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 및 인도적 문제의 접근 - 이상과 현실 -
북한 인권 및 인도적 문제의 접근 - 이상과 현실 -
  • 김재범 前주우루과이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02.1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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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12월 29일 공포되어 올해 3월 30일부터 시행 예정인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이하 ‘개정법’)에 대해 국내외 인권단체 및 언론의 비판이 빗발칠 뿐 아니라 일부 주요우방국 정부가 인권보고서에 부정적 내용을 반영하고 의회청문회를 개최하려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다수의 의견은 속칭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이라고 불리는 개정법이 국내 표현의 자유와 북한주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므로 위헌이며 북한의 인권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따름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반해 정부를 비롯한 비교적 소수의 의견은 남북공동선언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북한당국에 대한 불필요한 자극을 자제하고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개정법 시행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이 상반되는 견해의 현실적 우열을 비교하고 향후 북한 인권 및 인도적 문제 접근 시 가능한 효과적 조치가 무엇일지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현재 우리나라와 국제사회가 해결코자 노력하고 있는 북한문제가 매우 다양하게 산재해 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국가적, 지역적 및 국제적 평화와 안보에 실제 위협을 가중하고 있는 가장 위급한 사항으로서 최우선순위(front burner)를 점하고 있는 문제는 역시 핵무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s),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미사일(SLBMs),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s) 및 전략무기, 장사정포, 방사포, 잠수함 등 재래식 무기, 그리고 22만여 명의 특공대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비해 긴급성이 비교적 덜한 사안으로서 후순위(back burner)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문제는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사전대비, 평화통일 추진, 인도적 문제(정치범수용소, 공개처형, 5호감시제, 식량난, 에너지난, 열악한 보건위생, 이산가족), 인권문제(양심, 사상, 표현, 언론, 출판, 집회, 결사, 거주이전, 직업선택, 사유재산, 영리 행위, 종교의 자유)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북한주민의 각종 자유와 알 권리를 충족하는 문제는 최후순위에 놓여있음이 엄연한 현실인 반면, 자유세계에서 인권은 천부적 불가양의 권리로서 원칙문제이자 최우선적 위치를 점한다는 보편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와 같은 우선순위 상의 현실적 괴리에 대한 입장을 우방국들에게 먼저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측면은 우리나라와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상황을 외면한다고 해서 북한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반대급부가 별로 없는 반면, 그렇다고 이를 실제로 개선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 역시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다수설은 북한당국이 외국정부의 태도와 반응에 민감하기 때문에 인권문제를 조용히 거론하고 개선을 은밀히 종용하면 미세하나마 효과가 나타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한다면 북한당국은 적대적 골을 더욱 깊이 파고 더 많은 도발을 일삼는 역효과만 초래할 가능성이 명약관화하다.

세 번째로 고려할 점은 북한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엿과 매)’을 적시에 적절히 배합하여 구사해야 하는데, 비핵화 협상을 위해서는 경제제재를 통한 최대압박이 주효하나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제재가 실효성이 전혀 없고 오직 인도적 조치만 유효한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네 번째 고려사항은 남북관계와 국제관계에서 어떤 형태의 균형을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로서, 유엔, 그 산하기구 및 회원국의 동향에 신축적으로 부응하면서 적시에 적절한 방식으로 협력해나갈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2004년 10월 18일 북한인권법이 발효되었고 2009년 11월에는 로버트 킹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임명됐다. 킹 특사는 2017년 1월 퇴직 후에도 전략국제연구원(CSIS) 선임고문으로서 북한인권문제에 관한 청문회증언 및 기고활동 등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톰 랜토스 하원의원이 1983년 창립한 초당적 인권옹호의원코커스를 2008년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TLHRC)로 발전시켰으며, 제117회기 미국의회는 3월 중 TLHRC를 구성하여 청문회 개최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청문회에서는 대북전단 문제뿐 아니라 우리정부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준수여부와 인권관련 다양한 사례를 검토할 것이라고 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답습하지 않고 클린턴행정부의 관여정책의 유형으로 회귀할 전망이다. 북한문제에 대한 미국 내외의 여론을 충실히 반영하되, UNHRC 복귀, EU와의 긴밀한 상호협조 복원 등 선택적이고 실용적인 접근법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대미 정책소통 작업반(T/F)을 구성하고 1월 28일 제1차 회의를 개최하였으며, 주미대사관에서 로비스트를 고용하여 대미설득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탈북자의 대부’로 알려진 데이비드 올턴 영국 상원의원은 태영호 국회의원과 공동으로 개정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서한을 도미닉 라브 외상에게 보내 “깊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회신을 1월 11일 받았으며, 태의원, 지성호 국회의원 및 북한관련 초당적 의원모임(APPG NK)과 함께 개정법 관련 화상간담회를 2월3일 개최했다. 체코정부는 이 문제를 유럽연합(EU) 차원에서 논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섯 번째 고려 점은 개정법 시행을 기화로 하여 정부가 국내 민간단체(NGOs)에 대해 법적으로 규제할 활동과 그렇지 않을 활동이 구분되었다는 사실이다. 민간의 피해에 대해서 소송을 통해 북한의 해외자산을 활용하는 방안이 최근의 경향이다.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오토 웜비어 등 제3국 피해자와 연대하여 배상을 구하는 방식을 관례화할 수도 있다. 참고로 미국정부가 2017년 11월 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함에 따라 재무부에서 동결한 것으로 2020년 11월 30일 발표한 미국 내 북한자산은 2018년 7,436만 달러, 2019년 4,448만 달러에 달한다.

