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류서재 소설가 ‘사라진 편지’, 허난설헌 모티브의 ‘초희’로 10년 만에 복간
[신간]류서재 소설가 ‘사라진 편지’, 허난설헌 모티브의 ‘초희’로 10년 만에 복간
  • 최세영 기자
  • 승인 2021.02.0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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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서재 소설가는 한국 역사 최초 시집살이의 비극적 주인공 허난설헌의 삶을 시적 문체로 섬세하게 부조한 작품 ‘사라진 편지’를 10년 만에 ‘초희’로 복간했다.

‘초희’는 제42회 여성동아 장편소설상 수상작으로, 여성동아 장편소설상은 박수근 화백의 ‘나목’을 쓴 박완서를 배출한 문학상이다.
 
 토마스 하디가 더버빌가(家)의 ‘테스’를 통해 남성이라는 운명에 희롱당하는 ‘여성의 순결 문제’를 그렸다면, 안동김가(家)의 ‘초희’는 한국 최초 시집살이로 뒤바뀐 여성의 운명을 ‘자유의지의 문제’로 슬프게 서사화했다.
 
 류서재 소설가는 먹물이 마르지 않는 문한가, 가풍이 자유로운 집안에서 태어나 8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은 초희의 스러져가는 시혼을 슬프도록 아프게 그려냈다. 작가는 한 여인의 웃음과 눈물을 우주적 시선으로 높여 인간애의 지평을 확장한 시의 고절함에 주목하여 복간의 의미를 두었다. 초희의 시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혁명의 노래’다.

▲소설 초희와 허난설헌의 앙간비금도
▲소설 초희와 허난설헌의 앙간비금도

초희는 시집살이로 뒤바뀐 운명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끝내 붓을 놓지 않는다. 아들과 딸의 무덤을 바라보며 지은 시 ‘곡자’를 쓰고, 죽기 전에 자신의 시를 모두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동생 허균이 불타고 남은 시들을 모아서 문집을 내어 세상에 알린다.
 
 허난설헌, 허균 남매는 시와 삶이 일치하는 칼날 같은 태도로 인해 속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불여세합의 역사적 비극의 주인공들이 된다. 두 사람의 강렬한 문학적 사유가 집단의 언어와 충돌하고 대립하며 절대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은 이 책을 읽는 묘미이다.
 
 이 책에서는 초희의 시 40여 수를 생의 그림자처럼 깔아놓았는데, 속박과 자유가, 절망과 구원이 한 쌍처럼 존재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밝듯이, 빛의 밝음에는 어둠의 아픔이 내재해있으며, 어둠이 빛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빛이 어둠을 위해 존재하는 이치로, 속박은 자유를 부르지만, 자유는 속박을 부르지 않는다. 초희의 시는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시간성을 초월한 자유의 빛을 명경지수처럼 비추고 있다.

류서재 소설가/소설 초희
▲류서재 소설가, 소설 '초희'

한겨울의 눈은 희고 곱다. 눈 속의 난초, 초희의 유선사에 보이는 자유와 평등의 시선은 문학적 보편성을 얻는 중요한 덕목이다. 작가는 초희의 시가 조선을 넘어 중국, 일본으로 퍼져나간 시적 지평과, 그 속에 씨앗처럼 존재하는 시혼을 심미적인 필치로 이미지화했다.

특히, 이 책의 표지는 맑은 검정의 밤하늘을 배경으로 허난설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글자들이 별빛처럼 디자인되었다. 목숨과도 같은 붓을 내려놓고 안타깝게 스러져간 초희의 시혼을 위무하는 의미이다. 죽은 누이를 생각하는 남동생 허균의 애틋함으로 남겨진 문집, 그 곡진함이 중국, 일본, 동아시아로 퍼져나가 수많은 독자들과 다시 만나라는 의미에서 허난설헌의 시그니처로 표지 디자인했다.
 
 초희를 표현하는 단어들, 허난설헌, 조선시대, 1563년(출생), Gender-Equalism, 양성평등주의자, 강릉시, 꽃?, Respect all로 허난설헌의 아이덴티티를 이미지화했다. 이런 기법은 프랑스 파리 쿠튀리에르가 자신의 이름을 스카프나 핸드백에 프린트해서 당당히 자기 존재감을 표현하는 것과 같다.
 
 초희의 자유로운 시혼은 밤하늘의 별처럼 맑고 높은데, 그 맑고 높음이 세상의 이데올로기를 명경지수처럼 비추며, 삶의 질곡을 스스로 내면화하는 과정을 남동생 허균의 칼날 같은 문장과 대립시킨 것은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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