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57 ] MS 윈도우, 그리고 사진과 와인
와인칼럼니스트 [ 변연배의 와인과 함께하는 세상 57 ] MS 윈도우, 그리고 사진과 와인
  • 변연배 칼럼전문기자
  • 승인 2021.01.21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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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사진이 있다. 직장인들이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컴퓨터를 켜는 것이다. 컴퓨터가 로그인 되면 짧고 경쾌한 음향과 함께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군데군데 떠있는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푸른 초원이 보이는 사진이 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 XP가 설치되어 있는 PC에는 기본적인 배경화면(wallpaper)으로 깔려 있어 최소한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았거나 매일 보고 있는 사진이다. 

Window XP는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2000을 대체하면서 가정용이나 업무용 등 일반 목적의 PC용으로 내놓은 운영 체계이다. 2009년 Window7이 출시된 후 이용자들이 점차 줄기 시작해서 2014년에는 공식적인 기술 지원이 종료되었으나 아직도 많은 곳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2001년 사진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사진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정말 사진인지 아니면 그림이나 포토샵으로 합성한 것 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리고 사진의 장소가 정식으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아일랜드, 뉴질랜드, 프랑스, 영국 등 사진이 찍힌 장소를 두고도 추측이 많았다. 이 사진은 푸틴 대통령의 집무실과 북한의 핵실험장에도 걸려있는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01년 Window XP를 출시하면서 배경화면 및 마케팅 캠페인에 쓸 사진을 찾았는데 마침 빌 게이츠가 설립한 시애틀 소재 코비스(Corbis)라는 지적소유권 관리 및 사진 유통회사의 데이터 베이스에서 “목가적 언덕(Bucolic Hills)”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발견한다. 고객에게 제공할 새로운 제품의 서비스 컨셉을 “자유, 가능성, 평화롭고, 따뜻한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 XP는 여기서 따 왔음)”으로 잡고 있던 마케팅팀에게 이 사진은 안성맞춤이었다. 실제로 사용된 사진은 원본 사진의 가장자리를 약간 자르고 초원의 초록색을 보다 선명하게 하는 정도로 손을 보았다. 그리고 사진의 이름도 천상으로부터의 행복을 뜻하는 “Bliss”로 바꾸었다. 사진의 가격은 비공개 조건에 따라 공개되는 않았지만, 백지수표를 받은 작가가 몇 십만 달러에 해당하는 6자리 숫자를 써넣었다고 직접 밝힌 적이 있다.   

이 사진은 전속 작가로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에 25년 동안 근무했던 미국의 찰스 오리어(Charles O’Rear)가 직접 찍은 사진이다. 찰스 오리어는 와인 관련 사진을 찍기 위해 1978년 나파 밸리로 파견된다. 그리고 그 지역의 아름다운 와이너리 풍경과 와인에 매료되어 나파 밸리 근처에 있는 인구 5000명의 작은 타운인 세인트 헬레나에 정착했다. 1995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퇴직한 그는 1996년 1월 지금의 아내인 여자친구를 만나러 집을 나섰다.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인 소노마 지역과 나파 지역은 남쪽에 있는 산파블로 만을 두고 나란히 뻗어 있는 12번 주도와 29번 주도를 접하고 있다. 오바마 와인으로 알려진 켄달 잭슨 와이너리도 12번 도로와 101번 도로가 만나는 산타 로사 근처에 있다. 켄우드 와이너리도 12번 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필자도 몇 년 전 캘리포니아 와이너리 투어를 하다 이 일대를 다시 가보았는데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풍경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찰스 오리어가 29번 도로를 따라 나파 밸리를 거쳐 121번 도로가 12번 도로로 연장되는 소노마 지역으로 들어서자 푸른 초원이 펼쳐진 언덕 위로 비바람이 지나간 후의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는 다소 몽환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그는 사진작가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지체 없이 차를 세우고는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는 상업 사진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일본제 Mamiya RZ67 소형 아날로그 카메라와 후지필름의 벨비아 필름을 사용했다. 

