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제인권 규범과 한국
[기고]국제인권 규범과 한국
  • 임한택 前주루마니아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01.2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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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은 “헌법에 의해 체결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관습국제법)는 국내법규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제6조1항)고 규정함으로써 ‘국제법 존중주의’를 명문화하고 있다. 이는 국가의 관할권이 국제법에 의해서도 규율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행정부나 사법부의 행위뿐만 아니라 국회의 입법권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국제법에 의해 제한된다. 국회가 제정한 국내법이 국제법에 위반되면 궁극적으로 국제책임을 질 수 있다. 국제법 중에서도 국제인권 규범들은 모든 국가가 국제공동체 전체에 대해 인권을 존중할 의무가 있는 이른바 ‘대세적 의무’(對世的 義務)로 인정되고 있다. 이로써 인권 문제는 이제 국내문제가 아닌 국제문제이며, 인권 문제에 대한 타국의 간섭은 더 이상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국제인권 규범의 관점에서 볼 때 대단히 우려스럽다.

우선 지난 9월 북한의 공무원 피살사건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가 비준한 「정치적·시민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모든 인간은 고유한 생명권을 가지며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박탈당하지 않는다”(제6조)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관습국제법으로도 확립되었다. 북한이 민간인 공무원을 살해한 행위는 규약이 보장하는 개인의 생명권을 자의적으로 박탈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정전협정 하 남・북한 간에는 1949년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 제4협약」이 적용된다. 북한의 공무원 피살은 민간인을 살해한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더욱이 적대행위 능력이 없는 공무원이 월북 귀순하려고 했다면 귀순병은 북한이 더욱 보호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정치적·시민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제네바 제4 협약의 중대한 위반으로서 야만적 살인 행위에 대해 북한의 국가책임을 추궁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북한에 대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 등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는 정부도 헌법상 국민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한 데 대해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정부는 또한 지난 연말 대북 전단 살포가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권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이른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일부 개정하였다. ‘살포’는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전단 등을 선전·증여 등을 목적으로 북한의 불특정 다수에게 배부하거나 북한으로 이동(단순히 제3국을 거치는 전단 등의 이동을 포함)시키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누구든지 전단 등을 살포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4조). 실효성이 별로 없고 주민들의 불안감과 반감만 불러일으키는 일부 탈북자 단체들의 보여주기식 전달 살포를 제한하는 것이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번 개정이 살포 금지의 기준, 대상, 주체, 방법을 대단히 폭넓게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금지 기준으로서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킨다는 모호한 기준을 적용하여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살포 대상으로서 전단은 물론 보조기억장치(CD 등)나 금전 또는 그 밖의 재산상의 이득도 함께 포함하여, 사실상 북한 주민에 대한 개인적 지원마저 금지하고 있다. 살포 주체로서 누구든지 살포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국민은 물론 외국인의 기본권마저 제한하고 있다. 살포 지역도 일부 접경지역이 아니라 북한 전역을 대상으로 넓히고, 제3국을 통한 전달마저 살포에 포함시켜 금지하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은 최소한의 필요한 범위내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렇듯 개정 법률은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포괄적이며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개정 법률이 헌법에 보장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입법이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할 것이다. 국제법적으로도 사상·양심·종교의 자유(제18조)를 규정(제4조2항)하고 있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규약은 평시는 말할 것도 없고 설사 공공의 비상사태가 선포된 경우라도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는 결코 제한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개인적 사상이나 양심을 불문하고, 헌법상 보장된 표현과 양심의 자유는 언제 어디서나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이 북한을 구실로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였듯이, 정부가 북한을 구실로 국민의 인권을 제약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인권은 사상이나 민족이나 진영과는 무관하게,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제인권 규범을 이렇게 쉽사리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낡은 폐쇄적 민족주의와 이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남북관계 진전만을 바라보는 편집증 때문이라 할 것이다. 국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제인권 규범을 외면해서는 역효과만 초래할 것이다. 힘든 산업화 과정을 통해 어렵사리 인권 모범국으로 자리 잡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인권을 희생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정부는 작년 말에도 UN의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 제안국으로도 불참하여 국제사회의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국제인권 규범을 도외시하는 일련의 정부 조치들은 결국 한국을 국제사회에서 인권을 외면하는 국가로 각인시켜 국가의 품격과 이미지 훼손은 물론 예기치 않은 국제적 견제를 받게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 누구라도 언제든지 국가로부터의 이러한 인권 침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상기 칼럼내용은 필자 개인의견이며,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임한택 대사는 외교부 조약국장, 주제네바대표부 차석대사 겸 제네바군축회의(CD) 대사, 주루마니아대사를 역임하고, 현재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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