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김치, 아리랑 … 그리고 중국
한복, 김치, 아리랑 … 그리고 중국
  • 임한택 前주루마니아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02.26 11: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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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잠식 대응할 외교전략 필요하다

필자가 주루마니아대사 시절이니 벌써 6~7년은 된 듯싶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중국대사로부터 중국 예술단의 부쿠레슈티 공연에 초청을 받고 아내와 함께 참관하였다. 공연은 중국의 다양한 춤과 노래가 섞인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공연 후반부에 갑자기 우리 귀에 익은 아리랑의 음률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중국 예술단이 예상치 않게 아리랑을 공연하자 나는 황당하였다. 중국대사에게 불편한 표정을 짓고 공연장을 먼저 빠져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본부와 관련 부서에 이를 보고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건의하였다. 중국이 아리랑을 중국 문화라고 해외에서 홍보하는 것이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부쿠레슈티에서 이임할 때까지 본부로부터 이에 관한 지시를 받은 기억이 없다.

일화를 소개한 것은 작년 말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환구시보의 보도로 불거진 한・중 간 김치 원조에 관한 논쟁 때문이다. 우리의 김치와 중국의 파오차이와의 관계를 따지는 것은 이 글의 주된 의도가 아니며, 정치·외교적 측면에서만 말하고자 한다.

중국의 전통적인 문화적 우월성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할 것이다. 문화의 원류라고 자부하는 중국의 문화적 우월감은 유독 한국의 김치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축구나 골프는 다들 영국이 종주국이라고 믿지만, 중국은 심지어 축구나 골프도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는 고화(그 진위를 따져 보아야 하겠지만)를 내밀며 중국에서 기원하였다고 주장한다.

내가 만난 어느 중국대사는 일본의 차(茶) 문화나 분재도 중국이 원조라고 하였다. 중국이 원조일 수도 있겠지만, 차와 분재가 원산지 중국보다도 일본에서 고급문화로 만개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할 것이다(흥미롭게도 어느 일본대사는 일본의 사시미가 태국이 원조라고 시인하였다. 우리나라의 소주도 몽골이 기원이라고 한다).

중국은 얼마 전 한복이 명나라 의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환구시보가 김치도 중국이 원조라고 한다(사실 중국이 원조인 것들이 상당수일 것이다. 일부 국수적 국내 인사들이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면도 없지 않다. 이들은 한자도 한민족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김치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의 전통 음식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리랑도 중국 문화의 일부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족은 말 그대로 중국 내 지역적 소수민족이다. 조선족의 본류인 대다수 한민족이 버젓이 김치와 아리랑 등 고유문화를 보존・계승하고 있는 데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문화를 자기네 문화라고 내세우는 것이 과연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이 있을까? 중국의 문화적 우월성은 타국의 고유화한 문화와 전통을 자기 것으로 내세워 과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이 자신들의 문화를 존중받고 싶다면 상대 문화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하는 것이 마땅하다.

중국은 1990년대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실시하여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사실상 편입하였다.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로 복속시키고 난 다음 수순은 당연히 역사적 산물인 문화이다. 기원이 불분명한 문화와 역사는 사실상의 힘에 의해 지배되는 영역이다. 중국은 역사와 문화를 힘으로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이러한 중국의 태도는 중국의 부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물리적 부상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대국으로서 중국의 소프트 파워는 여전히 뒤처진 수준이다.

중국의 문화가 보편적인 호소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제 대놓고 한국을 소국 취급한다. 소국이 이웃의 대국을 무례하게 모욕하면 망할 수 있다고 오만한 태도를 감추지 않는다. 중국의 거침없는 굴기와 이에 따른 힘의 과시 욕구가 어디까지 갈지 우려스럽다. 도자기 가게에 들어선 코끼리와 같다. ‘사대자소(事大字小)’라는 말이 있다. 비록 힘 있는 나라라도 소국을 잘 돌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거대 중국의 옆에서 한국은 이제 중국이 꿈틀거리기만 해도 몸을 움츠려야만 하는 신세가 되고 있다. 더욱이 민주적 통제가 되지 않은 사회가 힘의 과시를 자제하길 기대하는 것은 희망이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원조를 중히 여기는 나라다. 길거리 음식점 간판마다 원조를 내세운다. 중국이 김치를 자기 것이라고 내세우니 머지않아 대놓고 아리랑도 자기 것이라 할 것이다. 중국 특유의 긴 호흡으로 하나씩 하나씩 이른바 ‘살라미 전술(Salami-slicing tactics)’을 취해 나가면서 조급한 우리를 압박해 나갈 것이다. 정부는 무슨 이유인지 아직까지도 중국의 우리 문화 잠식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포괄적인 대중외교 목표의 하나로서 문화 잠식을 방어할 외교 원칙을 당당히 수립하여 이행해야 할 것이다. 매사 주체성을 내세우는 북한이 중국의 이러한 안하무인의 태도에 대해 어찌 대응하는지도 궁금하다.

*필자의 개인의견이며, 본 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임한택 대사는 외교부 조약국장, 주제네바대표부 차석대사 겸 제네바군축회의(CD) 대사, 주루마니아대사를 역임하고, 현재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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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금 2021-03-03 03:17:39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