마지막으로 아마도 가장 중요한 고려 점은 북한당국이 전단 살포를 문제삼아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대중시위를 벌이는 등 도발적 행동을 자행하는 의도가 결과적으로 이른바 남남갈등을 부추김으로써 남한 내 정쟁 및 혼란을 가중하려는 데 있음을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북한에 전단 등을 살포해온 단체의 주장에 의하면, 뒤늦게 동종의 운동을 개시한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과도하게 공개적인 활동을 전개함으로 인해 모든 유사단체가 북한당국의 표적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단체의 기술이 부족하여 전단 전달의 효율이 극히 낮을 뿐 아니라 조잡한 합성사진이나 음란물은 드라마, 영화 등 한류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북한주민에게 오히려 역효과만 줄 뿐이고 다른 국내법으로도 단속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파주 통일촌 주민들은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입는 피해를 호소하는 진정서를 작년 8월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에게 제출한 바 있다.

이에 더하여 개정법에 대한 우방국 여론이라고 해서 반드시 반대 일변도만은 아니라 엄연히 찬반양론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태영호 의원은 개정법에 반대하는 자료를 주한 외교공관 및 몇몇 우방국 정부에 전달했으며 복수의 청문회에서 증언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성호 의원은 작년 말 방미하여 토머스 스미스 TLHRC공동위원장과 대책을 협의하는 한편, 개정법의 위반자 처벌조항을 독소조항이라고 지목하고 이를 삭제하자는 재개정안을 작년 12월 29일 발의했다. 최근 중대재해 처벌에 관한 법률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주장을 최대한 수용하다 보니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 예와 같이, 개정법 역시 여야가 한 발씩 물러서서 예를 들어 위반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1년 이하의 징역으로 대폭 하향하는 데 합의함이 일단 현실적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정법은 발의 당시부터 “짜임새가 없고 엉성하다. 너무 서두른다. 반인권적이고 반헌법적이며 정치적인 과잉입법이다” 등의 비판이 제기되었으나, 북한당국을 다루는 데는 매우 장기간의 끈질긴 인내가 요구된다.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내놓은 호전적 신호에 대한 신축적인 대응을 위해서나 국제사회에 대한 이미지를 위해서나 남남갈등 해소의 차원에서도 우선 이 정도 선에서 봉합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러한 대응을 기본으로 다양한 북한문제에서 인권 및 인도적 문제가 점하는 위치를 염두에 두고 국제사회의 동향 및 변화추세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상향식 접근법을 꾸준히 구사해나가기를 기대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북한에 제공한 차관 등을 잘 활용하여 국군포로 및 납북자를 송환해오는 실리적 방안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상기 칼럼내용은 필자 개인의견이며,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김재범 대사(jaebum50@naver.com)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정책·북한부장, 주 우루과이 대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외교특임교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미협회 상근부회장, 국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왕립아세아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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