프의 승리를 내다보았다. 다른 한편, 2019년 4월 한・미 정상회담이 워싱턴에서 개최되었음에도 미국 연방상원 의원들은 이와 관련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방상원이 외교, 안보에 높은 권위가 있고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연방상원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은 대미 지식외교가 미흡하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보기술 혁명은 국제관계에 관한 융합적 인식능력과 종합적 사고방식을 요구하고 인공지능과 동행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데이터는 역사를 더 깊고 포괄적으로 접하게 한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인류의 현재 지식과 시야는 상대적으로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것이 곧 데이터의 힘이다. 그 힘을 먹고 자라는 인공지능은 인간능력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를 만들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성이 없으면 생존하기 힘든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 창의는 ‘창조적 파괴’를 넘어 인공지능을 능가하는 창의이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변화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정말 달라져야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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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호 대사(mahler.1860@yahoo.co.kr)는 OECD파견(무역위, 경쟁위), 주OECD대표부 참사관(개발원조위, 환경위), 주뉴욕총영사관 경제담당 영사, 주가봉 대사, KOICA 이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