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미동맹과 ‘국익론’의 견해차이
[기고]한・미동맹과 ‘국익론’의 견해차이
  • 최병구 前주노르웨이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21.01.2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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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주미대사의 국회 국정감사 발언이 논 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 이수혁 대사는 한・미동맹 의 미래를 설정하는 데는 국익이 기준이 되어야 한 다는 취지로 말했다. 원론적으로는 틀림이 없는 주장 이었음에도 많은 논쟁이 일었다. 한・미동맹과 국익에 관한 관점의 차이가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국익’은 국가가 대외정책을 통해 얻어내려는 그 무엇이다. 일반적으로는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의미한다. 그런데 구체적 사안에서 국익이 어디에 있는가에 관하여는 사람들마다 견해가 다르다. 한・미동맹의 경우도 그렇다.

현 정부의 고위인사들은 ‘한・미동맹이 아무리 중요해도 국익보다 앞설 수 없다’라던가, ‘한・미동맹의 신화에 빠져 국익보다 동맹을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말을 자주 한다. 그럴듯한 말이지만 좀 더 살펴보면 문제점이 발견된다.

무엇보다도 이런 주장은 한・미동맹과 국익을 대척점에 놓고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상정한다. 심지어 이들 간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는 것으로 본다. 2분법적 프레임이다. 국익은 목적이고 한・미동맹은 수단이다.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수단 중 하나가 한・미동맹이다. 목적과 수단을 동열에 놓고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보면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든 대외정책을 통해 확보하려는 이익은 안보·경제·가치(정체성)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세 요소 가운데 안보가 가장 우선한다. 안보이익과 경제이익에 충돌이 생기거나 이 둘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안보이익을 택하는 것이 정상이다. 생존 없는 경제나 가치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주미대사는 ‘국익이 돼야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는 한・미동맹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잘 따져보아야 한다는 말이지만, 이 말의 바탕에는 한・미동맹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깔려 있고, 나아가 동맹에서 벗어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이 대사가 이런 발언을 하기 넉 달 전 “우리는 이제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나라다”라고 말한 사실에서도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 미국은 하나밖에 없는 동맹국이다. 중국은 북한과 동맹을 맺고 있고, 북한이 ‘사실상의 핵국가’가 된 상황에서 우리가 중국을 선택할 경우 실존적 이익인 ‘안보이익’을 지킬 수 있을까? 시진핑 주석은 2017년 4월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말을 했다. 한반도는 중국 영향권의 나라이니 미국은 손을 떼라는 의미였다. 이런 상황에 미·중 가운데 어느 한 나라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무모하고 무책임하다. 국제정치 현실주의자의 눈으로는 한・미동맹은 우리 안보와 경제의 핵심 축이다. 한반도 국제정치 상황이 변하거나, 우리가 획기적인 대안을 가질 수 있기 전까지는 이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중국은 ‘경제 이익’ 측면에서도 믿을만한 파트너가 되지 못한다. 사드배치를 트집 잡아 끈질기게 경제 보복을 가한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중국은 앞으로도 언제든지 이런 보복을 가할 나라다. 반면,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대한(對韓) 외국인투자 1위국이면서(전체의 15%, 중국은 3%), 유사시 우리의 에너지 안보도 지켜줄 수 있는 나라다. 대한민국이 계속해서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미국과 손을 잡는 것이 맞다.

한・미동맹은 현재로선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한 자산이다.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데 있어서도 그렇다. 한・미동맹이라는 지렛대가 없으면 중국의 부당한 강 압을 견뎌내기 어렵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미동맹을 보험에 비유한다. “보험이 부실해지면 중국이 무자비하게 무시하고 겁박해도 어쩔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데도 필요하다. 2017년 6월 한・미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한・미동맹의 영역을 전 세계로 확대하고 의제도 범세계적 사안으로 넓혀나가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것은 한・미동맹의 비전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대외전략의 비전이 될 수도 있다.

새로 들어서는 바이든 행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인권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들과의 연대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에서는 ‘동맹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은 이에 맞추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G7에 한국·인도·호주를 포함시키는 ‘민주주의동맹’(D10)이 추진되면 이 모임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는 일이다. 이런 일들은 한・미동맹의 후광이 없으면 달성하기 어렵다. 2008년 G20 출범 과정에서 우리는 미국과 긴밀히 협조해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냈던 일은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글로벌정세 분석가 조지 프리드먼은 “한국은 동맹인 미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게 만들어야 하고, 또 한국의 필요에 맞게 미국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한・미동맹은 ‘동맹이 견고하다’는 말치레를 해야 할 정도로 약화되었다. 곧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와는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 외교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국민 여론도 이를 지지한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해 12.27~12.29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가 가장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외교과제로 ‘한미동맹 강화’가 50.2%로 1위였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다음과 같은 사안에 대한 고민과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첫째, ‘대북전단금지법’ 문제다. 미국 의회와 언론, 그리고 관련 전문가들은 이 법이 민주주의와 한・미동맹의 핵심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인들은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한 나라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껴왔는데 한국에서 이런 법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 문제가 내정에 속하는 문제이고 표현의 자유는 제한될 수 있는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으 나 이는 설득력이 없다. 이 문제를 놓고 미국과 국제사회(인권단체 등)와 대 립하는 것은 소탐대실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한국의 국제적인 이미지와 위상을 떨어트리고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외교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으로 연대하는 것을 대외정책 기조로 삼을 터인데 우리가 이에 역행하면 첫 단추를 잘못 꿰는 일이 된다.

둘째, 미국의 2021회계연도 국방수권법과 관련된 문제다. 이 법에는 화웨이 등 중국 업체의 5세대(5G) 기술 사용국에 미군 병력과 장비 배치를 재고하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미국은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5G 통신망 등에서 중국 제품 사용을 배제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우리 정부는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 문제는 더 늦기 전에 한・미동맹과 안보 차원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 군(軍)이 해안 경계를 위해 도입한 200여 대의 국산 CCTV가 실제로는 악성코드 유포 사이트로 접속되도록 설정된 중국산(産)임이 밝혀져 미측이 제기하는 우려가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이 밝혀진 바 있다.

셋째, 주한미군 주둔 방식 변경 가능성이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지난해 11월 “미군의 해외주둔이 영구적·장기적이 아니라, 순환적·일시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검토에 주한미군 규모나 주둔방식도 포함되어 있다. 미·중 갈등 양상에 따라 주한미군 감축 대신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면서 이 문제가 한・미동맹에 또 다른 갈등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 등 현안을 새로 출범하는 정부와 원만하게 풀어나가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정권담당자들은 대외정책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흔히 ‘국익론’을 편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국익’은 실상은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뿐이다. 일예로, 2019년 8월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청와대는 ‘협정을 지속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일 갈등은 한·미·일 안보협력에 차질을 초래하게 되고 이로써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일임에도 “한・미동맹과 지소미아는 관련이 없다”며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던 것이다.

혼란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지난 1.5~1.7 노동당 8차 대회를 개최하면서 또 핵카드를 흔들어댔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정책을 수립할 때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리고 또한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정책적 우선순위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 긴밀한 한·미 공조가 필요하다.

*상기 칼럼내용은 필자 개인의견이며,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최병구 대사는 주미국 총영사, 주노르웨이 대사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외교안보」(2017), 「외교의 세계」(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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