사진에 보이는 초원은 원래 포도밭이었으나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개간을 위해 포도나무를 뽑아버려 목초가 무성하게 자란 상태였다. 이후 다시 포도나무를 심어 지금은 초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2001년에는 카르네로스 도메인이 이 지역을 임차하여 약속의 땅이라는 의미가 있는 “Terre Promise”라는 와이너리를 만들었다. 샤르도네와 피노느와르 와인을 생산한다. 사진이 찍힌 언덕에서 수확한 포도만 사용하는 피노느와르 와인은 와이너리 방문객에게만 판매한다.

와이너리가 들어선 다음에는 포도밭이 있는 풍경을 똑같은 앵글로 찍은 사진이 원래의 Bliss 사진과 비교되어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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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iss처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거나 사진의 역사에 있어 유명한 사진들이 있다. 그중에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작가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거리의 물웅덩이를 건너는 소년을 포착해 일상적인 리얼리티에 대한 표현을 사진으로 끌어들인 “결정적 순간”, 연출 여부로 논란이 되기도 했던 스페인 내전에서 로버트 카파가 찍은 “병사의 죽음”, 2차대전 중인 1945년 이오지마(유황도) 전투에서 조 로젠탈이 미군 병사가 섬 정상에 성조기를 세우는 장면을 찍은 “이오지마에 성조기를 세우며”, 케빈 카터가 1993년 아프리카 수단에서 아사 직전의 어린이와 그 옆에서 노려보는 독수리를 찍어 퓰리처상을 받은 “굶주린 어린아이와 독수리”, 티셔츠에 새기는 그림으로도 익숙한 1960년 쿠바 혁명 과정에서 알베르토 코다가 찍은 베레모를 쓴 체 게바라의 정면 사진인 “게릴라 영웅” 을 들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을 찍은 찰스 오리어는 이후 나파 지역에 계속 머물면서 와인 관련 사진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와인에 관한 사진집과 책만 10여권을 출판하였다. 찰스 오리어 외에도 와인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사진작가도 많다. 역시 나파 밸리에서 주로 와이너리의 풍경을 찍는 리차드 웡, 독일의 귄터 크링스처럼 “와인 초상화”라는 주제로 로마네 콩티, 샤토 마고, 사시카이아, 오퍼스 원 등 세계의 유명 와인 브랜드의 와인병 초상화를 찍거나, 미국의 피터 리프만과 같이 와인 용 말린 포도를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하는 작가도 있다.

변연배
변연배

필자도 사진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한 후 10년이 넘게 사진을 찍고 있는 아마추어 사진가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슬럼프에 빠지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아 좌절감을 느낄 때도 많고, 와인도 탐구할수록 더 모르는 것이 많다고 느끼지만 와인과 사진은 서로 묘하게 통하는 곳이 많다. 사진을 보는 시각이나 와인의 맛을 느끼는 데에는 주관적인 관점이 많이 작용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둘 다 그 속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줄기 같은 것이 있다. 

“진실이야말로 최고의 사진이다” 위에서 소개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한 말이다. 이 말은 와인의 유명한 격언인 “In Vino Veritas(와인 속에 진실이 있다)” 와도 상통한다. 요즘에 와서는 사진의 역할에 대한 예술적 정의가 예전과 같지는 않지만 진실과 진실을 찾는 노력만은 여전히 중요하다. 끝.


■ 와인칼럼니스트 변연배

▣ 경력
ㆍ우아한 형제들 인사총괄임원/경영학박사(현)
ㆍCoupang 부사장ㆍDHL 부사장
ㆍMotorola 아시아태평양지역 인사담당 임원
ㆍHI Solutions, Inc. 대표이사
ㆍ두산 Seagram㈜ 부사장
ㆍ주한 외국기업 인사관리협회 (KOFEN) 회장
ㆍ연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ㆍ중앙공무원 연수원 외래교수
ㆍ칼럼니스트
ㆍ와인 바/ 와인 관련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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