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 해적 퇴치를 위한 한국의 역할
서아프리카 해적 퇴치를 위한 한국의 역할
  • 송금영 前주탄자니아 대사/ 정리=이지연
  • 승인 2021.03.12 13: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아프리카의 기니만(Gulf of Guinea)은 세계적으로 해적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위험한 수역이다. 기니만에서의 해적사고는 2016년 95건, 2017년 97건, 2018년 112건, 2019년 111건으로 전 세계의 50% 이상을 차지하며 매년 증가 추세이다. 유엔해양법협약과 국제상공회의소 국제해사국(IMB)의 견해를 종합하면 해적행위는 “공해상이나 영해 또는 정박중이거나 항해를 불문하고 선박 및 승조원에 대한 절도 및 모든 범죄행위를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해적 행위는 고대부터 항해의 자유와 세계 무역을 위협하여 인류 공동의 적이었으며 오늘날 국제해양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2020년 세계 해적사고는 2019년 대비 20% 증가한 195건이며, 이로 인해 국제사회는 연간 70억 달러의 손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프리카 해역은 연안국들의 정세 불안과 법 집행력 미비, 활발한 해상물류 등으로 해적 활동에 취약하다. 아프리카 대륙은 지리적으로 인도양, 대서양, 지중해 등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해상물류가 아프리카 총 교역의 90%를 차지한다. 특히 인도양을 접한 동아프리카와 대서양을 접한 서아프리카 연안국들은 대부분 가난한 개도국으로서 해군력이 빈약하여 영해에서 불법어로 및 해적을 단속 할 여력이 없다.

2000년대는 동아프리카의 소말리아 해역이 해적 활동의 주요무대였다. 소말리아 해역은 외국 화물선이나 유조선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 경유 하는 홍해 입구의 아덴만(Gulf of Aden)에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소말리아는1991년에 시작된 수십 년간 내전으로 경제가 파산되고 무정부 상태에 처하게 되자 주민들은 해적이 되어 외국 상선을 공격했고 선원을 납치하여 거액의 보석금을 챙겼다. 그러나 최근 소말리아 정세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국제사회의 군함 파견 등으로 해적 활동이 크게 감소하였으며 2019~2020년 간 소말리아 해역에서 한 건의 해적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도 2009년부터 청해부대를 아덴만에 파견하여 해적 퇴치에 기여하고 있다.

2010년대에 동아프리카 해역에서 해적 활동이 잠잠해지자 그 반대편의 서아프리카 기니만 연안이 해적 활동의 주요한 무대로 부상하였다. 약 6,000㎞ 해안선을 가진 기니만은 세네갈, 앙골라 등 17개의 연안국과 20여개 주요 항구가 위치하며 아프리카 해상물류의 25%를 차지하는 주요한 국제해역이다. 앙골라, 나이지리아 등 산유국이 위치하여 아프리카 원유의 60%를 생산하고 있어 대형 유조선의 입출항이 빈번하다. 그리고 기니만은 세계 어획 생산량의 4%를 차지하는 황금어장을 보유하고 있어 많은 해외 어선들이 몰려들고 있다. 기니만을 항해하는 연간 수만 척의 화물선과 유조선, 어선들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해적의 주요한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은 무엇보다도 서아프리카 연안국들의 만성적인 부정부패・빈곤과 높은 실업률이 생계형 해적을 양산하고 있다. 외국 어선들이 저인망으로 어족 자원을 남획하자 연안 어획고가 줄어들고 영세적인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 서아프리카 연안국 주민들의 25%가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들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생활 유지가 어렵게 되자 해적으로 돌변하기도 하였다.

최근 해적은 영리 목적으로 활동 범위를 확대하고 과감해졌다. 1990년대의 아프리카 해적들은 생계형이었으나 2000년대에는 반정부 무장 세력들이 개입하면서 장비와 조직력이 강화되어 선박과 인질 납치, 해상 원유 절도 등 기업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기니만 연안에서 해적 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이 아프리카 주요 산유국인 나이지리아 연안이다. 나이지리아 정부의 부정부패 등으로 매일 원유 12만 배럴이 유조선이나 석유저장시설에서 탈취되는 등 석유 해적이 기승을 부렸다. 2019년도 나이지리아에서 발생한 원유 절도 규모는 약 27억 달러로 추정된다.

그러나 2014년부터 원유의 국제가격이 폭락하자 해적들은 원유의 절도보다는 선원을 납치하여 거액의 보석금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해양수산부의 발표에 의하면 서아프리카 해역에서의 선원 납치 사건은 2018년 78명, 2019년 121명, 2020년 130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선원 납치의 대부분은 나이지리아 해역에서 발생하였으며, 최근 베냉, 토고, 카메룬 해역으로 활동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서아프리카 연안국들은 해안 경비정이 부족하여 해적 퇴치가 어려우며 대규모 원유가 매장된 해저에 대한 경계선 및 관할권 분쟁 등 불신으로 해적에 대한 정보 공유도 미흡한 실정이다. 그리고 상호간 사법공조협정이나 범죄인 인도협정이 체결되지 않아 해적을 체포해도 법적으로 처벌하는데 문제가 많다.

기니만 해역에서 해적사고가 빈발하자 국제사회는 해적 퇴치를 위한 공조체제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13년 기니만 해적방지 결의안을 채택하고 해상안보신탁기금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2013년 유엔 후원 하에 서아프리카 17개 연안국 정상이 참가한 야운데(Yaounde) 정상회의가 개최되어 해양안보 강화방안에 대해 협의했고 그 결과 유럽연합(EU)의 지원으로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장 등 3개 지역에 해상안보센터가 설립되어 정보 공유 등 해적 퇴치에 노력하고 있다. 미국, 영국, 스페인, 프랑스는 기니만에서 정기적으로 해적대응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현재 아프리카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기니만 연안국들에게 경비정을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도 해적 퇴치를 위해서는 국제해사기구 등 국제사회와 연안국 간의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한편 한국도 기니만의 해적으로부터 피해를 받았다. 한국 선원이 2020년 5월 가봉 해역에서 1명, 6월 베냉 해안에서 5명, 8월 토고 해역에서 2명이 각각 납치되었으나 선주 측과 납치단체 간 협상으로 모두 석방되었다. 한국은 기니만의 적도기니, 나이지리아 등 산유국에서 원유를 수입하고 있으며, 2020년 7월 현재 145명의 한국 선원들이 기니만 해상에서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17~2019년간 나이지리아, 베냉, 카메룬, 토고 인근 해역에서 세계 선원납치 사고의 약 90%가 발생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2020년 7월 이들 해역을 ‘고위험 해역’으로 설정하고 한국 선사들에게 조업 및 통항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우리 선원들의 안전 강화 및 아프리카 해상안보 기여 차원에서 해적 퇴치를 위한 국제공조에 보다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국내 안정이 해상안정에 공헌하는 만큼 아프리카 연안국에게 국내 치안 확보 노력과 함께 경비정 지원 및 전문가 교육, 그리고 현지 수산업 양성 등 해양개발협력을 보다 강화해 나가야 한다.

* 송금영 대사(geumyoungsong@gmail.com)는 주카자흐스탄 공사, 주탄자니아 대사를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러시아의 동북아 진출과 한반도 정책』(2004, 국학자료원), 『유라시아를 정복한 유목민 이야기』(2018, 민속원), 『아프리카 깊이 읽기』(2020, 민속원) 등이 있다.(편집자 주: 필자 개인의견이며,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